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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21-34 오직 말씀으로

1. 오늘 본문에서는 계속 예수님의 권위를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는 것에서도 그 분의 권위를 강조한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2절)

2. 예수님께서는 도덕적인 삶이나 율법의 자잘한 해석보다는 분명히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 하셨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율법도 도덕적인 삶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율법과 도덕적인 삶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포함되어 있긴 하다.

3. 그리고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쫓으실 때에도 동일한 반응이 나타난다.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27절 중) 귀신을 내쫓으셨기 때문에 나타나 반응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분명히 달랐다는 것이다.

4. 율법으로, 천국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장사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채우는 서기관들이나 종교 지도자들과 다르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이야기 하셨기 때문에 이런 다른 반응들이 나온 것일 것이다. 

5. 지금 우리 시대에도 종교 장사꾼이 많은 것 같다. 유튜브에는 수많은 음모론과 성경적 근거도 없는 말도 안되게 자극적인 종말론과 성경해석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나 선교지에도 입으로는 하나님을 이야기 하면서도 그들의 마지막은 자신의 이익인 경우도 보게 된다. 

6. 오늘 말씀을 보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이전에 나는 그런 종교 장사꾼이 아닌지를 돌아보게 된다. 복음을 이야기 하고 하나님을 이야기 하면서도 그것의 결국이 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는 다르게 나만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아마도 내가 종교 장사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렇게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7. 과연 내가 전하는 말씀은 권위가 있는 말씀인가? 말씀의 권위는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서 나오며 그 다음으로는 나의 삶의 거룩에서 나올텐데.. 난 어떠한 사람인가? 이번주 설교를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회개하며 예수님 앞으로 나아온다. 

8. 종교 장사꾼이 되고 싶지 않다. 그저 하나님을 즐거이 따라가는 자가 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것을, 율법과 도덕이 아니라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태국의 영혼들을 세우고 그들을 사랑하며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자이고 싶다.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 오늘도 더욱 더 말씀을 붙든다. 

9. 주님의 말씀만이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만이 옳고 완전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만이 내 심령과 골수를 쪼개어 종교 장사꾼으로 살아가지 않을 수 있도록 도우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씀에 붙들려 하루씩 살아가고 싶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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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12-20 나는 주님께 어느정도의 가치를 두고 있는가? 

1.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를 부르신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6절).

2. 그런데 부름을 받자 마자 그들은 어부에게 가장 중요한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른다. 그 다음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은 한술 더 뜬다.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20절)

3. 제자들은 ‘부모'도 버려 두고 예수를 쫓아간다. 생활에 가장 필요한 ‘그물'도, 우리에게 중요한 ‘혈육'도 그리스도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들이 지금 이 때에 정말로 그리스도를 알았는지,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차후에 생각하고서라도 말이다. 

4.  예수님을 왕으로 생각했든 선지자로 생각했든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을 그 어떤 가치보다도 중요하게 여겼고, 그래서 그들은 좀 덜 가치있는 것들을 버리고 떠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예수님께 부여하고 있는 가치에 따라 나의 삶의 헌신의 수준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5. 예수님은 우리에게 엄청난 가치를 부여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버리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 흔히 말하는 우리는 ‘예수님 짜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께 어느정도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가? 

6. 모든걸 걸더라도 아깝지 않은가? 아니면 중요한 것은 좀 남겨두고 덜 아까운 것들만을 예수님께 걸고 있는가? 예수님을 아직 구원자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알지 못했던 제자들도 모든 걸 걸었다.

7. 그 분을 구원자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아는 자라면 적어도 제자들보다 나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무엇을 걸 것인가? 그리고 내가 걸었던 것을 아까워하지 않아야 한다.

8. 제자들을 부르신 분이나 그 부르심에 모든걸 걸고 따라간 제자들을 내 수준에서는 따라가기 어렵다. 하지만 부르신 분을 정확히 알고, 부르신 은혜를 따라가노라면 언젠가는 제자들과 같이 내 인생을 걸고 주님을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연약하기 그지 없지만 매일 매일 그 분과 교제하고, 그 분과 더 깊이 만남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그 분의 뒤를 따라갈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한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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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마 1:1-11메신저의 할일은 외치는 것이다

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다. 그런데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사자를 먼저 보내신다. “선지자 이사야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2절)

2. 그런데 그 사자의 역할은 사람이 많은 도심에서 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거의 없는 광야에서 외치는 것이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3절 상반부)

3. 하나님께서는 왜 그 분의 사자(세례 요한)가 사람이 많은 도심 한 가운데가 아니라 들을 사람이 거의 없는 광야에서 외치게 하셨을까? 아마도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고 나서 말씀하신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와 일맥 상통한 말씀일지도 모르겠다.

4. 어디에서 말하더라도 들을 사람은 듣고 듣지 못할 사람은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광야에서 외쳤지만 5절은 이렇게 말한다.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5. 어디서 외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외치느냐 외치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외치는 자의 능력 때문에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외치는 소리(복음)의 능력 때문에 사람들이 회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6. 중요한 것은 메신저(messenger)가 아니고 메시지(message)인 것이다. 왜냐하면 메시지를 주신 분, 메신저를 보내신 분이 모든 능력에 뛰어나신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7. 무슨 사역을 하든지 내가 할 것은 외치는 것 뿐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재능과 은사들을 총동원해야 겠지만 결코 두려워하거나 사역의 결과에 염려할 필요가 없다. 나는 그저 전달자일 뿐이고, 외치는 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8. 나에게서 능력이 나온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하는 것에 따라 사역의 결과가 달라질거라고 착각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을 내가 침범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하게 전하는 것이다. 

9. 2월부터 다시 대면예배를 시작하기로 했고, 2월에는 교인들 심방도 계획되어 있다. 내가 메신저 임을 잊지 말고, 그게 어디든 복음을 전하기를 원한다. 계속해서 내가 외쳐야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복음 뿐이다. 메신저로 합당하게 살아가자.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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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 3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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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7:1-14 할 수 있는 유일 한 것은 ‘믿는 것'

1.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고, 넘어지고, 거짓말하지만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정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다.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신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1절)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1절)

2. 앞에서 이미 이야기 했지만 아브라함의 삶은 우리보다 조금 나을 수는 있었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로 완전할 수 없는 인생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완전할 것'을 요구하셨다.

3. 불가능해 보이는 ‘완전함에 대한 요구'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그 분의 ‘언약'이다. “보라 내가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4절)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아브라함은 한 인간의 대표같은 모습이다.

4. 그가 무엇인가 잘하거나 뛰어나서도 아니었고, 그는 연약하고 넘어지고 거짓말하는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찾아가셔서 불러 주시고, 그에게 언약을 허락하셨다. 마치 죄인인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허락하신 것 처럼 말이다.

5. 아브라함이 해야 할 것은 그 언약을 지켜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 언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브라함이 해야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이루실 것을 ‘믿는 것' 이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동일한 과정이다.

6. 내가 누구인지 알고, 하나님이 누구인신지를 알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믿는 것' 이외에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의 죄악을 더 깊이 알아갈 수록, 하나님의 크심을 더 깊이 알아갈 수록, 우리에게 남는 것은 절망과 하나님 외에는 안된다는 것이다.

7. 1월 28일은 생일이었고, 참 많은 분들의 축하를 받았다. 너무나도 감사했다. 어제 주일 예배 이후에 교회 성도들이 생일 축하 파티를 해줬고, 감사와 축복의 말을 돌아가면서 해주는데 너무나도 낯이 뜨거웠다. 축복의 말들 속에서 내가 동의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기 때문이다.

8. 기도제목을 묻길래 대답했다. “만약 여러분이 저의 삶의 전부를 보았다면, 제가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안다면 지금처럼 저를 축복하고 감사의 말을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너무나도 심각한 죄인입니다. 이런 제가 감히 오늘 들었던 축복의 말을 살아내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진심의 기도제목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9. 연약하고 넘어지고 거짓말하고 부정한 나를 주님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구원하여 주셨으니 너무나도 감사하고, 그리스도를 믿음을 통해 내 삶에 그리스도 안에서 흘러나오는 축복이 흘러 넘치길 원한다. 그리스도의 그 ‘언약'이 내 삶에서 이루어질 것을 또한 믿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부족한 자의 생일을 축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해주신 축복의 말들에 합당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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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 27.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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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쉬 형제를 위해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정의 문제는 진행중이지만 지난 주일에 예배에 참석함으로 마음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계속 기도해주셔요

창 14:1-12 욕심이 아니라 나를 향한 사랑이 이끌어 가는 삶

1.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오다가 갑자기 그 땅의 왕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남부의 다섯 왕이 북부의 그돌라오멜을 12년 동안 섬기다가 13년째에 배신하게 된다. 

2. 문제는 이 남부의 다섯 왕이 그다지 힘도 없으면서 배신을 했다는 것이고 그돌라오멜왕의 연합군들에 의해서 박살이 나게 된다 (10절). 배신했던 남부의 왕들은 쫓겨가게 되고, 북부의 왕들은 소돔에 와서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가고 조카 롯을 사로잡아 가게 된다.

3.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11-12절). 

4. 약속이 아니라 욕심을 쫓아갔던 롯에게 어려움이 생겼다. 롯의 눈에 좋아보이던 곳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좋아 보였고, 사람들의 눈에 좋아보이는 곳은 전쟁과 약탈의 표적이 되었다.

5.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과 자신의 눈에 보기에 좋은 것을 선택한 롯은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음에서 오는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가 가진 모든 소유를 빼앗기고, 왕들에게 사로잡혀갔다. 이것은 징벌이라기 보다는 롯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하나님의 허락하신 고난이었다.

6.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가장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 이외에 하나님의 자리를 노리는 그 어떤 것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우상'이라고 부른다. 우상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우리의 삶에서 제거해야 한다.  

7.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그것,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는 그것이 나에게는 무엇일까? 재정, 사람, 사역, 내 생각, 내 상황 등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까? 사랑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하면 바꿀 수가 있을까?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8. 내 스스로의 결정으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안하겠다고 결정하면 안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내 힘으로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려고 해야 한다. 그 분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 아버지를 그 무엇보다도 가장 사랑하신 분이셨다.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으신 분이셨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 위해 당신의 영(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가 그 분 안에 거하고, 그 분이 우리 안에 거할 때 우리는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9. 구약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직접 볼 수 없었고, 예수님에 대한 예언과 그 분의 그림자만 보았다. 신약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는 예수님을 볼 수 있고, 성령이 함께 계시니 얼마나 복된가? 내게 주신 이 은혜들을 놓치지 않고 더욱 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한다. 욕심이 아니라 나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끌어 가는 하루가 되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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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 27.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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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3:1-18 약속을 붙들고 살아가기

1. 아브라함과 롯은 사촌간이었고, 롯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날 때에 함께 떠나온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의 외로운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에 종들과 아내를 제외한 유일한 동행자였을 것이다. 

2. 그런 정도의 가깝고 중요한 사람인 롯과 문제가 발생했다. 처음의 문제는 롯과 발생한 것이 아니었고, 아브라함의 일행과 롯의 일행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서로 간의 다툼으로 발전 되었고, 서로는 이제 함께 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5-7절).

3. 사람은 어려울 때 그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고 하지 않았는가? 연장자였던 아브라함이 롯에게 먼저 갈 곳을 선택하라고 했을 때에, 롯은 주저 없이 어디가 좋을지를 살핀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0절)

4. 그가 선택한 곳은 물이 넉넉하며, 땅이 기름진 애굽과 같은 곳이었다. 한 마디로 그의 눈에 보기에 제일 좋아보이는 곳을 고른 것이다. 그의 눈이 가장 좋은 땅을 고르고 있을 때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약속은 온데 간데 없었다. 그가 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났는지를 잊어버렸다.

5.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렸을 때, 우리는 우리의 눈에 보기 좋은 것을 선택한다. 약속을 잊어버렸을 때, 나의 욕심과 욕망이 살아난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양보하는 그 순간에도 (그의 인생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했던것 같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다시 나타나셔서 약속을 상기시켜 주신다 (14-17절). 

6. 약속이 있는 인생과 그렇지 않은 인생의 차이는 단순히 약속만큼의 차이가 아니다. 보는 눈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에 결국 인생의 전부가 차이나게 된다. 그런데 우리 모두에게는 이 약속이 있지 않은가? 선교사, 목사, 전도사만 이 약속을 가진 것이 아니지 않은가? 

7. 약속을 붙든 자로 살고 싶다. 하나님의 언약을 가진 자로 살아가고 싶다. 내 욕심과 생각, 욕망과 두려움이 이끌어 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이끌어가는 삶을 살아내고 싶다. 오늘 신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모두들 고향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사역하고 싶은지 계획서를 구상하도록 시간을 주었다. 본인의 고향 동네에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생각해보고, 그것을 어떻게 복음과 연결시킬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하였다. 

8. 처음이니까 당연히 질문이 많았고, 부족함도 많았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신학생들 안에 자기가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서 섬기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여전히 붙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마을의 영혼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그 약속을 붙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태국 선교는 더디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너무너무 느린 것 같고 변화하지 않는 것 같다. 신학생들이라고 왜 그런 마음이 없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약속을 붙들고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날 때 바위는 복음으로 깨어질 것이다. 

9. 신학생들을 보며 나에게 하나님께서 해주신 약속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선교사로 헌신하였을 때 주님께서 주셨던 말씀은 바로 사 61:1-3이다.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나는 이 약속이 앞으로 내 삶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질지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이 약속을 붙들고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갈 때에 나의 인생 전부가 복음으로 인해서 완전히 달라질 줄 믿는다.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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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 2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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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2:10-20 합리성이란 우상을 버리려면 물어야 한다


1.  약속의 땅에 기근이 들었다.  어울리지 않는 말이 서로 매치되어 있다. 약속과 기근은 함께 갈 수 없는 말이다. 마치 물과 기름, 행복과 불행이 같이 갈 수 없는 것 처럼 말이다. 약속의 땅은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는 곳이지 기근이 왠 말인가? 

2. 그런데 살짝 기근이 온 정도가 아니라 기근이 심했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당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0절) 아브라함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모든 것을 버리고 그 약속의 땅으로 들어갔다.

3. 그런데 그 땅의 첫 이미지는 기근이었다. 아브라함은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애굽으로 내려간다. 합리적이긴 하였지만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합리적’이라는 우상이 아브라함에게 찾아온 것이다. 이 ‘합리적'이란 우상은 누구에게나 있다.

4. 때로는 이 ‘합리적'이라는 우상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 보다도 더 앞설 때가 많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가 이 ‘합리성'이라는 우상을 하나님 보다도 더 깊이 의지하기 때문이다. 

5. 약속과 기근이 함께 갈 수 없다는 생각 자체도 이 ‘합리성'에 기준한다. 우리가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약속의 땅에 기근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합리적인 방법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겠다는 약속이 아니다. 

6. 그 분의 약속은 그 분의 방법으로, 그 분의 능력으로 성취되는 약속이다. 내 생각과 내 이유를 만족시키면서 성취되는 약속이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스케일은 하나님의 우주보다 더 큰 스케일이지 내 머리 속의 생각의 스케일로 작아질 수 없다.

7. 하나님 안에서는 약속과 기근은 얼마든지 함께 공존할 수 있다. 행복과 불행도 함께 공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약속을 하신 분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그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생각하는 합리성을 벗어났다고 해서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방법을 벗어났다고 해서 두려워하며 나의 합리성을 앞세워서 애굽으로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8. 나의 합리적 판단이 하나님보다 옳을 수 있겠는가?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판단보다 옳을 수 있겠는가? 내가 하나님보다 지혜로울 수 있고,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그 대답이 Yes이면 스스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살아가면 된다. 하지만 그 대답은 누구도 Yes일 수 없다. 우리의 삶은 합리성이 아닌 들음으로 시작되어야 하고, 들음이 모든 것의 중심이자 시작이 되어야만 한다. 

9. 합리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묻기 원한다. 그리고 듣기 원한다. 들을 때에 우리와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우리는 그 분이 인도하시는대로 나아갈 수 있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삼상 3:9)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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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 2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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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2:1-9 선교는 그의 문제이기 이전에 나의 문제이다

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다짜고짜 떠나라고 하신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1절)

2. 떠나라고만 하신 것이 아니다. 아직 땅도 안 보여주시면서 거기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이정도면 100%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면 사기꾼이다. 

3. 그래서 혹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면 그 전 까지는 그렇게 철썩같이 믿었던 하나님에 대해 회의가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주가 아니시라면 희대의 사기꾼임이 틀림이 없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희대의 사기꾼임에 틀림이 없다. 바울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4.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전 15:17-19)

5.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다. 희대의 사기꾼이냐 아니면 정말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냐의 질문 속에서 그는 그 분을 하나님으로 만났다. 그래서 그는 정말로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4절)

6. 내가 하나님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어떻게 아느냐에 따라 순종과 불순종이 결정된다. 믿음과 의심이 결정된다. 천국과 지옥이 결정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온 열방의 하나님, 온 우주의 하나님, 자신의 모든 걸음을 아시는 하나님으로 믿었고, 그렇게 그 분을 따라갔다. 그래서 그는 열방의 복이 되었다.

7. 나는 하나님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알고 있는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도 나의 아버지라고 고백하면서도 많은 순간 두려워하고, 많은 순간 의심하고, 많은 순간 그 분을 의지하기 보다는 내 자신을 의지하려고 한다. 

8. 작년 마지막 주일 예배에서 영접한 옴 형제가 계속 밤 10시 성경읽기 모임에 들어온다. 그가 8개월을 고민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하고 이해하고 싶어한다. 그가 4월에 처음 대면한 하나님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심사숙고하고 믿기로 결정한 후 그의 태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는 아브라함과 같은 태도이다. 희대의 사기꾼이 아니라 진정한 하나님이자 창조주로 그 분을 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태국 사람 특유의 다신으로 생각할 여지도 분명히 있다. 

9. 매일 말씀을 읽고 나누는 것에 더욱 부담이 생긴다. 내가 먼저 그 열방의 하나님,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고 그 분을 제대로 알아야 그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옴 형제에게도 더 확실하게 증거할 수 있지 않을까? 선교는 결국 그의 문제이기 전에 나의 문제이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결국 선교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분을 더 알고 더 배우고 더 사랑하고 싶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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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 2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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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아랫쪽에 기도제목 있습니다
창 9:18-29 죄의 파티 속에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1. 급진적 예배를 드리던 노아는 어디로 가고, 오늘의 노아는 술취해서 벌거벗고 자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보면 그에게는 어쩌면 대홍수의 트라우마가 있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2. 자신은 구원받았지만 자신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죽어버린 그 트라우마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 모든 사실을 잊기 위해서 술을 마셨던게 아닐까? 노아의 일탈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노아가 자신이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저주한다. 

3. 자녀를 저주할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가끔 요엘이가 깽판 부리고, 너무 계속 우길 때에는 화가 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엘이를 저주하거나 저주해보려고 한 생각도 해 본적이 없다. 이게 부모의 마음일텐데 노아는 왜 함을 저주한 것일까? 그리고 심지어 함도 아니고 함의 자녀 가나안을 저주하였을까?

4.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고 이해하기 쉽지 않은 본문이다. 묵상하며 든 생각은 이 본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란 것이다. 

5. 무슨 말이냐 하면 노아가 술에 취해 자고 있을 때, 자녀들이 노아의 수치를 덮어 줄 때, 그리고 노아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녀들을 저주할 때, 이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의 모습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술 취해 자는 아빠, 그것을 보고 형제들에게 말하는 아들, 또 그 사실을 알고 자녀를 저주하는 아빠…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6. 심각한 상황이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의 일상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모습이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인용 하면서도 내 생각, 내 뜻으로 행하고 있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이 정말로 다른 이를 저주하길 원하셨을까? 하나님이 정말 믿음의 아버지가 술에 취해 옷을 벗고 자길 원하셨을까? 

7. 아니다. 모든 것이 우리의 죄악된 모습에서 시작된 모습이고, 그 어느 모습 하나에서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 오늘 본문은 그저 인간들의 죄악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본문일 뿐이다. 

8.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께 묻지 않으면 오늘 본문같은 일들이 생겨난다. 술 취해 벗고 자게 되고, 자녀가 부모를 멸시하게 되고, 부모가 자녀를 저주하게 된다. 하나님을 찾고, 묻고, 듣고 있는가? 계속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면서도 얼마든지 하나님 없이 살아가고 일 할 수 있는 것이 나의 모습임을 잊지 말자. 

9. 어제 프레쉬 형제를 만났다. 무슬림 가정에서 자랐지만 석 달 전 즈음에 우리 교회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신년에 집에 다녀오면서 사단이 일어났다. 집에서 무슬림 의식에 참여하길 요구했는데 이 형제가 자신이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참여하기 어렵다고 가족들에게 이야기 했고, 이 일로 가족들과 큰 어려움이 생기면서 특별히 어제 만나게 되었다. 

10. 프레쉬 형제에게 자신이 결단한 믿음을 이 상황 속에서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가족들에 대해서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마음으로 섬겨야 함을,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상충될 때에는 존중하는 태도로 거절해야 함을 나눴고,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당연히 이런 일이 생길 수 밖에 없음도 나누었다. 그리고 이 일이 ‘왜' 생겼는지 질문하기 보다는 ‘무엇을 위해서' 일어났는지를 찾아보자고 나누었다. 그리고 온 교회가 함께 기도하기로 하였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렇게 새롭게 믿음을 가지는 일이 너무 귀하고, 정말 기적과 같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11. 하나님은 이렇게 모든 자녀들을 돌보고 계신다. 언제나 임마누엘의 약속대로 함께 하신다. 우리가 해야할 결단은 프레쉬 형제처럼 묻는 것이다.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또 하나님께 묻고 들으면서 그 분과 함께 걸어나갈 때에 오늘과 같은 죄의 파티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12. 오늘도 샬롬 


* 프레쉬 형제를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무슬림 가정에서 자랐지만 진리를 탐구하고 있었고, 저희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오늘 큐티의 내용처럼 지금은 가족들과 무슬림 의식 때문에 어려운 상황입니다. 프레쉬 형제가 바른 믿음과 사랑의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믿음이 강건하여지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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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 1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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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8:1-22 노아의 급진적(radical) 예배

1.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말 그대로 홍수난 지구를 둥둥 떠 다녔다. 배 안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서로 이야기 했을까? 

2. 자신들이 살았음에 대한 안도의 한숨을 지었을까? 아니면 이 세상에 오직 자신들만 살아 남았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 했을까? 그들이 생각했던 하나님은 분명히 무섭고 엄한 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3.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 모든 생명을 쓸어버릴만큼 엄히 심판하시는 무서운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이해했을 것이다. 이제 물이 말랐고 (13절)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 모든 짐승들을 방주로부터 나오게 하신다 (19절).

4. 하지만 노아만은 달랐던 것 같다.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하였다. 하나님은 방주에서 나온 노아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셨지만 노아는 제단을 쌓았고 제사를 드렸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20절)

5. 우리가 아는 것 처럼 모든 정결한 새와 짐승들은 암 수 일곱씩 방주에 탔다 (7장 1절).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칠지 아무도 모르지만 (혹시 정결한 짐승들이 모조리 죽어버리면 어떻게 하려고??) 노아는 그 중에서 정결한 짐승과 새를 취하여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6.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쓰고 남는 것이나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을 앞뒤 재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우리의 제사요, 예배인 것이다. 요즈음 식으로 이야기 하면 노아는 급진적인 예배(radical worship)를 드린 것이다. 

7. 노아의 예배를 보면서 나의 예배의 태도를 점검하게 된다. 나는 하나님께 어떠한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어떤 것인가? 혹시 쓰고 남은 것,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을 드리면서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드린 마냥 우쭐해 하지는 않는가? 가장 귀한 것은 절대 안돼요!! 라고 하면서 뒷쪽에다 숨겨두고 드려도 아깝지 않을 만한 것만 드리면서도 예배드렸다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 

8.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로는 아마 우리의 생명일 것이다. 우리의 삶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 내가 원하고, 즐겁고 행복한 것도 좋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 다음은 무엇일까? 아마도 재정, 가족,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어떠한 것들 등등의 우리가 사랑하는 그 무엇인가일 것이다. 그것들 또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드린다는 것이 하나님께 무조건 바쳐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위해 사용되어져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내가 그 어느 것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9. 하나님을 가장 사랑할 때 드릴 수 있게 된다. 하나님만 우리의 최고봉일 때 우리는 모든 것을 해로 여기게 된다. 노아와 같이 삶의 급진적 예배를 드릴 수 있게되기를 원한다. 여전히 아깝고, 하나님과 비교될 만큼 사랑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노아와 같이 앞뒤 재지 말고 드리고,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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