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3. 9. 26.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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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13:21-33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1. 12명의 정탐꾼이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땅으로 올라갔다. 그들의 임무는 그들이 보고, 경험한 것을 보고해야 하는 일이었고, 그들은 그 임무를 위해 열심히 그 지역을 다녔다. 오늘 본문은 그 보고의 내용이다. 

2. 그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 땅은 정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27절) 그러나 그들의 보고는 살짝 이상하다. 그들을 그 땅에 보낸 분은 하나님이지 모세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이라고 말한다. 

3.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으로 생각하는 것과 ‘모세가 명령하여 보낸 땅'으로 보는 것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왜나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라는 표현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포함되어 있고, 약속을 하신 하나님의 책임이 있다. 그러나 모세가 명령하여 보낸 땅이라는 표현에는 인간 모세와 우리가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포함되고, 우리의 능력과 책임으로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 결국 그 간극은 갈렙과 여호수와의 보고와 나머지 열 명의 정탐꾼의 보고로 나누어진다. 갈렙의 보고이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0절)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을 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보았던 갈렙은 우리가 능히 취할 수 있다고 한다.

5. 그러나 나머지 열 정탐군의 보고는 아니라고 말한다.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33절) 그들은 자신들 스스로를 메뚜기라고 여겼고, 아마도 가나안 사람들도 그렇게 볼거라고 생각했다. 

6. 즉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용사로 여겼다. 자신들이 용사여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장 뛰어나신 용사이심을 알아서였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10가지 재앙으로 치시며, 홍해를 가르신 분이시지 않았는가? 그러나 자신을 메뚜기로 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강해 보이는 가나안을 보았고, 키가 크고 장대한 자들을 본다고 그들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시키지 못한 자들이었다. 

7. 우리의 불신은 우리의 시선이 어디로 향해 있는냐에서 시작된다. 하나님께 고정한 시선을 놓치는 즉시 우리는 불신앙에 빠지게 되며,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하기 보다는 지금 내 손에 있는 것을 의지하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보다는 지금 보이는 육적인 세계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게 된다. 

8. 베드로가 주님을 의지할 때에는 물 위를 걷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하다가 바다에 빠졌던 것과 마찬가지의 이야기이다 (마 14:22-33).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현실인가? 내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손인가? 아니면 크신 하나님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인가? 지금 나의 시선은 어디로 고정되어 있는가? 히브리서 12:2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NIV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한다.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 고정시킬 때에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어려움들,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그 상황들을 이겨낼 수 있다. 나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는 얼마나 작고 무능한 존재인가? 우리는 메뚜기 같은 존재가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께, 하나님의 약속에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킬 때 우리는 이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다. 

9. 지금 내 시선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내 작은 능력인가? 조그마한 성취인가? 실패를 통해 무너지는 자존감인가? 무엇이든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수쿰빛 언약교회가 지금 다시 뭔가 일어서려고 하는 시점이다.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봄으로 하나님께서 하실 일들을 기대하자. 

10. 오늘도 샬롬 

1번 사진은 저희 목양팀인 비우, 버드네 가정 심방 사진
2번 사진은 금요일 케어그룹 사진
3번 사진은 주일 예배 모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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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3. 9. 23.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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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11:16-25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아는 것이 핵심이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들의 원망은 어제 본문에 나오는데 (4-9절)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날마다 공급해주시는 만나가 질렸고, 이집트에서 먹던 것들이 생각난다는 것이다. 

2. 모세의 입장에서 화가 날 만한 이야기였다. 하나님께서는 10가지 재앙과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을 통해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셨고, 먹을 것이 없는 그들을 매 끼니 먹이시고, 위험한 동물들로 부터 안전하게 보호하셨다. 

3. 그런데 이스라엘은 지금 생존의 문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어느정도 해결되니까 기호식품으로 불평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4절에서는 이를 ‘탐욕을 품었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모습은 사실 우리의 모습이다. 물에 빠진 걸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게 우리 주특기 아닌가? 

4. 하나님 입장에서 기분이 어떠셨을까? 큰 기적과 능력으로 구해줬더니 이전에 이집트에서 살아가면서 먹었던게 좋았다고 불평한다. 하나님은 그럼에도 그들에게 고기를 주시겠다고 하신다 (약간 뒤끝을 보이시면 말이다).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 날만 먹을 뿐 아니라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 (19-20절)

5. 이스라엘이야 그렇다 쳐도 모세의 반응이 의외다. “모세가 이르되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때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까" (21-22절)

6. 그는 하나님의 기적을 가장 앞자리에서, 자신의 손을 통해 체험한 자가 아닌가? 그와 같이 하나님을 대면하여 말하였거나, 기적을 경험한 사람이 또 있겠는가? 그러나 모세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듯한 말을 한다. 이게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세도 변하지 않았다. 기적은 또 다른 기적을 요구할 뿐이고, 기적으로는 결코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 

7.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알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이스라엘을 그 의로우신 오른 팔로 구원하셨다. 사랑하셨고, 구원하셨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셨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불평하고, 여전히 탐욕을 부리고, 여전히 또 다른 기적을 (마치 내가 그럴 권리가 있는 것 처럼) 당연하게 요구한다. 죄인이며, 악한 존재들이다. 

8. 하나님의 손이 결코 짧지 않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게에 충분하시며, 우리의 생각보다 크시고, 우리의 아는 것 보다 놀라우신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 때, 또 나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 때, 우리는 하나님께 그동안 당연하게 요구했던 것들을 멈추게 된다. 하나님을 탐욕으로 나의 램프의 지니처럼 사용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음을 감사하게 된다. 

9. 오늘 나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나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복음 만이 나를 겸손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용기있게 하는 유일한 것임을 잊지 말자. 하나님을 알아야 겸손하게 된다. 나를 제대로 알아야 감사하게 된다. 불평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모세가 바로 나의 모습임을 잊지 말고 교만한 자세를 버리고, 겸손하게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하루가 되자. 

10. 오늘도 샬롬 

*사진은 웨슬리 신학교에서 신약 수업 후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오늘 오후 2시(한국 4시)에 오순절 신학교에서 다음 강의와 장기적인 방향을 논의할 수도 있는 회의를 가집니다. 이를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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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3. 9. 19.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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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10:1-10 듣지 못하는 것은 죽음이요 듣는 것은 생명이다

1. 나팔은 지금처럼 음향시스템이 없던 시대의 이스라엘에게 필요했던 신호 수단이었다. 이 나팔은 이스라엘의 단합된 행동을 위해 매우 중요했다. 어떻게 부는지에 따라 해야 할 행동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2. 두개를 불 때와 한 개만 불 때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나팔 두 개를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 된 지휘관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3-4절)

3. 또 한 번 크게 불면 동쪽 진영들이 행진하고 (5절), 두번째로 크게 불면 남쪽 진영들이 행진해야 한다 (6절). 또한 이 나팔은 전쟁을 하러 나갈 때도 분다.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9절). 또 절기와 번제물을 드릴 때에도 불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기억하시겠다고 하셨다 (10절).

4. 이 나팔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효과적으로 지휘하는데에도 사용 되지만 또한 하나님께 지금 우리의 상황을 알리는데에도 사용된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 늘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다가 지금 울리고 있는 나팔 소리가 몇 번째인지, 소리가 어떤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으면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을 알지 못하거나, 행진해야 할 때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5. 광야에서의 개인의 낙오는 곧 죽음이다. 그러나 개인이 모두가 가야 할 때 함께 가지 못하고, 모두가 움직여야 할 때 함께 움직이지 못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를 어려움에 빠뜨릴 수도 있게 된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듣지 못하는 것은 죽음이요, 듣는 것은 곧 생명을 의미한다. 

6. 아마도 이러한 것은 우리의 삶에도 적용될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나팔로 말씀하시진 않는다. 성경과 다양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 말씀하고 계신다. 그때 우리가 해야할 것은 듣는 것일 것이다. 잘 들어야 한다. 내 자신이 죽음의 길로 가지 않기 위해서, 또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들어야 한다. 

7. 듣고, 또한 순종해야 한다. 순종하지 않는 들음은 듣는 것이 아니다. 나팔이 울려서 행진해야 하는데, 소리만 듣고 가만히 있는다면 그것은 들은 것인가? 들음은 순종을 전제로 할 때에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8. 오늘 나는 듣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가? 혹은 듣기만 하고 순종은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진정으로 순종을 전제로 듣고 있는가? 제대로 순종하고 있는가? 많은 질문들이 머리 속에 있다. ‘듣지 못하는 것은 죽음이요 듣는 것은 생명이다’. 오늘 주신 이 문구처럼 들음을 통해 생명을 얻고,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한다. 

9.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삼상3:10 사무엘과 같이 듣고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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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3. 9. 1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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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9:15-23 나의 생각, 전제, 가치관이 바뀌어서 순종하는 자가 되길

1. 성막을 세우고 나서 낮에는 구름이, 밤에는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성막 위에 있었다 (15-16절). 그런데 이 구름과 불은 이스라엘 백성 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였다. 

2.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구름이 움직이면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추면 진을 쳤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17절) 단순하지만 절대적인 순종이었다.

3. 그런데 문제는 이 구름과 불이 언제 움직일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 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22절)

4. 때로는 이틀만에, 때로는 한 달만에, 때로는 일 년 만에 움직이게 되더라도 그들은 구름이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결코 이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기간이 얼마이든 구름이 움직이면 이스라엘은 바로 움직였다. 

5. 하나님이 없이는 조금도 살아낼 수 없는 광야 생활이었기 때문이었다.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루 세 끼의 음식을 어디에서 조달해서 먹을 수 있었겠는가? 목이 마를 때 물은 어디서 구할 수 있었겠는가? 

6. 광야에서의 그들의 호흡함 그 자체가 곧 기적이었고, 매 끼니마다 먹는 음식과 물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구름이 움직이지 않을 때 어찌 움직일 수 있으며 구름이 움직일 때 어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었겠는가? 

7. 하나님께서 이렇게 실제적으로 우리 인생에 개입하시는 시기에는 순종하기가 참 쉽다. 그러나 내가 내 인생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하나님 보다는 내 생각을 따르기가 더 쉽다. 나의 호흡이 하나님의 돌보심이 아니라 나의 운동과 건강 관리로, 내가 먹는 음식이 하나님께서 공급함이 아니라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지불한 대가로 먹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 보다는 이성적인 생각으로 살아가게 된다. 

8. 지금 나의 호흡이 누구 때문인가? 내가 잘 관리해서 지금 잘 호흡하고, 문제 없이 지내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 때문인가? 지금 나의 먹는 음식이 누구 때문인가? 내가 번 돈 으로 지불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적절한 태양 빛과 비를 내리셔서 공급하신 것인가? 내 생각과 전제가 바뀌면 순종하게 된다. 내가 내 인생에 조금도 기여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라면 조금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임을 깨달을 때 내가 움켜쥐려는 마음, 내가 내 힘으로 살아가려는 생각들을 내려놓게 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배려하게 되고, 나눠주게 되고, 사랑하게 된다. 

9. 아침에 한 자매로부터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셔서 이번 한국 방문을 위해 헌금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이 자매를 실제로 만난건 3번 정도이다. 그런데 자매가 자신을 위해, 또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는 재정을 헌금 하겠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참 감사하다. 하나님으로 인해 우리의 생각과 전제, 가치관이 바뀐 분들로 인해 하루 하루를 살아가며 또 사역이 이뤄진다. 나 또한 하나님으로 인해 나의 생각과 전제, 가치관이 바뀌었음이 오늘 하루의 내 삶으로 증명되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그레이스포인트 단기팀이 와서 사역하고 간 이후 매일 왓타텅 중고등학교 친구들이 저희 까페에 와서 놀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 친구들을 위해 악기(기타, 피아노), 언어(한국어, 영어), 보드게임 등의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들 중에서 몇몇 친구들이 계속 주일 예배에도 나오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진은 뺑 자매로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고 있는 직장인으로 우울증으로 인해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있다가 처음으로 저희 교회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두 번째 사진은 나니 자매이고 세 번째 사진은 왼쪽부터 차례대로 숩, 프랭크 유로 형제, 그리고 뚠 자매입니다.이 그룹들은 왓타텅 중고등학교 친구들입니다. 수쿰빛 언약교회가 이 형제, 자매들을 잘 영접하고, 계속해서 관계를 맺으며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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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3. 9. 1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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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7:12-47 21마리의 짐승들의 대가를 치루더라도 하나님께 나아가기

1. 성막이 완성되고 나서 헌물을 드리는 것이 주된 본문의 이야기이다. 민수기 7:1-11을 보면 먼저 모세가 와서 드리고, 이스라엘의 지휘관들 곧 그들의 조상의 가문들의 우두머리들이 헌물을 드린다 (2절). 

2. 그 다음으로 오늘 본문에서 각 지파에서 대표들이 나와서 헌물을 드린다. 첫 번째로는 유다 지파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 와서 재물을 드린다.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었지만, 형들의 연약함으로 인해 실제로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장자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예물을 드리기 위해서 나아왔다. 

3. 둘째 날은 잇사갈의 지휘관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 (18절), 셋째 날에는 스불론 자손의 지휘관 헬론의 아들 엘리압이 (24절), 넷째 날에는 르우벤 자손의 지휘관 스데울의 아들 엘리술이 (30절), 다섯째 날은 시므온 자손의 지휘관 수리삿대의 아들 슬루미엘이 (36절), 여섯째 날에는 갓 자손의 지휘관 드우엘의 아들 엘리아삽이 헌물을 드린다 (42절).

4. 각 지파가 다른 날 헌물을 드리지만 그들의 헌물은 동일하다. 백삼십 세겔 무게의 은 쟁반 하나, 칠십 세겔 무게의 은 바리 하나, 각 그릇에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열 세겔 무게의 금 그릇 하나에는 향을 채웠고, 번제물로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 일 년 된 어린 숫양 한 마리, 속죄제물로는 숫염소 한 마리, 화목제물로는 소 두 마리와 숫양 다섯 마리와 숫염소 다섯 마리와 일년 된 어린 숫양 다섯 마리였다. 

5. 그런데 본문을 보다 보면 하나님께 직접 드리게 되는 은 쟁반, 금 쟁반,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는 고운 가루나 향 보다 더 많은 양(?)의 제물들(총 21마리의 짐승들)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의 회복을 위해, 즉 우리의 죄를 사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 드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하나님은 너무나도 거룩 하신데 비해, 우리는 그렇지 않고, 그 거룩함과 죄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직접 드려지는 제물보다도 훨씬 더 많은 제물들이 바쳐져야 함을 알 수 있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받는다. 

7. 그러나 이게 우리 인간의 절망적인 한계이고, 우리의 죄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러한 부분을 잊고, 내가 거룩하다고 (그러면서 남들은 아니라고..) 혹은 나는 괜찮다고 하면서 내가 하나님 처럼 되려고 노력하는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이 엄청난 간극을 잊어버리는 것이 모든 죄의 시작이다. 

8. 물론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기 위해 굳이 21마리의 짐승들을 드릴 필요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는 우리의 편리함을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그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영원한 길을 만드신 것이다. 결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절차가 간단해진 것이 무례함으로 드러나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너무 무례하지 않은가?’ 를 생각해보게 된다. 쉽고 편한 것을 추구하고, 인스턴트 식의 만남을 추구하지는 않는가? 하나님 앞에 오래 서 있고, 묻고, 들으려고 하기 보다는 자판기와 같이 내가 원하는 응답, 내가 원하는 결과를 무례하게 하나님께 요청하지는 않는가? 그리고 내가 원하는 시간,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응답하지 않으실 때에는 분노하지 않는가? 

9. 편리함, 편안함이 우상이 되지 않기를 원한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헌물하기 위해 수많은 대가를 치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나 또한 불편하고, 어려울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쪽을 선택하기 원한다. 그리고 또 나의 것을 아낌없이 드릴 수 있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지난 번 기도편지에 보내드렸던 따완 자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에 가서 제빵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열렸습니다. 11월 13, 14일 중에 한국으로 들어갈 계획으로, 심재우 선교사가 함께 들어가서 안내와 준비를 같이 하고 돌아오게 될 것 같습니다. 한국으로 가는 절차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고, 저와 따완 자매의 항공료가 채워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3개월 동안 따완 자매가 제빵을 배우며 한국에서 지내는 일에 대해 재정적으로 지원해주실 마음이 있으신 분은 저에게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샬롬

**사진에서 오른쪽에 안경낀 자매가 따완 자매이며, 만 18살이고, 저희 교회를 통해서 복음을 듣고, 양육을 받고, 세례를 받아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굳건하게 잘 자라고 있음이 참 감사한 자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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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3. 9. 1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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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6:13-27 복을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

1.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실인에 관한 규례 (13-21절)와 대제사장의 축복기도 (22-27절) 의 두 부분이다. 나실인은 자신을 나실인으로 드릴 때, 그리고 나실인의 서원이 마칠 때 모두 자신의 몸을 구별하는 법을 따라서 행하여야 한다. 

2. 구약의 법은 흔히 말하는 율법 그 자체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대로 법을 지키면 복을 받고, 법을 지키지 못하면 징계를 받는다. 우리의 율법을 지키는 행위 그 자체도 매우 중요하지만 우리가 율법을 잘 알아야만 그대로 순종할 수 있기 때문에 율법 그 자체가 더 중요했다. 

3. 물론 구약의 법이 율법을 지켜야만 복을 받고, 지키지 않으면 징계를 받는 것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조건적으로 사랑하시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언제나 한결같이 우리를 그 크신 사랑으로 사랑하셨다. 

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24-26절).

5. 하나님의 애끓는 마음은 우리가 율법을 지키든지 지키지 못하든지 언제나 동일하시다. 늘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에게 그 얼굴을 보이시기를 원하신다. 

6. 언제나 문제는 하나님 쪽이 아니었다. 늘 우리가 문제였다. 한결같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를 지키시며 그 얼굴을 우리로 향하시는 하나님을 거절하고, 내 자신의 뜻대로 내 자신을 섬기며 살아가려고 하는 우리가 문제였던 것이다.

7. 이렇게 문제투성이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고 하신다. 그 복은 우리가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착하게 살았기 때문에 받는 복이 아니다. 그 복은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저주와 죄를 지시고 대신 화목제물로 죽어주셔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복이다. 

8. 하나님은 하나님을 끊임없이 거절하는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에게 복을 주기 원하신다. 나 같은 죄인들도, 또 하나님을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는 태국의 영혼들에게도 말이다. 지난 2주간 그레이스포인트 교회에서 태국의 서울대, 연대 격인 쭐라롱꼰 대학교와 마히돈 대학교로 또 우리 고등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와타텅으로 전도를 매일 다녔다. 정말 쉼없는 2주를 섬겨주고 돌아가면서 많은 열매들이 있었다. 그들의 섬김도 섬김이지만 하나님께서 여전히 태국인들을 사랑하시고, 태국인들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시는 그 마음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음에 너무 감사하였다. 

9. 이제는 수쿰빛 언약교회가 남아서 그렇게 연결되고, 관계를 쌓았던 영혼들을 섬겨야 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전히 태국의 영혼들을 사랑하시고 복을 주시기 원한다는 변치 않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쉬지 않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원하시기 때문에 여전히 태국의 영혼들이 주께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수쿰빛 언약교회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알아 이 영혼들을 섬김에 있어서 지치지 않고, 더 헌신되어 섬길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기도해주셔서 가스펠나이트는 잘 마쳤습니다. 왓타텅 중고등학교 친구들이 한 20여명이 왔고, 쭐라롱껀, 마히돈, 시나카린 위롯 대학교 학생들이 40여명이 왔습니다. 함께 복음을 잘 나눴습니다. 들었던 복음이 마음에 잘 뿌리 내리고, 인생의 목적과 비전을 찾을 수 있도록 60여명의 학생들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그레이스포인트 단기팀과의 사역을 통해서 그간 하고 있던 청소년 문화 사역을 조금 더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인스타그램 @egeiroclub로 들어가시면 관련 소식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단기팀의 사역을 통해 수쿰빛 언약교회가 접촉하고 있는 태국의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https://instagram.com/egeiroclub?igshid=NzZhOTFlYzFmZQ== 

*** 사진은 그레이스포인트 팀과의 단체사진, 그리고 이번 사역을 통해서 처음으로 교회에 나온 4명의 왓타텅중고등학교 친구들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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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4:1-33 거룩과 구별됨

1. 하나님께서 고핫 자손을 계수하라고 하시면서 (2절) 고핫 자손에게는 회막 안의 지성물에 대해 해야 할 일을 상세하게 맡기신다.  그런데 이렇게 특별히 구별하고 맡기신 일이 그렇게 특별하거나 꼭 그들만이 해야 할 일로는 보이지 않는다.

2. 휘장을 걷고, 증거궤를 덮고 (5절), 증거궤 위를 해달 가죽으로 덮고 순청색 보자기로 덮고, 채를 꿰고 (6절), 이런 추가적인 덮고, 꿰고 하는 다른 업무들을 하고, 마지막으로 진영을 떠날 때 할 일이 있다. “진영을 떠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는 일을 마치거든 고핫 자손들이 와서 멜 것이니라" (15절 상반부)

3. 본문을 읽으면서 이러한 일이 뭐가 중요하다고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아론의 자손들과 레위 자손들을 통해 구별하셨어야만 했을까? 라는 질문이 생길 정도였다. 하나님 나라의 법칙이 우리 인간의 생각과는 너무나도 다름을 깨닫게 된다. 

4. 보통 우리가 가진 생각 속에서는 중요한(혹은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이 더 중요한 사람이고, 그래서 그들은 더 특별하게 구별되게 준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중요한 일을 하는 이유는 그들이 일반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재능이나 은사가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5.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법칙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특별한 재능과 은사가 있어서 그 일을 맡기신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저 은혜로 불러 주신 것이다. 재능과 은사로 일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더욱 더 구별된 자로 서야만 한다. 

6. 즉, 하나님의 일은 은사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구별된(거룩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재능과 은사보다도 ‘거룩 과 구별됨'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은사와 재능도 하나님께서 주시기 때문이다. 

7. 물론 우리가 노력하지 않고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 충성은 성령의 열매이기도 하며 (갈 5:22) 고전 4:2에서도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면 우리는 반드시 구별되어야 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하며, 또한 충성해야 한다. 

8. 미국에서 온 그레이스포인트 팀이 지난 2주간 열심히 전도를 했다. 이 형제, 자매들의 전도에 대한 열심은 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였고, 벌써 6명의 영혼들이 복음을 영접했다. 태국 사람들의 기질을 생각했을 때에는 이례적인 일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을 초청하여 가스펠 나이트를 오늘 밤에 가진다. 어제 밤에 그레이스포인트 팀이 밤에 예배하며 기도로 준비하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 앞에서 구별되려고 하는 모습, 그리고 충성스럽게 섬기는 모습이 오늘 고핫 자손들을 생각나게 한다. 나 또한 이렇게 살아가길 소원한다. 

9. 하나님 앞에서 더 구별되어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일이 사람의 눈에 하찮아 보일지라도, 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서 귀하게 보지 않을지라도 주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들을 충성스럽게 해 나가길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 가스펠 나이트를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한국 시간으로 오늘 밤 8:30입니다. 찾아오는 영혼들이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또 그들의 인생을 주님께 드릴 수 있도록 함께 손 모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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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3:40-51 퉁치지 않는 사랑

1. 모든 처음 태어난 사람, 가축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런데 왜 장자와 가축의 첫 태생은 주님의 것일까? 그럼 둘째와 셋째는 주님의 것이 아닐까? 이는 성경에서 말하는 대표성의 원리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 모든 사람과 모든 생명있는 것, 모든 우주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첫 태생을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받으시는 이유는 첫 태생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대표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십일조를 드릴 때에도 마찬가지의 원리이다. 하나님께 우리의 소유의 십의 일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의 소유를 모두 드리지 않더라도 우리의 모든 소유가 주님의 것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모두가 자신의 것임을 선포하기 위해 레위인을 대표로, 레위인의 가축까지 대표로 받으신다.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에 레위인을 취하고 또 그들의 가축 대신에 레위인의 가축을 취하라 레위인은 내 것이라 나는 여호와니라" (45절)

4.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태어난 자가 레위인보다 많은 273명에 대해서는 돈으로까지 받으셨다 (46-50절). 하나님께서 돈이 없으시지도 않으면서 그렇게까지 정확하게 하신 이유는 바로 우리의 악함에 있다. 우리는 퉁 치려는 마음 늘 있지 않은가? 

5. 또 그리고 그렇게 정확하게 하신 이유는 우리 모두가 단 한 사람도, 단 한 가축도 빠짐이 없이 온전하게 레위인과 레위인의 가축으로 드려졌기 때문에 너희 이스라엘 모두는 단 하나도 예외 없이 내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6. 하나님의 완벽한 사랑의 표현이다. 우리 한 사람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모든 사람과 가축의 첫 태생을 하나님께 드리고, 모자라면 돈으로 지불해서까지라도 모든 사람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하나님의 소유임을 잊지 않도록 마음 깊이 새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7. 이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모든 죄의 대가를 지불하셨다. 하나님은 퉁 치지 않으셨다. 마지막까지 모든 물과 피를 쏟으셨고, 죽기까지 사랑하셨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의 삶이다.  

8. 어제 그레이스포인트 팀과 함께 왓타텅 중고등학교로 전도를 나갔다. 그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그 순간에도 내 앞에 앉아 있던 몇몇 친구들이 자신들의 핸드폰에 열중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인생을 바꿀수도 있는 시간에 듣지 않고 당장의 재미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서도 자신의 아들을 통해 모든 것을 지불하셨다. 그래서 지금 나는 계속 전해야 한다. 계속 섬겨야 한다. 하나님이 퉁치지 않고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나도 몇 번 전했는데 안 들었다고 퉁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퉁치지 않는 선교사가 되리라.

9. 하나님은 선포하신다. “레위인은 내 것이라 나는 여호와니라" (45절 하반부) 또한 선포하신다. “너는 내 것이라" (사 43:1) 나도 주님의 것이고 태국인들도 주님의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의 맏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퉁치지 않고 다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오늘도 왓타텅에서 다시 복음을 전한다. 그리고 그레이스 포인트 교회가와 수쿰빛 언약교회가 함께 준비하여 내일 저녁에 이 모든 이들을 초청해서 가스펠 나이트(Gospel NIght)를 가진다. 모든 영혼들이 듣고 우리가 주님의 것임을 깨닫을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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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3:14-39 부르심대로 충성하기 

1. 레위 자손의 인구를 조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다.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위 자손을 그들의 조상의 가문과 종족을 따라 계수하되 일 개월 이상된 남자를 다 계수하라" (14-15절)

2. 민수기의 레위인 인구 계수는 이후 다윗왕 시대에 행해졌던 이스라엘 전체의 인구 계수와는 달랐다. 다윗이 한 인구 계수는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과시하고, 어느정도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보아 그 숫자를 신뢰하려는 마음에서 나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셨다. 

3. 그러나 레위인 인구 계수는 그들이 싸울 수 없는 제사장 그룹이라는 점에서 달랐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의 장자 역할을 하며,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자들로 이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서 이스라엘의 강성함을 알릴 수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으로 일개월 이상된 남자들을 계수하였다 (15절). 

4. 하나님은 레위 자손을 조상의 가문과 종족에 따라 게르손, 고핫, 므라리 (17절)의 자손들로 구분하셨고, 그들에게 각기 다른 일을 맡기셨다. 그러나 왜 각 자손들에게 다른 일을 맡기셨는지는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고 있다. 

5. 생각해보면 궁금하다. 각자 타고난 기질, 은사, 장점 모두 달랐을텐데 왜 굳이 그 은사에 따라 일을 맡기지 아니하시고, 타고난 혈통, 가문을 따라 일을 맡기셨을까? 레위 자손이 아니었어도 이런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을텐데 말이다. 

6. 묵상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양을 맡기고, 사역을 맡기시는 일에는 우리의 기질, 은사, 장점 때문만이 아님을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타고난 기질, 은사, 장점을 귀하게 여기시고, 사용하신다. 

7. 그러나 기질, 은사, 장점 이전에 우리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분의 완전하신 뜻 안에서 불러주셨다는 것이다. 기질, 은사, 장점이 부르심 보다 우선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자이시기 때문이시다 (빌 4:13)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결코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함이 없느니라" 롬 11:29

8. 레위인들은 보르심에 따라 충성했다. 게르손의 자손은 게르손 자손의 부르심대로, 고핫의 자손은 고핫 자손의 부르심대로, 므라리 자손은 므라리 자손의 부르심대로 충성했다. 그들은 경쟁하거나 다투지 않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서 충성스럽게 섬겼다. 내가 해야 할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의 기질, 은사, 장점으로 더 큰 하나님의 부르심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후회하심이 없으며, 나 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 부르셨다면 그것은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다. 

9. 생각해보니 그렇다. 교회개척을 준비할 때에 나에게 교회개척 은사가 없다고 말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물론 일정부분 사실이다. 나는 꽤 내성적인 성격이고, 전도자들과 같은 전도의 은사(?)도 없다. 처음 보는 사람과 말을 그리 오래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을 때 수쿰빛 언약교회가 잘 세워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부르심이다. 왜냐하면 우리를 부르신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나의 부르심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오늘도 나의 어떠함으로 그 부르심을 판단하지 말고, 충성하는 자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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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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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3:1-13 은혜로 부르심을 받았기에…

1. 레위 지파는 아론의 자손들이다. 아론의 아들은 총 넷 이었는데, 그 중에서 장자 나답과 차남 아비후는 여호와 앞에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어서 자식이 없었다 (4절). 

2. 따라서 레위 지파는 셋째와 넷째인 엘르아살과 이다말의 자손들이었고 그들은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였다. 성경에서 장자의 권한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비춰볼 때, 레위지파는 이스라엘의 장자 지파도 아니었고, 또 아론의 장자도 아니라는게 참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3. 12절을 보면 이렇게 성경은 이야기 한다.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맏이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레위인은 분명히 장자가 아니었지만 하나님이 레위인을 택하셨다. 왜 그랬을까?

4. 정답은 ‘모르겠다' 이다. 하나님이 레위인을 왜 택하셨을까? 이것과 비슷한 질문을 또한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굳이 왜 나를 택하셔서 구원하셨을까? 왜 나 같이 연약하고 죄 많은 자를 선교사로 택하셔서 태국의 영혼들을 섬기도록 하셨을까? 대답은 역시 ‘모르겠다' 이다. 

5.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하나님의 은혜'일 것이다. 장남이 아니었으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엘르아살과 이다말의 자손들처럼, 이스라엘의 장남 지파가 아니었으나 하나님의 제사를 돕게 된 레위인처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존재들이다. 

6. 우리가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서도, 무엇인가를 잘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하게 만드셔서도 아니다. 우리는 그저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고,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나를 어떤 존재로 보고 있는지가 매우 다른 결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 

7.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 (13절). 나의 어떠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권적으로 불러주셨기 때문이다. 태국에서 영혼들을 섬길 수 있는 이유도 내가 뭔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태도는 늘 ‘감사’이어야 한다.

8.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온 그레이스포인트 교회 공동체와 한 주를 같이 섬길 수 있었다. 미국에서 좋은 대학교를 다니고 있고, 졸업 후 좋은 직장에서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이들이 그리스도께 헌신되어 교회로, 공동체로 헌신되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또한 많은 도전이 되었다. 그들의 헌신과 수고에는 오늘 질문의 대답처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은혜로 하나님의 구원과 부르심을 받았다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복음에 대한 그들의 열정을 보며, 나는 또 어떻게 살아가며, 어떻게 태국의 영혼을 섬길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된다. 

9. 어제 밤에 아내와 늦은 시간까지 이러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야기의 결론은 다시 공동체로 만나 함께 식탁 교제를 나누고, 삶을 나누는 것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세대가 변하기에 복음을 전하는 전략과 모습은 달라져야 하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우리가 개인적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나, 또한 공동체로 부르심을 받은 것을 잊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이렇게 섬기고 사랑해야 함은 내가 뛰어나사도 아니고, 특별해서도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그 분의 은혜로 나를 불러주시고, 사랑해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넘치도록 받은 것들을 또한 넘치도록 나눌 수 있는 선교사가 되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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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