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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1:1-19 받은 사랑을 품고 영혼을 섬기는 일에 대한 감사

오늘 본문은 레위인들을 위해 성읍을 분배하는 내용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는 레위인들이 어떤 존재들이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를 돕고, 하나님을 섬기기로 헌신되어 자기 자신의 기업이 없이 하나님을 자신의 기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그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생각했을까? 

겨우 겨우 치열한 싸움을 통해 자신의 기업을 차지했는데, 갑자기 자신들의 성읍들과 목초지들을 그들에게 나눠주라고 이야기 들었을 때, 정말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우리는 한 몸이니까 당연히 줘야지? 아니면 쟤들은 싸우지도 않고 땅만가져가네? 과연 어떠한 마음이었을까? 

오늘 본문에서는 어떠한 불평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3절) 자신들의 기업에서 성읍들과 목초지들을 레위인들에게 주었다. 그저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에 순종한 것이다. 그들이 한 몸임을 잊지 않았던 것 같다. 감사가 레위인들의 몸에 기억되었을 것 같다.

내가 레위인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이 레위 지파에게 내 모습이 대입해 보여진다. 나 또한 선교를 위해 이 땅에 나와 있고, 많은 분들의 후원과 기도를 힘입어 살아가고 있다. 우리 가정을 후원하고, 기도해주시는 분들의 모습 또한 오늘 11지파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아 보인다. 불평이 아니라 늘 기도해주고, 더 해주지 못해서 아쉬워 하는 분들을 자주 경험한다.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하나님이 태국으로 부르셔서 영혼들을 섬기기 위해 나온 우리 가정을 위해서 이렇게 자신들의 기업에서 기꺼이 일부를 떼어서 보내주시는 분들로 인해서 우리 가정은 오늘도 살아간다. 자신의 기도의 시간에서 우리 가정을 위해 시간을 떼어 기도하고, 중보해 주시는 분들로 인해 이 땅의 선교는 확장되어 간다. 늘 이렇게 살아왔지만, 오늘은 말씀 속에서 비추어지니 더 감사하고, 더 감사할 따름이다. 이 사랑의 빚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도 이 하루를 태국 땅에서 그리스도를 삶으로 비춰내기 위해서, 복음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 이 땅에서 땀 흘리며, 성실하게 살아간다. 

자신들의 기업에서 기꺼이 내어주신 후원과 기도들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오늘 하루도 시간을 아끼며, 영혼을 사랑하며, 눈물 흘리길 원한다. 오늘 하루 더 감사하기 원한다. 

*동역자 여러분들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묵상을 하면서 깊은 감사의 마음이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참 많은 감사로, 참 많은 격려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 가정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 기도해주시고, 기꺼이 자신의 쓸 것들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무익한 종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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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9 도피성, 곧 여호와께 피하는 것

오늘 본문은 독특한 도피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혹시 실수로 사람을 죽이더라도 이 곳에 들어오면 그는 피의 보복을 피하게 된다 (2-3절). 이것은 이스라엘 전체 안의 약속이었다. 그 누구도 이 약속을 깰 수 없는 그런 엄한 약속이다. 보복자들을 피해서 일단 성 안으로 들어오면 그가 실수로 살인을 했을지라도 절대로 보복자들에게 내어 줘서는 안되는 그런 곳이다. 

하지만 조건은 분명히 있다. 아무렇게나 사람을 죽인 사람들이 피하는 곳이 아니라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 5절에 나오는 것 처럼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 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을 경우’에만 피할 수 있는 곳이다. 바른 재판까지,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 안에 거하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도록 해줬다. 

하나님께서는 고의가 아닌 실수로 범한 사람들의 억울한 다른 죽음을 막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 도피성은 이스라엘 백성 뿐안 아니라 그들과 함께 지내는 이방사람들에게도 유효하다. 9절에 보면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은 단순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도피성을 우리 모든 사람에게 주셨다.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어떠한 죄를 지었든 어떠한 죄 가운데 거하고 있든 우리가 그 분안으로 피하면 우리는 모든 죄의 참소와 심판으로부터 피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살인을 했든, 다른 말하기 힘든 죄를 지었든.. 그것이 드러나는 죄이든, 혹은 마음 속의 죄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그 분께 피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시편 118:8-9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오늘도 날 위한 도피성,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려 계신다. 언제나 내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시고, 두 팔 벌려 안아 주신다. 나는 여호와께만 피해야 한다. 내 속에 가득한 죄악을 가지고 그 분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이 이 땅 가운데 드러나도록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
나의 허물을 보며 여호와께 피하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보며 여호와께 피하자.
나의 어려움들을 안고 여호와께 피하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안고 여호와께 피하자.

그 분께서 그 분의 도피성 안으로 피하는 사람들을 통해 그 분의 정의와 공의를 드러내실 것이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안으로, 예수님 안으로 피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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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19:40-51 입이 아니라 삶으로 말하게 하자. 

여호수아의 리더쉽은 탁월했다. 특별히 스스로가 실수한 것도 없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온전히 완수 했다. 그리고 단 지파까지의 땅을 모두 분배한 그 이후에 이제 드디어 자신의 기업을 취한다. 자신의 공로를 앞세워 먼저 기업을 받지 않았고, 모든 지파에게 분배를 먼저 마쳤다. 

마지막으로 분배 받았는데도, 주석을 보니 여호수아게 요구한 성읍 에브라임 산지 딤잣 세라라는 곳은 (50절) 그 당시 유력하고 위세있는 성읍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 말은 권력의 중심부를 가질 수 있었던 여호수아가 취할 수 있는 권리를 취하지 않고, 변방으로 갔다는 것이다. 

그의 선택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는 울림이 어땠을까? 결국 탁월한 리더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삶으로 전해진 것이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좋은 리더와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가게 된다. 하지만 여호수아의 그 겸손함이 주는 울림은 오늘 나에게 까지 미친다.

입술이 아니라 삶이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의 길을 쫓아가지 않았던 것 처럼 그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 길을 묵묵히 가야 하는 것이다. 입이 아니라 삶으로…
요즈음은 좀 힘든 일들이 많은 시즌인 것 같다. 양가 부모님 일들도 그렇고,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하지 말아야 할 일들도 있다. 아침에 아내와 이야기 한 것 처럼 좀 입을 닫고, 잠잠하게 있기를 원한다. 입술이 말하지 않고 삶이 말하도록 오늘도 내 의견을 내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일을 보고 계실지에 집중하기 원한다.  

모두가 내 삶에 박수쳐주지 않더라도, 모두가 내 삶에 칭찬하지 않더라도 묵묵하게 오늘도 걸어가기를 원한다. 나에게 박수쳐주시는 주님만 바라보면서 말이다. 말로서 다른 사람의 이해와 인정을 구하기 보다는 삶으로써 하나님의 인정을 구하는 오늘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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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19:24-39 가족이 중요하다. 

아셀 지파도, 납달리 지파도 제비를 뽑을 때,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다 (24, 32절). 다른 지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주시는 가나안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가정도 남김없이 참여하도록, 그들에게 분깃을 주시기 위해서였다. 어떤 가족도 소외될 수 없었다. 즉 모든 지파의 모든 가족이 자신의 땅을 가질 수 있었고, 그 땅에서 필요한 것을 재배하면서 먹고,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주셨다는 것이다.  

땅을 분배함에서 보듯이 가족은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가장 작은 공동체 단위이다. 하나님께서 결코 개인에게 땅을 분배해 주신 것이 아니었다. 가족에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가정을 나는 어떻게 돌아보고 있는가? 가장으로써 잘 섬기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 가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집안에 여러가지 힘든 상황들이 있다. 아버지께서는 암이 재발되면서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셔서 항암 치료를 받고 계신다. 많이 힘들어 하시고, 식사를 제외하고는 계속 주무시고 계신다. 기력이 많이 떨어지셔서 힘들어 하신다. 선교지에 있는 아들로써 기도하고, 필요한 것들을 좀 보내드리는 것 외에 해드릴 수 있는게 별로 없다. 장인어른도 얼마전 교통사로고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 마찬가지로 내가 해드릴 수 있는게 별로 없다. 요엘이는 조금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가정에 많은 어려움과 힘듦이 있는데, 나는 지금 어디에 서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오늘은 특별히 또 설날이다. 타국에서는 설날의 정취를 느끼기가 어렵다. 하지만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한번 더 가정의 소중함과 내가 이 가정에서 어떠한 자리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기를 원한다.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우리 가정을 돌아보시는 하나님 앞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양가 부모님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흘러가도록 해야 하는 가장의 자리이다. 이 자리에 세워주신 것을 두려워 말고, 부끄러워 말자. 그리고 모든 것들을 한 번에 잘하지 못해도 오늘부터 전화를 자주 드리는 것 부터라도 다시 시작하자. 아이들에겐 다시 한번 친절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아빠가 되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정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흘러가기를 간절히 원한다. 

큐티를 보시는 분들은 양가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샬롬
그리고 2019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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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19:1-23 조금은 엉뚱한 생각?

오늘 본문을 보며… 좀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왜 나는 이렇게 남의 땅 이야기를 읽으면서 지루하고, 힘이 들까? 순식간에 드는 생각은 내 땅이 아니어서였다. 내가 만약 시므온 지파였다면, 스블론 지파였다면, 잇사갈 지파였다면 이 본문을 그냥 그냥 읽을 수 있었을까? 

우리 조상의, 우리 부모의 땅이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열심히 지도를 찾아보며 분명히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매번 지도를 대충 찾아보다 말고, 대충 대충 보고 있다. 왜냐하면 내 땅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의 이해관계가 있는가? 없는가? 의 문제가 매우 중요함을 알수 있다. 이 마음을 가지고 다시 읽어보지만 여전히 큰 상관없이 느껴진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교 사역을 하면서도 매우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이 것이 내 사역이냐? 라는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내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이 일을 하는가? 아니면 변두리 인물로, 그냥 마지 못해서 하는 사람으로 이 일에 포함되어 있느냐? 의 문제는 시작은 작아 보여도 나중의 차이는 매우 클 수 밖에 없다. 

알아서, 찾아서, 주인 의식을 가지고 오늘도 섬기려 한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고, 마지못해 하려고 하지 말고, 내 땅이고, 내 사역이고, 나를 부르신 곳이다. 시므온, 스불론, 잇사갈 지파와 같이 나와 상관없는 곳이 아니다. 부르신 곳에서 오늘을 살아가면서 후회하거나 낭비하는 인생이 되지 말고, 오늘을 정성껏 살아내는 하루가 되자. 

영어의 기초가 없는 친구들을 졸업 시험을 패스 시키는 일을 나서서 하고 있는데, 오늘 오전 수업은 살짝 절망을 맛 보았다. 영어의 시제를 설명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태국어에 없는 개념이기 때문인 것 같다. 좀 더 준비해서 적어도 어느정도의 이해를 바탕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하자. 내일은 학생들이 좀 더 이해되는 표정을 볼 수 있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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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18:1-10 은혜와 전략의 리더쉽

여호수아는 좋은 리더였다. 그의 나이는 이미 많고, 늙었지만 그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지파들을 깨우친다. 그리고 그들이 그냥 나가서 땅을 점령하고, 알아서 땅을 나누라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느 지파가 어느 땅을 분깃으로 받을지에 대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제비를 뽑는다. 가나안이라는 큰 땅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 세부적으로 목표를 분배해 주었다. 일곱 지파가 각 지파 별로 차지하면 되니까 대략 점령해야 하는 목표가 1/7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지도를 그리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가야 하는 목표지역에 대해 가시적으로 보며 전략과 작전을 세울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게 하였다.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고 해서 그냥 하나님이 하시겠지 라는 태도로 있지 않았다. 하나님은 땅을 이미 주셨지만, 그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지혜와 용기, 그리고 은혜로 말미암아 차지해야 하는 땅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하실거라는 태도는 여호수아에게는 있지 않다. 

나에게는 때때로 많은 전략을 세우는 것이 믿음없는 태도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나님이 하실 것을 의지하는 것만이 믿음이고, 내가 세우는 전략은 믿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때로는 안일한 태도, 믿음이면 다 해결될 것 같은 태도를 가질 때도 있었다. 오늘 여호수아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둘 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도를 만들어서 분배했지만 분배는 자신의 생각대로 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하시도록 제비를 뽑았다. 

은혜를 구하는 동시에,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을 해 내는 것, 눈에 보이는 비전으로 보여주고, 그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 그것이 여호수아가 보여주는 리더쉽이다. 아직 나에게는 많은 리더쉽이 있지는 않다. 지금은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시기이다. 지금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어떠한 비전을 품고, 어떻게 나아갈지, 어떻게 움직일지를 부지런히 연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에 보여줄 수 있도록 준비하자. 

아이들에게도 자꾸만 다그치기 보다는 보이는, 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목표를 정해주고, 그들이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빠가 되어야겠다. 나 스스로에게도 언어공부와 성경연구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은 목표와 그에 따른 성취를 경험하도록 오늘은 좀 계획을 세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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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17:1-18 주님 손잡고 좁은 길로...

므낫세 지파도 다른 지파들과 크게 다름이 없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땅을 기업으로 받았고, 주민들은 쫓아내지 못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14-18절의 내용인데, 자신들이 큰 민족을 이루었기 때문에 한 분깃으로는 좁다고 여호수아에게 불평하는 내용이다. 여호수아의 목소리는 '그 땅에 스스로 올라가서 개척하라' (15절) 였다. 

그런데 므낫세 지파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 못하고 (좁고)….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16절)’ 다른 말로 하자면 그 산은 좁고, 거기 사는 사람들은 우리 보다 강합니다 라고 대답한 모양이다. 스스로 개척하기 보다는 다른 땅을 주길 원했던 것 같다. 지금 이스라엘이 땅을 다 차지해서 나누는 수순이 아니었다. 여전히 싸우며, 여전히 그 땅을 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애쓰고 있는 중인가? 그런데 그들이 요청했던 것은 쉬운(?) 땅이었나 보다. 넓은 땅인데, 쉬운 곳을 원했던 것 같다. 세상에 그런 곳이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여호수아의 대답은 그래도 너희들은 큰 민족이요, 권능이 있으니 개척하라고 권면했다 (17절). 

이미 소유한 분깃의 땅을 누가 그들에게 주셨는지를 므낫세 지파는 잊어 버렸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님이 하게 하셨는데, 새로운 땅은 그들의 힘으로 차지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의 힘으로 하려고 하지 않으니 그들의 거대함과 강력함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 편하고 쉬운 것을 찾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리더를 통해서 주신 사인은 개척이었다. ‘개척’ 단어만 들어도 얼마나 힘들어 보이는가?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개척을 요구하셨다. 단 자신의 힘이 아니라 여태까지 해왔던 것 처럼 하나님의 힘으로 하는 개척이다. 

태국의 미세먼지가 엄청나다. 미세먼지 수치가 거의 200에 수렴중이며 학교들이 어제, 오늘 강제 휴교중이고, 다음주 월요일도 주일에 어떻게 될지를 말해준다고 한다. 바트화는 계속해서 오르고 있어서 실제로 들어오는 선교비가 계속 줄어드는 상황이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보는 태국의 모습은 선교사들의 무덤이다. 200여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0.5%도 되지 않는 복음화율… 오랜시간 동안 사역하지만 열매가 보이지 않는 힘든 곳이다. 정말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면 므낫세 지파와 같이 우리의 상황을 불평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강함에 주눅이 들게 된다. 

하지만 세상에 넓은데 쉬운 곳이 어디에 있는가? 예수님 말씀과 같이 우리는 오늘도 좁은 길로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단 좁은 길로 들어서는 것도, 좁은 길 안을 걸어가는 것도, 그 좁은 길을 통과하는 것도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이긴 전쟁의 주인이신 하나님만 붙들고 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붙잡지 않으면 지금의 상황에 압도 당하고, 나의 연약함에 쓰러지게 된다. 

개척하자. 내 앞에 주어진 상황을 개척하자.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에 기대어 개척하자. 내 힘으로 하는 일 아니다. 내 힘으로 가는 좁은 길 아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하는 것이다. 두려워 말고, 내 시선을 예수님께만 고정시키자.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fixing our eyes on Jesus, NIV)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볼 때 좁은 길로 갈 수 있다. 개척할 수 있다. 내 힘으로 하겠다는 교만함을 버리면 우리는 주님과 함께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시작되는 영어 수업, 설교, 사역들, 아이들 문제, 재정 문제 다 하나님과 함께 개척하는 내가 되길 원한다. 좁은 길을 주님과 손잡고 함께 걸어가는 내가 되기를 원한다. 
완전하신 나의 주님, 저를 의의 길로 인도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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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19. 1. 3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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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16:1-10 순종과 편안함 어느 곳에 기준을 둘 것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에브라임 지파였다. 쫓아내지 못한 것인가? 쫓아내지 아니한 것인가? 성경은 그들이 쫓아내지 아니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을 종으로 부리기 위해서, 자신의 좀 더 편안한 삶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한 것이다.

순종하기 때문에 편하지 않은 길을 걷는 것과 순종 하지 않았기 때문에 편한 길을 걷는 것 중에 어떤 것을 택하려 하는가? 의 문제이다. 어디에다 방점을 둘 것인가? 순종인가? 편안인가? 

이스라엘 백성은 편안에 방점을 두었다. 그러니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편안한게 더 우선이었다. 그래서 불순종하더라도 편안한 길을 택하였다. 나는 오늘 어디에 방점을 찍기 원하는가? 머리로는 순종인데, 많은 순간 편안함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순종이 삶의 기준이 되기를 원한다.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편안함을 취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기를 원한다. 현실의 삶이 기준이 되지 않고, 말씀이 기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지금 내가 말씀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이 있는가? 

오늘 샬롬하우스 학생들 졸업영어시험 2차를 함께 준비하기로 하고 클래스를 만들었다. 처음엔 내가 먼저 도와주겠다고 찾아갔지만, 이제는 그들이 먼저 나에게 자신의 필요들을 이야기 한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다보니 부담이 되기도 하고, 내가 영어 선생님으로 여기에 온 것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영어 수업을 통해서 그들과 복음적인 삶을 더 나누길 원한다.  내 육신의 평안함이 아니라 그들의 필요를 따라, 복음의 가치관을 더 말하게 되기를 원한다. 절대로 영어만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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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19. 1. 30.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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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15:20-63 복음을 살아내는 오늘

오늘 본문은 유다지파의 기업에 대해서 나온다 그들은 매우 넓은 땅을 받았다. 20절부터 61절까지 그들이 어떠한 성읍과 마을들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준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들이다. 자기 스스로를 메뚜기 같다고 여겼던 자들이 얼마나 많은 땅을 차지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소상히 설명한다.

그런데 문제는 마지막 63절이다.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해서 예루살렘에서 함께 거주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신실하심으로 그들을 인도하였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고, 함께 거주하게 된다. 마치 드라마에서 앞으로 일어날 나쁜 일을 예고하는 것 처럼 유다 지파와 여부스 족속은 함께 살게 된다. 

사실 새로울게 없다. 언제나 하나님은 신실하셨고, 인간들은 언제나 그 분의 마음을 배반하였다. 그들의 가지고 살아갈 기업을 주셨지만, 그들은 여전히 순종하지 않는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나의 모습이다. 늘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나는 그 분의 은혜와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오늘의 삶이다. 
\]]]]]
오늘 성경은 여호수아이다. B.C 15세기 혹은 13세기가 배경이다. 그 말은 앞으로 하나님이 얼마나 더 그들을 사랑하셨는지.. 그래서 \\지금 2019년이 되실때까지 하나님은 늘 인간들의 그러한 배신과 불성실함을 경험하시면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배우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다.

여부스 족속과 함께 살아가는 것과 같은 나를, 그런 이스라엘을 조건없이 받아주셨다. 용납해주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런데 나는 타인들을 그렇게 받아들이기 쉽지가 않다. 어제 저녁만해도 그런 일이 있었다. 내가 복음으로 인해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만 그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다. 이중적인 모습이다. 나는 복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원하면서도 내 삶에서 복음적인 가치관으로 살아내는 것에는 인색하다. 마치 받은 은혜를 알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했던 유다 백성들처럼 말이다. 

이렇게 묵상을 하면서도 여전히 어제의 일은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되내이는 것은 내가 용납, 용서 받은 자임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나도 사랑하기 원한다. 잘 안되어도 오늘도 복음을 붙들고 걸어가기 원한다. 
내가 용서받은 죄인임을 결코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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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19. 1. 2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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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15:13-19 가장 중요한 것을 구하는 자

딸 악사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버지 갈렙이 기럇 세벨을 점령하는 자에게 자신의 딸을 와이프로 주겠다고 했다. 이 시절이 지금과 같이 연애해서 결혼하는 시대는 분명히 아니었겠지만, 갑자기 자신을 경품처럼 내걸고 땅을 정복하려고 하는 아버지 갈렙이 어찌 보였을까? 물론 아버지가 그 어려운 산지를 달라고 했던 갈렙이니 그의 딸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강건했을거라 추측할 수 있지만 결혼의 문제가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되는 그런 일도 아니었을텐데… 어쩌면 딸 악사의 마음은 혼란스러웠을 것 같다.

그런데 악사는 그러한 와중에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아버지에게 대들거나 다른 말을 하지 않고 필요한 것을 구한다. 그것은 아버지의 축복이었고, 샘물이었다. 남편 될 옷니엘이  이미 땅은 점령했으니 그 땅에서 살아갈 샘물을 구했다. 그러자 갈렙은 윗샘과 아랫샘 모두를 그녀에게 주었다. 아버지를 순종한 자에게 오는 복이었을까? 

광야에서도, 가나안에서도 샘은 축복이었다. 생명의 근원이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아무런 소산을 얻을 수 없는 곳이 중동지방이다. 그녀가 구한 것은 합당했고, 지혜로왔다. 정말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구할 것인가? 의 문제는 매우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이다. 

아버지에게 가장 먼저 축복과 샘물을 구한 악사가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며 자신의 환도뼈가 탈골되면서도 붙잡았던 것이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오는 축복이었다는 사실과 오버랩되어 보인다. 지금 이 정신없고, 힘든 상황에서 무엇을 구할 것인가? 그것이 무엇을 의지하느냐의 표현이다. 나는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구해야 할 것들이 참 너무나도 많다. 아버지의 재발된 암의 회복, 장인어른의 교통사고로 인한 수술, 요엘이의 마음, 필요한 재정, 사역의 방향, 언어, 선교단체 등등등….. 다 열거하기도 힘들고 열거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구하길 원하는가? 악사는 축복을 구했다. 야곱도 축복을 구했다. 이 정신없는 와중에 단 한 가지만 구하기 원한다. 

시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하나님만 구하자. 악사가 자신에게 생명과 같이 중요했던 아버지의 축복과 샘물을 구한 것 처럼… 
이 상황 속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 한 분만 구하자. 다른 것들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지만 가장 중요한 생명의 근원을 잊지 말자. 문제에 함몰되지 말고, 우리를 날아오르게 하시는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하루가 되자. 문제가 떠오를 때 하나님을 먼저 묵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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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