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1. 11. 1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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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26:1-12 나의 존재를 무엇 위에 세울 것인가? 

1. 다윗은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인정을 구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부모가 인정하지 않았던 막내아들이었고, 사울의 딸인 아내 미갈로부터도 늘 무시를 당했다.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지 않을 수 없다. 

2. 하지만 다윗의 장점은 그러한 자신의 삶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분의 인정을 구하였다.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1절)

3.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그 곳을 사모하였다. “여호와여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8절)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하나님의 임재하신 곳 또한 그렇게 사랑한 것일까? 

4. 그의 존재의 기반 자체가 하나님이였기에 그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인정만 있으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는 인정은 필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존재를 하나님으로 세우는 과정이 없이는 바람의 흩날리는 갈대와 같은 인생이 될 수 밖에 없다. 

5. 나는 오늘 무엇 위에 나의 존재를 세우고 있는가? 하나님인가? 아니면 내가 하고 있는 어떤 사역인가?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인가? 아니면 내가 잘 하는 어떤 것인가?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의 눈에 보기에 잘 될어갈 때도 있겠지만 잘 안되어 갈 때도 분명히 있다.

6. 나의 존재를 변하는 그 무엇인가에 둔다면 그것이 변하면, 쇠퇴하면 나의 존재 자체도 변화하고 쇠퇴하게 된다. 결국 영원한 하나님께 나의 존재를 두어야만 흔들리지 않게 된다. 

7. 오늘도 나의 존재를 영원하신 하나님 위에 세우기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남님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하고, 묵상해야 하고, 들어야 한다. 

8. 어느 분의 글에서 봤다. 만약 칼빈이 지금 태어났다면 20세에 기독교 강요를 쓰지 못했을거라고.. 유혹이 너무 많다. 재미있는 것들, 유튜브, 넷플릭스 등등등 우리의 시간을 빼앗아가고, 하나님 앞에서 시간을 보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런 것들 보다 더 주님 앞에 서 있는 시간이 더 달았으면… 오늘도 의지적으로 더 그 분 앞에 서 있는 내가 되길..

9. 오늘도 샬롬


*이번 학기에 랏끄라방 감리교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강의하게 되었습니다. 어제가 첫 강의였는데 감사하게도 잘 마쳤고, 12주 동안 매주 수요일에 9-12시까지 강의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교가 더 나눠지고, 저는 지식적인 준비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준비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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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1. 11. 1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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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48:1-14 지금은 온전하지 않지만…

1.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각 지파들에게 땅을 나눠주고 있다. 어제 본문에서도 땅을 나눠주고, 오늘 본문에서도 땅을 나눠주고 있다. 땅은 모든 것은 근본이기에 누구에게나 땅이 있어야 한다. 

2. 그래서 모든 지파에게 공평하게 나눠주고 있다. 그런데 구약을 보면 땅을 받지 못하는 부류들이 있다. 그들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땅을 받는다. 

3. 그 땅 중앙에는 성소가 있고, 이 땅은 여호와께 드 예물로 삼을 땅이었다 (9절). 이 땅의 특징은 14절에 나와 있다. “그들이 그 땅을 팔지도 못하며 바꾸지도 못하며 그 땅의 처음 익은 열매를 남에게 주지도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 거룩히 구별한 것임이라"

4. 이 땅은 제사장들의 소유였다 (11절). 하지만 이 땅은 제사장들의 생계를 위한 땅도 아니었고, 제사장들은 이 땅을 통해 어떠한 유익을 누리지 못한다. 이 땅은 오직 여호와께 구별된 거룩한 땅이다. 

5.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다. 구별된 곳, 하나님께 드려진 곳, 어떠한 인간의 생계유지나 이익이 작동되지 않는 곳..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는 곳… 완벽한 모습의 내가 소망해야할 모습이다.

6. 우리 교회는 어떠한가? 나는 어떤가? 이 땅에서는 이러한 완벽히 구별된 곳은 불가능하다. 목사도, 선교사도 그 어떤 직책이 있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현실에 발은 딛고 영원을 바라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7. 하지만 그 소망마저도 없이 살아가서는 되겠는가? 영원과 완성의 그 날을 바라보지 않고 오늘 이 현실의 괴리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겠는가? 소망을 품고 오늘을 살아가자. 내가 좀 부족하고 연약하더라도.. 이 땅에서는 완벽할 수 없다. 

8. 매일의 삶에서 반복되는 연약함의 문제는 언제나 마음을 어렵게 한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사역에서 드러나는 스스로의 연약함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영원한 소망을 이 땅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 두셨음을 잊지 말고 다시 힘을 내어 오늘을 살아가자. 

9. 회복시키실 온전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함으로 살아가자. 지금 좀 연약해도, 지금 좀 부족해도 괜찮다.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위로를 통해 회복을 경험하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 수쿰빛 언약교회 1주년 예배를 잘 드렸습니다. 준비과정부터 1년 동안 늘 기도해주시고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제 페북에 1주년 예배 사진이 있습니다. 1주년때 함께 보았던 기념영상 유튜브 링크도 함께 보내드립니다. 샬롬

https://www.facebook.com/jdreamer79/

https://youtu.be/Ca7H_hDn2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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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1. 11. 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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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45:1-17 리더에게 요구되는 정의와 공의

1. 하나님께서 리더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한결같다. 그것은 바로 정의와 공의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아 너희에게 만족하니라 너희는 포악과 겁탈을 제거하여 버리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내 백성에게 속여 빼앗는 것을 그칠지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절)

2. 10절에서도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공정한 저울과 공정한 에바와 공정한 밧을 쓸지니" 정의와 공의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해야 한다. 있는 자에게는 관대하고 없는 자에게는 몰아붙이듯이 하는 것이 아니어야만 한다. 

3. 그런데 한국 사회를 보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맞게 느껴진다. 얼마전 태국에서도 태국 몇 대 재벌인 레드불의 아들이 만취상태에서 교통사고를 내고 심지어 경찰까지 사고로 죽는 일이 있었는데 결국 보석으로 풀려났다. 가진 자들은 가진 특권을 사용해 자신들의 잘못도 감출 수 있는 사회인 것이다. 

4. 그래서 요즈음 청년들의 가장 큰 화두는 공정이고, 평등이고, 탈권위라고 한다. 아마도 한국의 추세가 아니라 태국을 비롯해서 전세계적인 추세인 것이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정의와 공평을 요구하신 것은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에게였다 (9절).

5. 정의와 공의를 먼저 실천해야 하는 사람은 소위 가진 자들이다. 재물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먼저 이 정의와 공의를 실천해야만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조금이나마 실현할 수 있게 된다. 

6.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가진 자들과 똑같이 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평등한게 중요한게 아니라 공평(equity)이 더 중요한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보여야만 한다. 리더의 무거움을 느낀다. 

7. 교회의 성도들은 리더들을 본다. 리더들에게 무엇인가가 있어서가 아니라 리더들의 태도와 삶의 자세를 보며 자신들도 모르게 배워가게 된다. 성도들이 배우는 그리스도인의 모습 중에 하나가 내가 될 확률이 높다. 무거움을 느낀다. 내가 더 정의롭고 공평한 사람으로, 즉 하나님 앞에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 

8. 아이들에게는 어떠해야 하는가? 부모라는 권위로 누르고, 내 말을 듣도록 만들어야만 하는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성향이 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보듯이 아버지로서도 정의롭고 공의롭게 행해야 한다. 그들이 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중에 저들이 아버지가 되었을 때의 모습일 확률이 높다. 

9. 그래서 필요한 것은 은혜이다. 내 안에 선한 것이 없다. 교회에서도 집에서도 연약함 투성이며, 섬기는 것 보다는 군림하는 모습이 더 쉬운 나이다. 은혜를 구하며,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겸손과 자기부인이 내가 죽고 나서 나를 기억하는 단어가 되기를 소망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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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1. 11. 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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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44:15-31 나의 연약함의 고백

1. 오늘 본문에서는 제사장의 사명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제사장이 해야 할 것은 제사 드리는 것을 돕는 것이다.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서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지니라" 

2. 그리고 그들은 거룩과 부정을 가르쳐야만 했다.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3. 그리고 그들은 가르칠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거룩함을 지켜야 했다 (23-26절). 그들의 삶의 모습이 거룩이어야만 했던 것이다.

4.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제사장들의 기업이다. “그들에게는 기업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 기업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들에게 산업을 주지 말라 내가 그 산업이 됨이라"

5. 물론 29-31절을 보면 제사의 제물과 첫 열매들, 첫 밀가루 등을 제사장에게 줘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제사장들은 기업도 산업도 가져서는 안되었다. 왜냐하면 세상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서 바로 그들의 기업과 산업이 되시기 때문이었다. 

6. 비단 제사장만의 삶 뿐일까? 선교사, 목사로의 삶은 어때야 하는가? 그리고 성도로서의 삶은 어때야 하는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의 사명은 무엇일까? 

7. 거룩은 우리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룩을 완성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만 우리는 거룩해 질 수 있다. 거룩한 삶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역시 마찬가지로 내가 노력한다고 거룩해 질 수 없다. 오직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될 뿐이다. 

8. 우리의 사명은 그렇기에 예수를 알고 예수를 믿고 예수 안에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우리의 기업으로 삼고, 세상 안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도록 살아가야 한다. 사실 너무나도 어려운 이야기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을 비롯한 물질이 되어 버렸다. 

9. 하나님은 정말 나의 기업이자 산업이신가? 나의 관심은 거룩에 있는가? 나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는가? 한 가지 질문에도 쉽게 ‘네'라고 대답하지 못하겠다. 나의 믿음의 수준이 참으로 연약하기 그지 없다. 말씀을 대하며 절망을 경험한다. 하지만 이런 믿음 없는 자에게도 하나님께서 선교사로 불러 주셨음에 그저 감사할 수 밖에 없다. 그저 예수 안에 있고자 더 발버둥치며, 오직 주의 은혜만을 구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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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1. 11. 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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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43:13-27 정하신 방법과 순서대로 순종하기 

1. 본문 13-17절에서는 제단의 크기와 모양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은 항상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우주도 실제로 물리적 법칙과 질서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 

2. 그리고 그렇게 정확하고 질서있게 디자인된 제단을 정결하게 하는 것은 ‘피'이다. 하지만 그 피를 아무렇게나 뿌린다고 해서 제단이 정결해지는 것이 아니다. 피를 뿌리는데에도 질서와 절차가 있었다. 

3. 19절을 보면 사독의 레위 제사장이어야 하고, 20절을 보면 그 피를 제단의 네 뿔과 아래층 네 모퉁이와 사방 가장자리에 발라 속지해야 한다. 21절을 보면 제물이었던 수송아지를 성소 밖에서 불살라야 하고, 22절을 보면 다음 날에는 흠 없는 숫염소 한 마리를 수송아지와 동일하게 드려야 한다. 

4. 아무렇게나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정결함'이 아니다. ‘정결함'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과 순서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질문은 많을 수 있다. 왜 수송아지일까? 왜 피일까? 왜 염소를 또 드려야 하는 것일까? 

5. 질문을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정결함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과 순서대로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과 순서대로 순종하였을 때의 결과는 27절의 마지막 부분이다. “내가 너희를 즐겁게 받으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6. 믿음이라는 것은 때로는 많은 질문들을 가지게 되고, 또 이성적으로 사고해 보아야 한다. 그냥 믿는 것은 때로는 믿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전적인 우리의 믿음만을 요구하는 순간도 분명히 있다. 우리는 원리도 이유도 모르고, 그저 순종해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7. 그럴 때 요구되는 것은 그대로 하는 것이다. 이성적인 판단도 이유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순종하면 된다. 스스로 바쁘다고 생각하는데도 하나님께서는 또 하나의 사역을 주권적으로 열어주셨다. 감리교 신학교에서 선교학을 한 학기 동안 강의하게 되었다. 오직 은혜이다. 다음 주가 첫 강의다 보니 급하게 준비하느라 버겁기도 하고, 내용도 언어도 부족하기만 하여 답답하기만 하다. 

8. 하지만 강의 준비를 하면서 어떤 부분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르치려 하시는지 또 내가 무엇을 배우고 발전해야 하는지를 조금은 알 것 같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과 순서가 무엇인지도 조금 은 알 것 같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에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질문도, 이해도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함에서 나오는 순종이다. 

9. 내 삶을 하나님께서 즐겁게 받으시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의지하고, 신뢰함에서 나오는 순종과 기쁨을 하나님께 먼저 드릴 수 있기 원한다. 무거운 짐은 나 홀로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함께 져 주신다. 그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 드리며 그 분의 방법대로 순종함으로 나를 정결하게 하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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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1. 10. 28.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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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40:1-23 영원한 성전

1. 하나님께서는 어제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하신다. 선포하신 것 분만이 아니라 그것을 이상으로 에스겔에게 보여주시기 시작하신다. 

2.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에 이르러 나를 매우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에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그가 본 이상은 매우 높은 산과 성읍이었다.

3. 삼면에 둘린 바깥뜰은 박석이 깔렸으며, 북쪽 문은 동쪽 문과 크기의 구조였다. 이것은 무너진 솔로몬의 성전이었다.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기 원했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만나실 성전이었다. 

4. 구약 시대에서는 거룩하시며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죄악이 가득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성전에서 만나 주신다. 즉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었고, 우리가 용서를 받는 곳이었고,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하나님은 이 성전을 회복시키시겠다 말씀하셨다.

5. 이 성전은 작은 모습으로 회복되지만 결국 또 무너진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성전을 우리에게 허락하셨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성전에서만 가능한 영원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6.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성전은 다시 무너지지 않는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만 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반전은 너무 쉬운 방법이라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성전 되신 그리스도를 쉽고 가볍게 여긴다는데 있다. 

7. 매일 매일 그 성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으로, 그리고 또 그리스도의 부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예수 안에서의 생명의 풍성함을 누려야 한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8.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시간이 매일 풍성한가? 바쁨 속에서 오히려 나도 그 반전 속에 포함되는 사람은 아닌가? 나의 삶의 말과 행동은 이 풍성함 속에 거한 시간의 반영일 뿐이다. 거하면 거할 수록 거룩하고 풍성함이 흘러나오지만, 그렇지 못하면 독이 흘러 나올 뿐이다. 성도들에게 가족들에게 독이 아니라 사랑의 풍성함이 드러나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9. 어제부터 아이들이 제한부로 학교에 등교를 시작했다. 조금 더 시간이 생겼으니 조금 더 그 분의 풍성함 안에 잠잠히 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 원한다. 시간을 헛되히 쓰지 말고, 그리스도와 더 깊은 사귐을 갈망하자.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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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1. 10. 26.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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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39:17-29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것은? 

1.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요 3:16에서 말씀하는 것 처럼 세상일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아니면 인간일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 8:4

2.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둘 다 아닌 것 같다.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인 것 같다. 자뻑이나 자기애가 강하다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하나님은 정말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충실하시고 사랑하시는 것 같다. 

3. 25절 부터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이야기 하고 계신다. 이스라엘의 회복의 이유는 그들이 사랑스러워서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도 아니다. 25절을 보면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사랑을 베풀리라" 라고 말씀하신다. 

4.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사랑을 베푸신다. 하나님은 존재 자체가 사랑이시기에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이름을 위해 열심을 내시는 것이 곧 우리를 향한 사랑이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다. 

5.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시는 것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그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 세상의 회복이다. 이 역설적인 것과 같은 하나님의 자기 사랑이 선교의 원동력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더 드러내실 때, 자신의 영광을 더 보이실 때,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6. 이러한 역설은 우리 인간에게도 동일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할 때, 내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고, 우리의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는 잘못된 자기애에 빠지게 되어 나만 생각하게 되고, 나를 신으로 섬기게 된다. 

7. 사랑 그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회복도, 거룩도, 변화도 없다. 이스라엘은 그 분의 존재적 사랑으로 회복을 예언받지만 그들은 그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만나지 못했기에, 다시 잘못된 자기애에 빠지게 된다. 

8. 나는 하나님의 그 자기사랑의 충만함으로 표현인 삼위일체와 그리스도를 잘 알고 있는가? 그 분을 사랑함으로 내 자신을 더 사랑하고, 내 이웃을 더 사랑하고 있는가? 이번 주 금, 토, 주일에 2022년을 준비하는 교회 리더십 리트릿이 있다. 2022년에는 무엇으로 내가 더 사랑하고 섬길 수 있을지를 먼저 하나님 안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9. 그리고 가족과 아이들에게도 존재 자체가 사랑이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내 존재가 조금이라도 변하는 것이 보여질 수 있기를 원한다. 더 이상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남편, 아빠가 아닐 수 있기를.. 주님 은혜를 부어주소서..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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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1. 10. 25.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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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39:1-16 어려움은 숨겨진 회복의 프로세스이다

1. 에스겔에게 선표되는 말씀은 곡에 대한 심판이다. 1-5절은 그들에게 어떠한 심판이 임할지에 대한 예언이다. “모든 백성이 이스라엘 산 위에서 엎드러지리라" (4절 중) “네가 빈 들에 엎드러지리라” (5절 중) 그들은 죽고 망하게 된다. 

2. 이 일이 확실히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5절에서 말하기를 “이는 내가 말하였으민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보다 더 크신 분이 없기에 자신으로 밖에 맹세하실 수 없는 분이 자신의 말을 근거로 확증하신다. 이 일은 반드시 일어날 수 밖에 없다. 

3. 그리고 그들에게는 심판의 불이 내린다. 불이 내리는 이유는 첫 번째는 “내가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줄을 민족들이 알리라" (7절) 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히 곡 족속의 죄악만 심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으로 알려지셔야만 했다. 

4. 두 번째는 그 땅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12절과 14절, 16절에도 “그 땅을 정결하게 하리라"라는 표현이 반복되고 있다. 인간의 죄는 자연생태계를 오염시키고 병들게 한다. 하나님의 회복은 인간의 회복 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에 대한 회복이다. 

5. 이를 함께 생각해볼 때, 일상에서의 하나님의 심판은 회복을 위한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망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회복하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고,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우리의 일상에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시키기 위한 프로세스를 가지시는 것이다.

6. 물론 곡 족속은 심판을 선포받았다. 하지만 니느웨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심판은 회개하라는 메시지가 아닌가? 우리 삶에 어려움이 찾아오고, 두려움이 찾아오고, 억울한 일이 찾아오는 것은 때로는 그 안에 하나님의 회복의 과정이 숨어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7. 그 동안 수쿰빛 언약교회의 재계약 상황을 나누고 기도도 부탁드렸다. 감사하게도 YMCA에서 배려해주셔서 계약서는 32,000바트 (약 115만원)로 쓰되 첫 6개월은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이전과 같이 20,000바트 (72만원) 정도로 해주시기로 하였고, 이후 6개월은 코로나 상황을 봐가면서 다시 이야기 하기로 하였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8. 재계약 과정을 겪으면서 두려움도 많이 느꼈지만, 오히려 성도들이 함께 같은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었고, 교회 건물과 장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가졌다. 또 한국에서도 많은 분들이 기도해주시고, 요청하지 않았는데 임대료 헌금을 보내주신 분도 계셨다. 

9. 또한 나의 마음도 새롭게 됨을 경험했다. 오늘 본문의 내용과 같이 하나님의 회복의 프로세스였다. 앞으로도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고, 때로는 내 생각과 다르게 전개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뜻 안에서 걸어가고 있는 길에는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더라도 가장 좋은" 인도하심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걸어가기 원한다.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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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1. 10. 1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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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36:1-15 죄인의 정체성

1. 이스라엘은 불순종으로 인해 다른 민족들 가운데서 조롱거리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조롱거리가 된 이스라엘도 그저 버리지 않으시고, 이방인의 조롱거리가 된 이스라엘에 대해서 말씀하시기 시작하신다. (4절)

2. 조롱거리가 된 이스라엘이었지만 자신들의 죄를 보지 못하고 이스라엘을 조롱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말씀하신다. 모두들 자신들의 수치를 당해야 한다. (7절).

3. 그러고보면 나도 이방인들과 같은 같은 자이다. 나의 죄를 먼저 보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나의 약점도 많으면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냥 다른 사람들의 연약함이 더 빨리 눈에 들어온다. 

4. 한국의 전화번호 인증시스템은 엄청나게 편리하다. 하지만 해외에 살면 인증을 할 때마다 엄청난 인내력과 참을성을 요구한다. 그동한 한국 카드를 쓸 수 있는 앱카드들이 막혀있어서 오늘 드디어 핸드폰 일시정지를 풀어서 시도를 했다. 

5. 결과는 예상했던대로 2시간을 그냥 여기에만 쏟았다. 안되고 안되서 국제전화만 10번도 더 했다. 결국은 해내긴 했는데.. 아무리 해도 안되는 이상황이 조금 짜증이 났고.. 몇 번을 전화하고 기다려야 하는 시스템에 화가 좀 났다.

6. 그래서 상담하시는 분에게 컴플레인을 조금 했다. 왜 이게 안되는지, 나는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안된다는 것을 좀 어필했고 아마도 내가 화가 났음을 그쪽도 알았을 것이다. 끊고 나서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7. 그 사람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 분은 그저 상담원이었을 뿐인데.. 못내 마음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미안했다. 그리고 큐티책을 피고 큐티를 하는데… 이방인들이 자신들을 돌아보지 못함을 보면서 내 생각이 났다. 

8. 나는 언제즈음 조금 더 성숙할 수 있을까? 나도 실수할 수 있고, 내가 해도 내가 의도한대로 안되는 것들이 많은데.. 상관도 없는 분께 컴플레인 하고 화를 낸 것에 마음이 참 미안했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내 감정이 내 마음이 때로는 아이들에게 향하지 않는가? 아빠이기에 제대로 불만을 이야기 하지도 못하는데도 말이다. 

9. 내가 이방인들과 같은 자임을 잊지 말자. 겉은 뭔가 번지르르 해보이지만 내 정체성은 죄인임을 놓치지 말자.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은혜임을 잊지 말자. 오늘도 은혜를 붙들고 나의 죄됨을 회개하며 살아가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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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1. 10. 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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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31:1-9 생명의 물,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삶

1. 앗수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앗수르는 한참 잘 나갔다. 다른 이들에게 숲의 그늘을 주며 시원하게 쭉쭉 뻗고 키가 큰 아름다운 백향목 나무처럼 말이다. 

2. “볼지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숲의 그늘과 같으며 키가 크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3절) 그들은 너무나도 아름답게 커갔다. 8절을 보면 “하나님의 동산의 어떤 마무도 그 아름다운 모양과 같지 못하였도다" 9절에는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는 모든 나무가 다 시가하였느니라” 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3. 흔히 말하는 인싸였고, 아름다운 모양과 크기로 인해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샀을 것이다. 4절을 보면 “물들이 그것을 그리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심어진 곳을 둘러 흐르며 둑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4절) 5절에서는 “그 나무가 물이 많으므로 키가 들의 모든 나무보다 크며" 7절에도 “그 뿌리가 큰 물 가에 있으므로 그 나무가 크고 가지가 길어 모양이 아름다우매"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4. 나무를 키우는 것은 물이다. 물이 없이는 결코 잘 자랄 수 없다. 그런데 그 물은 누가 공급하는가? 나무가 자기 스스로에게 물을 공급할 수 있는가? 결코 없다. 그 물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교만일 것이다. 

5. 지금 내 삶에 이루어지고 있는 그 모든 것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잘나서 잘한 것 같고, 내가 뛰어나서 잘하고 있는 것 같은 일들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공급하셨던 물 때문임을 너무나도 잘 알 수 있다. 

6. 수쿰빛 언약교회의 개척은 내가 잘나서 했는가? 미국 선교사 부부와 태국 전도사님 부부를 만난 것은 내가 뛰어나서 만났는가? 여태까지 묵상을 읽어오신 분들은 알겠지만 내가 잘나서가 아니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걸어나가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만나게 해주신 것이었다. 

7. 나무에게 물이 필요한 것 처럼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영원한 생수일 것이다. 이 생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내 삶에 단 한 순간도 빈 자리 없이 가득 채워져 있는 생수, 그리스도이시다. 

8. 이 생수되신 그리스도를 이해한다면 교만함은 절대 허락될 수 없다. 내가 잘해서 뭔가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이 가당키나 한가? 생수를 먹는 자의 삶에는 ‘감사'만이 존재한다. 앗수를는 그러지 못했다. 결국 망했다. 

9. 나는 어떠한 삶을 택할 것인가? 망할 것이 두려워 감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했다고 생각하면서도 겸손한 것처럼 보여지기 위해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삶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 감사가 되어야만 한다. 그게 사실이기에.. 감사로 살아가는 삶이 되고 싶다. 내 생각과 다른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조금 부족해 보이더라도 은혜로 살아감을 잊지 말자.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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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