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1:45-57 그들이 아니라 내가 한 일…
1. 기적을 보고도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갈라진다. 기적을 행한 그를 믿을 것인냐? 혹은 그를 죽일 것이냐? 45절에 많은 유대인들은 그를 믿었다. 하지만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공회는 다른 사람들이 예수를 믿을까봐 두려워한다. (48절)
2. 그런데 그들의 논리가 참으로 신박하다.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47-48절)
3. 아마도 그들이 생각했던 것은 예수께서 많은 표적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게 되면 민란이 일어나거나 해서 로마인들이 그 민란을 제압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아가게 되는 것으로 이해한 것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했다.
4.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 16:24)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를 부인하지 못했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을 눈 앞에 보고도, 그가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도 예수를 믿기는 커녕 오히려 예수를 죽이려고 든다.
5.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는 자의 모습은 예수를 직접 보고, 예수를 직접 만나도 그를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나를 부인하고 있는가? NIBC(Not I, but Chirst)로 살아가고 있는가? 때로는 그렇게, 또 더 많은 순간 그렇지 못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6.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분의 뒤를 따라가기 원하지만 많은 순간 그 뒤를 따라가기 보다는 내 유익이 생각날 때가 많다. 선교사로 살아가면서도 예수보다 내 유익이 중요할 때가 더 많은 사람이다. 아직 자기 부인이 덜 된 제자의 모습이다. 그러니 예수의 뒤를 따라가지 못할 수 밖에…
7. 처음에 의아했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다른 사람이 먼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나의 이야기이다. 주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오늘 간구한다. 여전히 내 욕심과 생각을 쫓아가고, 여전히 내가 죽기 보다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어주신 것만 생각하며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하는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길 원한다.
8. 내가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모의한 자임을, 내가 그리스도를 판 자임을..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그 사람임을 잊지 말자. 하지만 자기 부인이 내 힘으로 결코 되지 않는다. 주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필요하다. 결국은 하나님 앞으로, 십자가 앞으로 더 나아가는 수 밖에 없다. 오늘도 예수의 복음이 나를 움직이고, 내가 그 복음으로 새롭게 되는 하루가 되기 원한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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