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3. 8. 2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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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전 1:1-12 인생에서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하고, 서로를 사랑함이 풍성한 삶

1.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하며 그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들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이야기 한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3, 4절).

2. 하나님께 감사했던 이유는 그들의 믿음이 자라고 있었고, 서로 사랑함이 풍성했기 때문이다. 믿는 자에게 이 두 가지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으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면 더욱 사랑할 수록 우리의 믿음도 당연히 커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즉,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던 계명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살아내고 있었던 것이고 바울은 이를 하나님께 감사했다. 

3. 그리고 바울이 자랑한 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인내와 믿음이었다. 박해와 환난 중에 있었던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그 모든 박해와 환난을 인내하였다. 바울은 그들의 믿음과 인내를 여러 교회에 자랑하였다. 

4. 그리고 5절에서는 이것이 이유를 설명한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5절)

5. 바울은 우리로 하여금 고난을 피하거나 무시 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인생의 고난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임을 증명하는 것임을 오히려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때때로의 우리의 고난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 

6. 오늘 본문을 통해 믿는 자의 삶의 모습을 요약한다면 이 3, 4절과 같을 것이다. ‘인생에서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하고, 서로를 사랑함이 풍성한 삶’. 사실 사랑은 ‘하나님'이라는 절대 선, 절대 사랑인 절대적 존재가 존재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절대적인 선이 없다면, 지켜야 할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면 우리가 굳이 사랑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본능을 따라서 사는 짐승들과 인간들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인간이 어때서이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르게 창조하셨고, 절대적인 선악의 기준을 인간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7. 절대 선이신, 절대 기준이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굳이 거룩을 추구할 이유도, 약한 자들을 도울 필요도, 사랑의 삶을 추구할 이유도 없다. 도덕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데.. 그저 양육강식으로 살아가면 된다. 남을 속이더라도 내 이익만 추구하면 된다. 기준이 없는데, 무엇으로 남을 악하다 하고 내가 선하다고 할 것인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들이 쌓아온 도덕과 선의 기준조차도 허무는 일이다. 

8. 그러나 하나님은 계시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에게 선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보이셨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생의 고난과 여려움 속에서도 여전히 그 한 분, 하나님을 신뢰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만 신뢰하며 살아가기에는 우리 주변에 너무나도 믿을만해 보이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많다. 돈이 그렇고, 권력이 그렇다. 그러한 썩어질 것들에 눈을 돌리지 말고, 영원하시며, 거룩하시고, 아름다우신 하나님께만 나의 모든 신뢰를 두기 원한다. 

9.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유 1:20-21) 이 말씀처럼 오늘 하루를 또 믿음 안에서 기다리며, 신뢰하며 살아가길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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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3. 8. 2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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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6:17-27 복음은 분쟁이 아니라 하나됨으로 

1. 교회에 있어서 분쟁의 문제는 매우 작은 일에서 시작되지만 교회를 넘어뜨릴수도, 망가뜨릴수도 있는 파괴적인 일이다. 분쟁이 없는 교회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죄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이다.

2. 그러나 분쟁의 문제에 있어서 바울은 단호하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17절)

3. 먼저 바울은 분쟁을 일으키는 것이 바울이 로마서에서 지금까지 이야기 한 복음과 복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를 드리는 삶과 거슬린다고 말한다. 복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되게 하지만, 분쟁은 우리가 서로 옳다고 여기며, 나에게 맞는 사람과만 그룹을 짓기 때문이다. 

4. 바울은 이런 자들을 살피고, 거기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떠나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섬긴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배를 섬기고 다른 사람들을 미혹케 하는 자들이다.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18절)

5. 자신의 배를 섬긴다는 것은 나만 배부르고, 나만 편하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적인 마음을 의미한다. 분쟁은 결국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비 복음적인 태도에서 나온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멀리해야한다. 

6. 살다 보면 남을 속이는데, 악한 일을 하는데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바울은 또한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19절). 

7. 이렇게 까지 묵상하고 보니 분쟁하는 자를 반드시 피하고 교회에서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잘 가르치고 양육해야 하는데, 수쿰빛 언약교회 안에도 분쟁 까지는 아니지만 그룹핑이 되는 경우들이 있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 친하고 편한 사람들과 주로 만나고, 모이고, 또 대화하며 그 그룹들이 견고해져 간다. 아직 분쟁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작은 분쟁의 씨앗들이 충분히 보이는 것 같아 염려가 된다. 

8. 나의 삶과 태도가 진정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혹시 나는 어느 그룹에 편파적이 아닌지? 어느 사람들을 더 챙기지 않았는지?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사람들을 대하고, 하나되려고 하였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물론 잘하기만 했을리는 없다. 다만 바울이 전한, 우리가 들은 복음의 정신은 하나되는 것이고, 한 몸이 되는 것이고, 교회가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조금 더 본이 되고,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는 자로 설 수 있기를 원한다. 나는 누구를 진정으로 섬기고 있는가? 그리스도인가? 나의 배인가?

9. 복음이 삶으로 나타나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냄으로 수쿰빛 언약교회가 더 건강한 교회로 세워지며, 교인들이 진정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 내가 먼저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고, 그리스도만 섬기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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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3. 8. 1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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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3:8-14 사랑을 먼저 만나라

1. 성경은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런 다른 빚을 지지 말라고 말한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8절)

2. 그리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율법 모두가 ‘사랑하라'라는 계명 안에 속해 있기 때문에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한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9-10절).

3. 이렇게 까지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으나 사랑하는 것 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고, 나에게 사랑받을 만한 일을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래도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사랑하는 것 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4. 그 사람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멀찍이서 살아가고 싶다. 굳이 얽힐 필요도 없고, 굳이 내 마음이 힘들어가면서 에너지 써가면서까지 하고 싶지 않은게 솔직한 마음이다. 그런데 성경은 사랑하라고 한다. 

5. 모든 사람에게는 아마도 사랑이란 감정의 저장소가 있을 것이다. 이 사랑 저장소에는 우리가 태어나서 부터 지금까지 받은 사랑이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부모님으로부터, 친구들로부터 연인으로 부터, 내 삶의 좋은 분들로 부터 받은 사랑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6. 즉, 내 삶은 하나님과 이 사랑의 빚 위에서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기 전에 내가 받은 사랑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 속에서 내 삶이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는지를 기억하며 내가 사랑에 빚진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7. 부모가 되어 보니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랑의 빚을 졌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있지 않은가? 그 분은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다. 

8. 사랑하는 자로, 내가 받은 사랑의 빚을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삶으로 갚아가는 자로 살아가고 싶다.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 뿐만 아니라 얽히기 싫고 사랑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사랑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 사랑의 감정 탱크부터 채워야 한다. 탱크가 충분히 차야 흘러 넘치고, 나눠줄 수 있다. 이미 받은 사랑 말고, 매일 매일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이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를 나 그 자체로 이해해주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사랑의 감정 탱크를 충만하게 채우실 수 있는 분이시다. 

9. 하나님과의 매일의 교제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내 힘으로 하는 사랑은 지치고, 내 힘으로 하는 사랑은 포기하게 된다. 그리스도와의 교제 속에서 받은 충만한 사랑이 내 삶에서 흘러 넘쳐 다른 이들에게 흘러가길.. 특별히 우리 아이들과 성도들에게 흘러가길..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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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3. 8. 1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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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2:9-21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려고 하는 삶

1. 로마서 12장에서는 복음으로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로마서 12:1-2절은 너무나도 유명한 구절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깊은 묵상을 하게 만든다 .

2. 9절 부터의 본문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듣고, 복음으로 삶과 세계관 모두가 변화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의 모습도 파격적이고, 세상이 기대하는 모습과는 다른 삶으로 살아야 함을 바울은 말하고 있다. 

3. 9-12절은 훨씬 높은 도덕적 기준을 제시한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0절) 그저 사랑하고 우애하는 것 뿐 만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먼저 하라고 말한다. 우리 형제, 자매가 이렇게 하면 나도 그정도 수준에서 하는 삶을 바울은 말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사랑하고, 먼저 우애하고, 먼저 존경하라는 것이다. 

4. 또한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참되어야 한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2-13절) 세상의 것들을 우리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한 분이 우리의 소망으로 삼고, 인내하며, 기도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5. 그리고 바울은 우리를 핍박하고, 힘들게 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7절),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 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20절 전반부) 

6. 바울이 제시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의 도덕과 상식을 뛰어 넘는다. 이러한 삶을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위 위함이 아니라 이미 복음을 받아 누리고 있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7. 참된 사랑을 경험한 자로서 참된 사랑을 하며 살아가야 함을 바울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서 나는 참된 사랑을 경험한 자로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정말 참 사랑 되시는 그 주님을 매일 만나고 있는가? 그 사랑 때문에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 

8. 최근 요엘이와 예준이와 몇 가지 일들로 인해서 마음이 어려운 일들이 있었다. 아내가 아무리 옆에서 설명을 하고 이야기를 해도 마음이 상하고 나니 듣고 싶지가 않았다. 스스로도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이 화가 나는 마음을 놓고 싶지 않았고, 아빠가 이렇게 해왔는데 어떻게 너희들이 아빠한테 이럴 수 있니? 라는 마음이 올라왔다. 큐티를 하면서도 왜 이 타이밍에 하나님은 또 나에게 이런 복음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 하시는지 화가 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도 이야기 해주셔야 하는거 아니에요? 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항변이 말도 안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9. 복음을 받은 아버지로, 복음을 살아내는 아버지가 되지 않고서 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복음을, 복음의 삶을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10절은 먼저 하라고 말씀하신다. 먼저 사랑하고, 먼저 우애하고, 먼저 존경해야 한다.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려고 하는 것이 복음적인 삶이다. 사랑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 복음적인 삶이다. 복음을 살아내는 부모로, 복음을 살아내는 선교사로 살아가고 싶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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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3. 8. 1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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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1:1-12 나는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 

1. 바울은 로마서 11장에서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을 변호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먼저 택하신 민족이었고, 하나님의 율법을 가진 유일한 민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만들었다. 

2. 이방인의 사도로 자처했던 바울은 여전히 자신의 민족들에 대해 애끓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변호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절 상반부)

3.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버릴 수 없다는 바울의 말은 바울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바울이 알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에서 볼 때, 하나님은 결코 자신의 백성을 버릴 수 없기 때문에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4.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편이고, 우리를 위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런데 결국 문제는 하나님 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쪽의 문제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에도 하나님의 편에 서지 않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다른 이방신을 섬겼다. 

5.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사랑이시며 하나님은 결코 변치 않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언제나 문제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문제이고, ‘내가 어느 편에 서 있느냐’의 문제이다. 

6. 우리는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지 않았는가?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6절) 은혜의 반응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다.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7. 이스라엘도, 그 어떤 죄인도 우리가 은혜로 구원 받은 것을 믿고 하나님 편에 서면 구원 받는다. 하나님은 결코 누구를 버리지도 떠나시지도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사랑이신 분이 누구를 어떻게 버리실 수 있는가? 우리가 회개 하기를 원하시며 잠시 잠깐의 징계는 가능하지만 우리를 결코 버리시지는 않으신다. 

8. 그러나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며 버리지 않으시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내 마음대로 사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오늘도 나의 길을 고집하면서 하나님을 나의 쪽으로 끌어 내리기 위해 애쓰는 자의 삶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는 자의 삶을 살아야 하겠다. 순종과 충성은 내 길을 고집하는 자의 삶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편에 선 자 만이 할 수 있는 일임을 잊지 말자. 

9. 하나님 편에 서 있음으로 순종과 충성으로 오늘도 태국의 영혼들을 섬기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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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0:14-21 복음 전하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순종과 충성

1.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나 중심의 세계관에서 그리스도 중심의 세계관으로 세계관 자체가 완전히 바뀐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지만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 지금 나의 믿음을 생각해보면, 그 누군가가 우리 가정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들었고, 복음을 들은 이후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설교를 들으면서 믿음이 성장해 나갔다. 그리고 우리 가정에게 복음을 전했던 그 누군가는 마찬가지로 또 다른 누군가로 부터 복음을 들었을 것이다.

3. 혹 우리가 복음의 가계도를 그린다면 아마도 수많은 전도자를 거쳐 어느 선교사에게로 도착할 것이고, 그 선교사도 복음의 가계도를 그려본다면 또 어느 선교사에게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바울과 12사도, 그리고 그리스도일 것이다. 

4. 우리는 그 누군가의 헌신과 그 누군가의 복음의 열정의 열매들인 것이다. 그래서 14-15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5. 복음은 이 좋은 소식을 가진 자들의 발을 통하여 전파되었고, 지금도 전파되고 있고,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자랑스럽지만 또한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진다. 

6.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21절이다.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듣지 않는 그들에게 종일 손을 벌려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이다.

7. 선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 사랑의 팔이 계속 기다리고 계시기에 그 복음이 계속해서 전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사실을 잊으면 결코 안된다. 또한 내가 무엇인가 주를 위해 하겠다고 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나는 하나님의 선교에 조금도 더하거나 뺄 수 없는 무익한 종이기 때문이다. 

8. 무익한 종이 해야 할 일은 ‘충성'이다. 그들이 듣든지, 듣지 않든지, 믿든지 믿지 않든지 간에 부르신 하나님께 오늘도 순종하며 충성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손을 벌려 기다리시는 주님께서 일하시게 되어 있다. 선교 사역이, 선교지에서 살아가는게, 선교지에서 자녀들을 키우는게 쉽지 않고, 때로는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순종하며 충성하길 원한다. 결과와 열매와 상관없이 오늘 순종하며 충성하길 원한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1-2,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눅 17:10

9. 그러나 그 순종과 충성이 열매로 나타나길 원한다 오늘 오순절 신학교 강의가 있다. 강의 가운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더하여 주시길..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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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0:5-13 복음이 삶의 태도를 결정하게 하라

1. 기독교에서 ‘의'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불의와 함께 하실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불의가 심각한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2. 이 ‘의'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싶어하시기 때문이다. 그 거룩하시고 온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왜 우리와 같이 불의하고, 죄악이 가득한 인간과 함께 하고 싶어하실까? 하나님은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데도 말이다. 

3.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길 원하시기에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그 분 자신이 이 땅으로 오셔서 우리 인간의 불의를 위해 고난 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이다. 

4.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딱 하나이다. 실제로 일어났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실을 믿는 것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9절) 

5.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다. 어떠한 고행도 애씀도 필요 없다.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어떠한 고행이나 애씀도 우리의 불의함을 조금도 바꾸거나 개선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겸손하게 그리스도를 믿는 것, 의지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일하게 요청되는 것이다. 

6. 이 믿음은 마음에서 부터 시작된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0절) 그리고 이 믿음을 가진 자는 더 이상 수치와 부끄러움에 쳐하지 않게 된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1절)

7.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옷을 벗기우시고 고난 당하실 때에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을 대신 당하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도, 우리의 수치를 가림도, 우리의 영광도 우리로 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에 받게 되는 것이다.

8. 내가 얼마나 죄악되고, 불의하며 모순된 존재인지를 깨닫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일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그 믿음이 우리의 모든 것들을 바꾼다. 나의 믿음을 점검해 본다. 나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따라가고 있는가? 가끔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행하셨다고,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 하면서도 나의 생각, 기질, 경험을 의지하거나 나 자신을 신뢰하고 믿을 때가 많다. 그래서는 안된다. 다시 복음 앞으로 돌아가자. 

9. 선교지에서 섬기고, 아이들을 양육하고 살아가는 모든 일상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가기 원한다. 나는 의롭지 않다. 나는 잘할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아니고서는 의를 얻을 수 없는 존재였음을 잊지 말고, 겸손하게, 인내하며, 그들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으로 (아니 이게 사실이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자.  주님 나를 도우소서.

10. 오늘도 샬롬 

* 오늘은 저희 목양팀의 에이버리 켈시 가정의 아들 갈렙의 수술이 있습니다. 엄마 젖을 잘 못 빨아서 혀 아래 부분을 레이져로 절제하는 수술이 있는데, 한국에서는 쉬운 수술임에도 불구하고 갈렙의 상황이 조금 있는 것 같고, 또 외국인이고 하다 보니 어제 치앙마이로 가서 오늘 수술을 합니다. 갈렙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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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8:1-17 두려움이 아닌 사랑으로 

1. 우리의 인생을 드라이브 하는 많은 것들 중 가장 집요하고,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두려움'인 것 같다. 이 ‘두려움'은 어디에나 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어두운 곳, 알 수 없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부터 시작하지만 결국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귀결된다. 

2. 수 많은 종교들이 말하는 것도 동일하다.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들을 이길 수 있는 해답(?) 같은 것들을 주면서 그 두려움을 이용한 장사를 하게 된다. “이것 얻고 싶어? 그러면 내가 원하는 것을 해!”, “가진 것 모두를 바쳐야만 이것을 얻을 수 있어”, “너의 시간을 바쳐야만 이것을 얻을 수 있어", 혹은 “고행을 하면, 율법을 지키면 천국 중에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어" 등등이다. 

3. 두려움을 통해 사람들을 자신의 뜻대로 조정하려고 한다. 기독교가 타 종교와 다른 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기독교는 두려움을 통해 사람을 조정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물론 면죄부와 같은 흑역사가 있지만 그 흑역사는 종교개혁으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4. 오늘 본문이 이 두려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4-15절).

5. 복음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며, 더 이상 두려움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우리가 받는다고 말한다. 그 아버지께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길을 열어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더 이상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6.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는 다른 종교와 같이 두려움 때문에 천국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받은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 때문에 우리는 감사함으로 이 땅에서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거룩의 동기와 이유가 다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이 두려움의 문제를 십자가에서 모두 해결하셨기 때문이다.

7. 여전히 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는 태국 사람들을 본다. 태국 차 중에 ‘이 차는 XX색입니다’ 라고 스티커가 붙은 차가 있다. 물론 실제로는 다른 색깔이다. 그 이유는 점쟁이가, 스님이 그 차 색깔이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아서 복을 못 받고 화를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차를 갑자기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저런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것이다. 차의 색깔이 사람의 삶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과연 무엇일까? 결국 두려움을 이용하는 것이고, 여전히 태국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붙잡혀 살고 있다. 

8. 크리스챤이라고 다른가? 크리스챤 중에서도 하나님을 점쟁이 같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머리로 두 가지 선택을 정해놓고 심지어 마음에는 자신의 정해놓은 선택이 있음에도 기도(?)를 한다. 하나님께서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해주시길.. 그리고 가능하면 내가 마음에 선택해 놓은 선택을 지지해 주시길 기도한다. 지금 하고 있는 기도의 응답의 기한, 기도의 응답의 방법도 다 정해서 하나님께 알려 드린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인가? 모든 기도의 응답의 기한, 방법을 정해놓은 내가 하나님인가? 아님 나의 결정을 지지해 주는 그 분이 하나님인가? 이 또한 두려움에서 나온 기도의 방식이다. 

9. 내가 받은 하나님의 영,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영을 기억하자.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이 나를 움직이는 힘이 되도록 복음을 더 깊이 묵상하고, 하나님을 더 힘써 알아가자. 요한1서 4:18-19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아멘

10. 오늘도 샬롬

*기도해주셔서 교회 리더들이 Silent Retreat 잘 다녀왔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쉼과 회복을 경험한 시간이어서 감사하고, 저희 부부는 아쉽게도 가지 못하고 남아서 성도들과 주일 예배를 섬겼습니다. 함께 하지 못함이 아쉬웠지만 또 남아 있는 성도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늘 기도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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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3. 7. 25.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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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4:1-12 하나님을 누구로 어떻게 믿고 있는가?

1.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브라함은 일반적인 그들의 선조 중의 하나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랑했고, 아브라함은 그들의 신앙에 있어서 매우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2.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오늘 그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는 의가 어디서 난지를 설명하고 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2절)

3. 아브라함이 받았다고 여겨지는 의도 그의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의롭다 여김을 받았는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3절) 아브라함이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 또한 하나님께서 믿음을 통해 의롭게 하신 사람일 뿐이다. 

4.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우리의 의로 여기신다. 믿음을 제외하고서는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는 의롭다 여김을 받을 수가 없다. 다른 이들을 위해 베푸는 사랑과 자선의 행위도, 절대자를 찾기 위한 고행도,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조금도 의롭다 여김을 받을 수 없는 것들일 뿐이다. 

5. 따라서 믿음의 의가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 믿음이 없이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도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내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더라도 믿음의 몇대손이라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자랑할 것이 없다. 

6. 그래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를 어떻게 믿고 있는냐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있느냐? 잘못된 존재(false gods)를 하나님으로 믿는 것도 문제이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하나님만을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 바로 그 분의 의로움이고, 우리는 이 의로움을 통해 온전한 의로움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7. 나는 오늘 무엇을 나의 의로 여기고 있는가? 혹시 나의 사역의 열매를 의로 여기고 있지 않은가? 내가 선교사임을 나의 의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그래도 하나님을 위해서 선교를 하고 있다는 그런 얄팍한 헌신을 나의 의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다. 내가 의로 여기고 있는 것들은 사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이고,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지 않았다면 조금도 가능하지 않았을 일들일 뿐이다. 이런 것들을 나의 의로 여겨셔 되겠는가? 

8. 다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며, 나의 삶에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해야 한다. 하나님 외에는 다 썩어질 것들로 없어질 것들일 뿐이다. 하나님 외에는 나에게 소망이 없으며, 아무런 의도 없을 뿐이다. 오직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며, 그 영원하신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더 깊은 믿음을 가지기 원한다. 그게 내가 해야 할 단 한 가지 일이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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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3. 7. 2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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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3:21-31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방법을 따라 살아가기 

1. 모세 시대에는 율법이 ‘의’ 였다 (21절). 율법을 잘 지키면 복을 받고,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았다. 그리고 그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의 온갖 노력과 애씀이 필요했다. 

2. 그리고 이 ‘의로워지기 위한 애씀’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구약의 오랜 시간동안 검증이 되었다. 율법을 행위로 지키는 것은 그래도 가능하지만 (물론 그것도 무척이나 어렵지만…) 마음의 법을 지켜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3. 이러한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새로운 의를 주셨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1-22절)

4. 우리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3절).

5. 그 누구도, 어떤 사람도 우리는 죄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우리는 그리스도가 필요하지 않다고도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고,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의가 없이는 하나님과 조금도 함께 있을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6. 이러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의 의’를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방법’으로 채우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선행을 통해 의를 쌓으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고난으로 자신을 정화하는 것을 통해 의를 쌓으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절대적인 의로움의 기준으로 믿으며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하며 신이 없다고 말하는 자신의 생각을 믿으며 살아간다. 즉, 모든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방법을 선택하여 그것을 자신의 신으로 믿고, 의를 세우는 방법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이것들을 우상이라 부른다. 

7. 그러나 어떤 누구도 자신의 의를 자신의 방법으로 쌓아갈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그 방법이 과연 옳은지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그 방법들은 모두 내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아담이 했던 시도를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나의 의로움을 죄인인 내가 좌지우지 하려는 것일 뿐이다. 

8. 우리의 의로움은 우리의 행위나 우리가 옳다고 여기는 방법에서 오지 않는다. 우리의 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에서 올 뿐이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7절). 나의 의를 쌓으려는 모든 시도들, 내가 옳다고 여기는 모든 방법들을 내려 놓아야 한다. 나는 의롭지도 옳지도 않다. 나는 하나님도 아니다. 우리 피조물들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법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길임을 알아야만 한다. 

9. 내 삶에도 이러한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내가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시도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하나님 보다 더 높이 두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의 삶에 나타난 한 의,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며, 주님이 주신 방법대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의로운 삶에 대한 부분 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분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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