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 1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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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7:1-24 한 사람의 바른 믿음의 대상과 의지함이 다른 이들를 구원으로 이끈다

1. 노아와 노아의 가정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다. 그 이유는 노아에게서 하나님은 의로움을 보셨다고 본문은 설명한다.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라" (1절 하반부)

2.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즉 노아의 의로움은 행위에서 나온 의로움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된다. 노아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의로움은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3. 그런데 노아의 의로움은 노아 자신만 구원한 것이 아니었다. 7절을 보면 노아의 아들들, 아내와 며느리들 까지 방주로 함께 들어오게 되었고 (7절), 정결한 짐승, 부정한 짐승,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이 암수 둘씩 방주로 들어오게 되었다 (8절).

4. 성경에서는 한 사람이 늘 중요하게 여겨진다. 하나님 앞에 선 그 한 사람에 따라서 자신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저주를 받거나(아담) 혹은 반대로 자신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까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된다 (노아, 예수님 등등). 

5. 그래서 오늘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나는 다른 자들까지 죄와 사망의 저주로 이끌어 가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들로 하여금 의와 생명으로 이끌어 가는 사람인가? 나의 삶은 영향력이 분명히 있는데 그 영향력을 어떤 방향으로 발휘하고 있는가? 

6. 그런데 나는 나 자신조차 어떻게 할 수 없는 연약하고 죄가 가득한 사람인데 다른 이들을 어떻게 생명으로 이끌 것인가? 내 속에 선한 것이 조금도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믿음의 시작이다. 내가 할 수 없고, 내가 변화시킬 수 없고, 내가 조금도 기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7. 따라서 중요한 것은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나의 믿음과 의지의 대상이다. 나의 믿음과 의지의 대상이 완전하신 하나님께 가 있지 않다면 모든 것은 허무할 뿐이고, 모든 것이 나로 하여금 다른 이들을 죄와 사망으로 이끌어가게 만들 것이다. 나는 지금 예수를 온전히 믿고 의지하고 있는가? 

8. 노아는 정말로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아가면서도 오랜시간 동안 방주를, 그것도 산 꼭대기 위에다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큰 방주 문을 어떻게 닫을지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지 않으셨다. 방주 문이 안 닫히면 다 죽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나가서 닫으면 자신은 들어올 방법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였고, 의지하였다.

9. 하나님께서는 방주의 문을 친히 닫아주셨고 (16절), 하나님을 향한 노아의 믿음과 의지함이 결국 모두를 생명과 구원의 길로 이끌었다. 선교사로서 노아와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기 원한다. 나의 믿음의 방향과 의지함이 태국 사람들을 생명과 구원의 길로 이끌어가는 통로가 되길 원한다. 그러기에 오늘도 더 그리스도를 붙드는 하루가 되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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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 1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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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5:1-32 자녀를 낳은 자와 하나님과 동행한 자

1. 창세기 5장은 구속사의 계보를 알려준다. 그래서 읽다 보면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의 연속이다. 하지만 자세히 족보를 살펴보면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나온다. 

2. 첫 번째는 누가 누구를 낳고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당하는데 그들에 대한 설명은 ‘몇 년을 살았고, 자녀를 낳았다’ 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cultural mandate) 이었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충성스러웠던 자들이었다.

3. 하지만 또 다른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그는 바로 22절에 나오는 에녹이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라고 그의 인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찾지 못한 설명이다.

4. 에녹의 인생은 하나님의 지상 명령에만 순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이유와 원리를 따라 산 사람이었다. 우리 모두는 단지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해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 태어난 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 분을 예배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다. 

5. 하지만 이 땅에서 살아갈 때에 지상 명령에 함몰되어 살아갈 때도 많다. 아이들을 키우고 양육하느라, 생업에 종사하느라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을 놓치고 살아갈 때가 많다. 물론 출산률이 낮은 이 시기에 아이들을 낳아서 키우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6.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하나님과의 교제가 바로 서지 않는다면 아이들에게 독이 나갈 뿐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랑과 공의가 나가지 않고 편애와 자기중심적인 사랑, 뒤틀려진 의만 나타날 뿐이다.

7. 에녹의 자손에서 노아가 나왔다. 노아는 당대의 의인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사람이었다. 가인의 가계도를 기억할 것이다. 하나님이 없고 죄가 가득찬 가정에서는 라멕과 같은 상처 받은 사람으로 양육될 가능성이 높다. 

8. 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던 에녹의 가정에서는 노아와 같은 자손들이 나오게 된다. 결국 자녀들은 부모의 신앙의 유산인 것이다. 아이들에게 기도해라, 예배해라, 말씀봐라 말하는 것 보다 내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신앙의 유산일 것이다. 아이들이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아빠가 자녀를 낳은 사람인지, 아니면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인지.. 아이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기를 원한다.

9. 가끔 두려운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복음을 전한다고 태국에 선교사로 와 있지만 혹시 우리 아이들이 신앙의 유산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지?’ 라는 두려움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내가 자녀를 낳은 자로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서 살아가고 싶다. 물론 그게 모든 이유의 전부는 아니지만 말이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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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 1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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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4:16-26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가정

1.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고, 도피성으로 피신하게 된다. 하나님은 동생을 죽인 아벨도 사랑하셨다. 가인은 가인의 계보를 만들어 간다. 하지만 죄로 인해 무너진 가인의 계보는 또한 죄로 가득 차 있었다. 

2. 그의 후손들 중 라멕은 (19절) 두 아내를 맞이했다. 하나님의 법칙은 한 남편과 한 아내가 만나서 한 몸을 이루는 것이었지만, 라멕은 그것을 거부하고 두 아내를 얻게 된다. 

3. 그런데 두 아내를 맞이한 라멕의 행동은 무엇인가 그의 상처에서 기인한 것 같다. 정확히 나오지는 않지만 23절에서 그의 상처가 언급된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들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4. 그의 상처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하나님의 정해주신 법을 어기고 아내를 둘이나 두었고, 그의 상처로 말미암아 사람을 죽였고, 소년을 죽였다. 아마도 죄의 가득찬 가정상황 속에서 어린시절 부모로 부터 받은 상처가 아닌가 생각된다. 

5. 라멕의 상황을 보면서 나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특별히 최근 또 틱이 심하게 나타나고, 예준이와 마라 사이에서 뭔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부정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는 요엘이가 생각이 났다. 

6. 요엘이는 예민한 아이이고, 부모가 그 마음을 헤아려 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어제 들은 설교도 생각났다. 예수향남교회 이신형 목사님이 청소년부 사역할 때 자신이 지은 죄를 종이비행기에 써서 날려보내고 용서를 받자고 했는데 그 비행기 안에 많은 수가 ‘아빠를 죽이고 싶었다’ 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7. 나는 어떤 부모일까? 내가 아이들에게 준 상처로 인해 아이들의 인생이 라멕과 같이 자신의 받은 상처로 인해 괴로워할까 두려운 마음이 든다. 좀 더 너그럽고, 좀 더 이해하고, 좀 더 사랑하는 아버지가 되고 싶은데.. 나도 나의 상처로 인해, 나의 연약함으로 인해 쉽지가 않다. 

8. 아담의 가정은 다시 하나님께서 아벨의 뒤를 이어 셋을 주셨고, 셋은 라멕과 달리 에노스를 낳으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26절).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예배이다. 결국 아이들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고, 아이들에게 부지런히 우리의 연약함과 다른 하나님의 크심을 나눠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이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결국 가정의 분위기이다. 

9. 죄로 가득찬 환경에서 여호와를 부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찬양과 말씀과 기도가 가득찬 환경에서 아이들이 여호와를 부르는 것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아버지로써 다시 가정 예배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내 아이들이지만, 하나님의 자녀임을 잊지 말고, 특별히 요엘이에게 더욱 더 은혜의 마음으로 다가가야겠다. 

10.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가정을 꿈꾸며,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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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 1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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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3:14-24 모든 것 되신 하나님과 아무것도 아닌 우리 

1. 아담은 그의 아내와 함께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열매를 먹었다. 그 결과는 단지 자신에게만 미치지 않았다. 온 우주와 피조만물들이 저주를 받게 되었다. 뱀도 저주를 받았다 (14절).

2.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3:15절의 원시 복음을 통해서 인류에게 여전히 소망을 남겨 주신다. 그 소망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것이다. 뱀의 자손들은 여전히 남아서 여자의 후손을 괴롭힐 것이지만 여자의 후손이 나타나서 그 뱀의 머리를 작살내 버릴 것이다.

3. 그래서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소망이 되신다. 다른 것이 우리의 소망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의 소산들도, 그리고 우리에게 가시 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될 땅도 우리의 소망일 수 없다. 

4. 그런데 지금 시대를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우리의 소망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땅과 그 땅의 소산들일 때가 너무나도 많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태국도 마찬가지이다. 땅으로 대변되는 부동산, 동산으로 대변되는 재산들을 가진 사람들, 땅의 소산들로 대변되는 공산품들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5. 나는 다른가? 나는 다르고 싶지만 별반 다르지 않다. 하나님을 소망으로 삼고 살아가겠다고 하지만 나 또한 얼마나 자주 땅과 땅의 소산들에 소망을 둘 때가 많은가? 오늘 본문의 원시복음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것 같다.

6. 땅도 땅의 소산들도 우리의 참된 소망이 될 수 없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형벌일 뿐이다. 참된 소망이 아닌 것에 참된 소망을 두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지혜로운자가 되어야 한다. 

7. 참된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아는 것이 지혜이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내가 흙이라는 것을 아는 것, 내가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이다. 

8.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고, 우리는 아무것도 아님을 말한다. 아무것도 아닌 자를 위해 모든 것 되신 분이 죽으셨음을 이야기 한다. 그 분이 모든 것임을 알고,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알 때, 땅과 땅의 소산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 수 있을 것이다. 

9.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분이 모든 것 되신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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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 1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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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3:1-13 복음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1. 본문은 너무나도 유명한 인간의 타락에 관한 본문이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본문을 볼 수 있겠지만 본문을 읽으면서 들어온 구절은 10절이다. 

2.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0절) 에덴동산에 그 이전까지는 두려움이란 없었다. 벗었어도, 하나님을 대면하여도 두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죄로 인해 두려움이 들어왔다.

3. 이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죄에 대해 아실 것이란 두려움이었을 것이고, 그에 따른 벌을 받을 것이란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두려움은 결국 모든 관계를 다 망쳐놓았다. 하나님과의 관계, 아내와의 관계, 그리고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를 망쳐벼렸다. 

4. 두려움은 많은 순간 관계를 깨뜨린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친구와 친구 사이에도..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말이다. 두려움의 뿌리는 죄이다. 죄가 우리로 하여금 두렵게 만들고, 죄가 우리로 하여금 염려하게 만드는 것이다. 

5. 복음은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면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움의 노예로 살 수 없다. 이러한 가사로 찬양한 노래가 있다. 바로 No Longer Slaves 라는 찬양인데 여기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I'm no longer a slave to fear, I am a child of God” 나는 더 이상 두려움의 노예가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6. 오직 복음만이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다음에 15절부터 원시 복음이라 불리우는 복음이 주어지지 않는가? 

7. 결국 복음이 해답이다. 관계의 문제, 두려움의 문제, 삶의 문제들은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어야 풀릴 수 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복음을 통해 그 분의 신부가 되는 관계의 회복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8. Gospel Changes Everything!! (복음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이것은 구호가 아니다. 이것은 사실이고, 실제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붙들지 않고는 한 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그리스도를 붙든다. 우리를 위해 자신을 버리신 그 하나님의 아들을 붙든다. 나의 정체성은 오직 복음으로 부터 나온다. 

9.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모든 두려움과 모든 관계의 어려움과 삶의 모든 어려움에서 구원하여 주시길 원한다. 하지만 그 구원이 내 생각과 다른 방법이고, 때로는 기다림일지라도 오직 어린양 되신 그리스도만 따라가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No Longer Sla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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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9-19 바운더리를 넓히자. 

1. 창세기는 창조에 관한 과학교과서가 아니다. 창조가 어떻게 과학적으로 증명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보다는 신학적 진술에 가깝다. 

2. 따라서 창세기를 통해서 창조의 세부적인 내용, 방법 혹은 순서를 찾으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창조에 대한 신학적인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3. 9-10절에서는 땅과 바다를 구분하시고, 11-13절에는 풀과 채소를 각기 종류대로 만드셨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냥 퉁 쳐서 만드신 것이 아니라 각기 종류마다 시간을 내어 아름답게 만드신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뭔가 해와 달, 별에 비해서 뭔가 가치 없어 보이는 풀과 채소를 하나님은 각기 종류대로 만드셨다.

4. 가끔 산책으로 동네를 돌다 보면 색깔이 너무 아름다운 나뭇잎들, 세세하게 디자인되어 있는 꽃들을 보며 아내가 감탄사를 연발할 때가 있다. 나는 그렇게 감상적이지도, 그렇게 열심히 사물을 관찰하지도 않기에 아내가 놀라면 그제서야 그것을 보게되는데… 정말 세밀하게 디자인 하셨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들을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신다.

5.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이다. 풀과 채소가 각기 종류대로 갖는 다양성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것들이다. 물론 이 세상이 죄로 인해 오염되고, 망가진 모습이 된 것도 사실이다. 

6. 이 다양성을 보며 나도 좋은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때로는 이 다양성이 나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물론 풀과 채소의 다양성은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의 다양성은 그것이 좋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불편하고 힘들게 만들 때가 있다. 

7. 다양성이 힘든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옳은 바가 있기 때문이고, 내가 생각하는 바운더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 바운더리를 넘어가는 다양성에서 내가 힘든 마음을 느끼는 것이다. 아 그래도 선교사고 목사니까 이정도는 해야지.. 아 그래도 리더니까 이정도는 해야지.. 그래도 가족이니까 이정도는 서로 해야지… 등등

8. 그 바운더리를 넓히는게 다른 사람의 다양성을 더 인정하는 방법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 좋았다고 하셨으니 나도 더 넓은 것들을 보며 ‘아 저건 하나님께서 보시기 좋았던거야’ 라고 생각하며 내 마음의 다양성을 넓혀야겠다. 

9. 좀 더 마음을 넓게 가지고, 좀 더 넓은 시야로 보며, 내 바운더리로 다른 사람을 쉬이 판단하지 말자. 그것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교훈이다. 이 세상은 악하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곳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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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4:1-8 기도의 응답은 은혜이다

1. 다윗은 기도의 응답을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했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1절)

2. 다윗의 이러한 태도와는 다르게 요즈음은 기도의 응답이 하나님께서 내게 꼭 해줘야 하는 당연한 필수조건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즉, 하나님은 ‘램프의 지니’이시기 때문에 나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셔야만 한다는 잘못된 생각이다.

3.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줘야 하는 의무적인 사항이 아니다. 모든 것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우리에게 가장 좋은 때에 주시는 분이시다. 아이가 때를 쓴다고 해서 다 들어주지 않는 것과 같다. 하지만 때로는 그 기초적인 사항 조차도 무시하면서 하나님께 오직 기도의 응답을 바란다.

4. 그리고 우리의 뜻대로 (내가 원하는 응답을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응답하지 않으시면 화를 내고, 하나님께 실망했다고 말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오늘 아침 페북에서 본 팀 켈러의 짧은 말이 오늘 큐티와 연결이 되는 것 같다. “God will only give you what you would have asked for if you knew everything he knows.” 만약 당신이 하나님께서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구한 것 만을 주실 것입니다. 

5.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않는 이유, 지체하시는 이유, 혹은 때로는 기도할 때 즉시 주시는 이유는 그 분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고, 그 분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의 기도가 때로 지체되고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적당한 것을 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6. 따라서 다윗과 같이 우리가 기도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당연한 응답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응답은 은혜요, 모든 것을 아시며 가장 좋은 길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이다. 그것이 응답의 딜레이 일지라도 혹은 무응답일지라도 말이다.

7. 내가 가져야 할 태도는 하나님께서는 가장 선한 분이시며, 나의 아버지이시며,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라는 것이고,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내 눈에 보기에 좋지 않거나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8. 올 한해 다윗의 태도를 가지기 원한다. 기도를 함에 있어서 정답을 정해놓고 기도하기 보다는, 응답을 얻기 위해 기도하기 보다는 기도하며 하나님을 더 알아가기 원한다. 내가 판단하고, 내가 생각하여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지 않기를 원한다. 그저 사무엘과 같이 말하기 원한다.

9.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삼상 3:10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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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3:1-8 하나님께 중독된 자, 다윗

1. 시편 3편은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할 때에 지은 시라고 표제에 나온다. 다윗이 사랑한 아들, 하지만 지금은 다윗의 왕의 자리를 탐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압살롬이다. 

2.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회의가 들었을까? 자신이 사랑한 아들에게 배신을 당하는 자신의 모습이.. 그리고 이 때다 싶어서 다윗을 비방하던 시므온과 같은 무리들이 또 있지 않았던가? 

3. 하지만 다윗은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3절).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하나님을 찾는다.

4. 그리고 모든 복수를 하나님께 의탁하고 오직 하나님께서만 자신을 구원해주시길 탄원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다윗은 사람을 의식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윗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람 사람들의 조소나 사람들의 반역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이었다. 

5. 그는 정말로 하나님께 중독된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사람들의 평가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의지하게 만든 것이다. 

6. 중독은 보통 나쁜 것에 사용되는 단어이다. 마약 중독, 게임 중독과 같이 말이다. 중독은 그것이 없이는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7. 그런면에서 우리는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중독되어야 한다. 중독과 동의어이면서 그나마 좋은 의미를 가진 단어는 의존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단어이든 부정적인 느낌은 지울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의존하고 중독된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합한 자라는 것이다. 

8. 나는 무엇을 의존하고 있는가? 무엇에 중독되어 있는가? 사람들의 인정인가? 재정인가? 사역의 확장인가? 모두 좋은 것이지만 하나님보다 더 의존할 때 그것은 우리에게 독을 내뿜게 된다. 그것이 바로 팀 켈러가 말하는 우상들이다. 하나님께 중독되지 못하면 다른 것에 중독되게 된다. 완전히 선하신 분께 중독되지 않으면 다른 독을 내뿜는 것에 중독되게 된다. 

9. 2022년 새해에는 하나님께만 중독된 사람이고 싶다. 다른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지 않게 되기를 원한다. 나의 영어(태국) 이름이 David이다. 그 이름처럼 올 한해는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중독되어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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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1. 12. 3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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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후 4:9-22 부르심과 도우심, 감사합니다. 

1. 2021년도 마지막이고 디모데후서도 마지막 부분이다. 어떤 마지막 순간에 서면 사람은 진지해지고, 정직해지는 것 같다. 바울도 그랬다. 바울은 9-16절에서 몇 가지 부탁을 한다. 그의 부탁은 엄청난 것이 아니었다. 마가를 자신에게 데려오라는 것이다 (11절). 바울을 따르던 데마도, 그레스게도 디도도 다 가버렸기 때문이다 (9절). 그리고 또 그가 한 부탁은 세공업자 알렉산더를 주의하라는 것이었다 (14절). 

2.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보면 우리에게 해를 입힌 사람도 있고, 우리에게 유익한 사람도 있다. 결국 나를 떠날 사람은 떠나게 되고, 나와 함께 할 사람은 함께 하게 된다. 하지만 바울은 떠난 자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16절 “내가 처음 변명할 때와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3. 9-15절의 바울의 고백을 보면 잘못은 떠난 사람들에게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에게 집중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길 원치 않았다. 바울이 집중한 것은 오히려 자신의 사명이었다. 17절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마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들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4.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을 평생 마음에 새기고 살아갔다. 감옥에 갇혀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떠나 자기의 길을 찾아간 이 시점에도 바울은 자신을 불러주신 하나님과 그 분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다. 사명이 바울을 이끌어가고 있다.

5. 2021년 나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때로는 바울의 상황과 같이 사람들의 아픈 말과 행동들을 경험하기도 했고, 때로는 사람들로 인해 감사와 위로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2021년을 마쳐가는 시점에서 가장 감사한 일은 하나님께서 나를 태국 선교사로 불러주셔서 태국의 영혼들과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며, 복음을 위해 함께 애쓰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6. 또한 2021 한 해를 돌아보면 사도 바울을 사자의 입에서 건져주신 것 처럼 나의 삶에도 수 많은 은혜와 도우심의 순간들이 있었다. 그것이 나를 위함이기도 했지만, 태국의 영혼들을 위함이기도 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7. 다시 한번 나의 사명을 다잡는다. 나의 부르심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내가 왜 방콕에서 살아가는지를, 얼마나 많은 동역자분들의 기도와 후원을 통해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기억하며, 2022년에는 더욱 더 복음이 태국인들에게 들려지고, 더 많은 제자들이 세워지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8. 수쿰빛 언약교회를 위해 계속 기도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희 교회를 통해 올 한 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이 거의 10여 명이 됩니다. 지금 계속 복음을 전하기 위해 관계를 세워가는 사람의 숫자도 7명이 더 있습니다. 계속해서 영혼을 구원하고 제자를 세워가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9. 늘 저희 가정과 함께 걸어가주시고, 큐티를 읽고, 기도편지를 읽고 기도해 주시고, 자신의 재정의 일부분을 후원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희 가정이 2021년도 복음을 위해 나름 열심히 살았지만 2022년에는 더욱 더 복음을 위해, 한 영혼이라도 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제자로 세워지도록 애쓰며 수고하는 저희 가정이 되겠습니다. 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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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1. 12. 3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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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후 2:14-26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기

1. 바울이 디모데에게 해주는 조언은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필요한 조언이다. 15절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이다.

2. 목회자(선교사)에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일일 것이다. 이단들이 다 이 말씀을 분별하지 못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신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서 하나님의 말씀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함에서 오는 폐단도 크다. 

3. 하지만 반성해야 할 것은 오히려 성도들은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해석함에 있어서 공부를 많이 하든지, 자신의 주장 보다는 다른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반면에 목사들은 신학을 공부 했었기 때문에 (어떻게 공부했는지는 다 다르겠지만) 말씀연구에 오히려 소홀히 할 때가 많다. 

4.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기 보다는 자신의 상황, 정치적 신념 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다른 목사들로 치부할게 아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설교 준비를 하면서 적어도 4~6권의 주석을 보며 말씀의 중심을 잡겠다던 결심을 지키는 것도 참으로 힘들다. 쉽게 가고 싶은 유혹이 자주 든다.

5.  하지만 태국의 경우 바른 신학과 바른 말씀을 전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한 곳이다. 신학교육이 부족하거나 목회자들이 배움이 약한 경우도 많다. 따라서 이들을 미혹하려는 이단도 많다. 믿는자도 많지 않은데 말이다. 

6. 내가 정신줄을 놓고, 편한 것을 추구하고, 성경의 자의적인 해석을 해버린다면 수쿰빛 언약교회의 교인들이 과연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겠는가? 

7. 2021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다음 2022년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디모데에게 주신 말씀을 또한 내게 주신 것은 내가 어떠한 마음으로 말씀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일 것이다. 

8.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나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2022년이 되기를 원한다. 수쿰빛 언약교회에 바른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기 원한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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