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3. 6. 30. 12:50
728x90
반응형

시 20:1-9 기도는 하나님만이 내 의지요 소망이라는 표현이다

1. 다윗은 시편 20의 첫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환난 날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길 구한다.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2. 이러한 기도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힘든 시간, 즉 환난을 경험하는 시간은 결코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다. 시편 저자인 다윗의 인생 역시 환난과 어려움이 그의 청년의 시절에 얼마나 많았던가? 사울로 인해 죽을 뻔 한 것만 몇 번 이었던가?

3. 그 환난의 시간에 우리가 깨닫는 것은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환난을 조금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경감시키거나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 시간을 오롯이 견뎌내야 하고, 또 통과해야 한다. 

4. 그 어려움의 시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나의 하나님이시고, 누가 우리의 인생의 주관자시냐?’ 라는 것이다. 다윗은 그 모든 시간에 하나님을 의지했다. 하나님 한 분만이 그의 인생의 산성이시고, 방패이시고, 피난처이셨기 때문이다. 

5. 그래서 그는 6-7절과 같이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 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의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6. 내가 지금 자랑하고 의지하는 것이 병거인가? 내가 소유하고, 가지고 있는 힘 있다고 여기는 그 어떤 것들인가? 그렇다면 나의 환난의 날은 점점 더 어렵고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병거는 강해 보이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이 보이지만 그것들 조차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기 때문이다. 

7. 하나님이 아닌 어떤 것들도 우리의 인생을 조금도 나아지거나 바꿀 수 없다. 호흡이 없는 가짜들을 언제까지 의지하며, 그것에 우리의 소망을 둘 것인가? 다윗은 8절에서 사람들이 자랑하는 병거들이 어떻게 될지를 말한다.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8. 넘어질 것에 망할 것에 기대지 말자. 하나님이 아닌 그 어떤 것에도 소망을 두지 말자. 오늘도 해야 할 것은 그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우리에게 응답한소서" (9절)

9. 기도는 내가 지금 의지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 한 분이라는 표현이다. 내가 더 이상 병거와 말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결정이다. 그래서 오늘도 기도하기 원한다. 내가 의지하고 소망하는 한 분이 하나님이심을 내 삶에서 나타내기 원하다.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시길.. 아멘

10. 오늘도 샬롬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3. 6. 29. 12:31
728x90
반응형

시 19:1-14 다윗이 말씀을 대하는 태도

1. 시편 19편 7절부터 9절까지는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랑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는 말씀 정도가 아니라 말씀이 하나님 그 자체인 것 처럼 대하고 있다. 

2. 그래서 그는 10절과 같이 이야기 한다.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사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성정과 매우 다른 길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3. 11-12절에서 다윗은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4.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연약함과 부정직함을 볼 수 있는 것이 다윗의 힘이었다. 우리 귀에 듣기 싫을지라도, 언제나 옳고 기준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지금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5.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좋은대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고, 격려해주시지만 때로는 우리를 책망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직면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본체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6.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다윗의 태도를 보면서 다윗의 어떠함이 어디에서 나온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의 탁월함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에 말씀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속이려 하지도, 기만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오직 들었고, 그는 오직 순종했다. 그 일이 자신에게 어려움으로 작용할지라도 그는 말씀이 자신의 삶에 말씀하도록 하였다. 

7. 나는 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내 상황과 환경과 상관없이 여전히 말씀이 내 삶에 말씀하시도록 하고 있는가? 말씀 그 자체를 진정으로 하나님 그 자체로 대하고 있는가? 아니면 취사선택하며 내 입맛에 맞게 요리하여 내 상황에 맞게 적용하고 있는가? 

8. 어제 신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말씀을 가르쳤던 것이 생각나며 더 깊이 고민해야 함을 느낀다. 나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이 말하고 있는 그 대로 정확하게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가? 오염되고 세상의 사조에 휘말린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확하게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였던 태도가 절실하게 요청된다. 

9.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걸어가길 소원한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이끌어가는 삶이 되길 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 무엇 보다도 사랑하는 내가 되길 원한다. 그동안 아프다고, 한국 일정이 바쁘다고 보내지 못했던 큐티를 다시 보내기 원한다. 그 속에서 나 또한 하나님의 길을 찾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 태국에 잘 돌아와서 컨퍼런스를 치르고, 급한 손님들도 다 받았습니다. 말씀 나눔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데 저에게 주시는 말씀이 참 의미심장합니다. 아직 허리가 좀 안좋습니다. 허리가 잘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고, 사역과 삶이 말씀 안에서 잘 조화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이 사진은 어제 오순절 신학교 강의 때 찍은 사진입니다. 샬롬을 전합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3. 6. 12. 22:00
728x90
반응형

레 25:1-22 멈추어 쉬라 (기도제목은 아래에)

1. 오늘 본문은 안식년과 희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안식년과 희년의 정신의 핵심은 아마도 누가 내가 거둔 열매의 주인이냐의 문제일 것이다. 아무리 수고하고 애썼더라도 그 결과가 나의 힘과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찌 멈추어 쉴 수 있겠는가? 내가 성취한 모든 일이 내 능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2. 나에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에만 우리는 그제서야 멈출 수 있고, 쉴 수 있는 것이다. 멈추고 쉬기 위해서는 내 삶에 역사하시는 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3. 그러고 보면 나는 쉬는 것을 참 못하는 사람인 것 같다. 멈추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만 더 지쳐가고, 지치지만 쉬지 못하고 더 애를 쓰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한달 반 동안 한국일정동안 정말로 애를 썼고,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나누고 삶을 나누었다. 마지막 주에는 피곤하여 입술이 터질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4.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를 교통사고를 통해서 강제로 멈추게 하셨다. 한달 반 동안을 아빠로 인해 제대로 한국을 누리지 못했던 요엘이와 6월 5일에 에버랜드를 마지막으로 다녀오고 6일에 출국하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에버랜드 주차장에서 사고가 난 것이다. 

5. 처음에는 질문도 많았다. 왜 하필 이 때에.. 돌아가면 그간 비워뒀던 교회에 해야 할 일도 많고, 신학교 강의도 있고, 컨퍼런스 준비도 해야 하고 등등의 상한 마음이 올라왔고, 왜 하필 지금이냐는 질문도 계속해서 올라왔다. 태국에서 계속 아팠던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바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 너무나도 불편했다. 

6. 아내와 이야기를 하면서 일단 할 수 있는 한 치료를 받고 돌아가기로 하면서 16일로 티켓을 변경했고, 계속 치료를 받고 있다.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치료 받고, 쉬고, 책 읽고, 쉬고, 넷플릭스 보고, 쉬고, 이런 삶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7. 그러나 오늘 안식년, 희년에 관한 본문을 보면서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며,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사역이 하나님께서 하고 계신 것이기 때문에 내가 멈춰서 쉬어야만 했고, 스스로 멈추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강제로 멈추게 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붙들고 있고, 내가 하려고 하며, 내가 드라이브를 걸려고 하는 일들을 멈추고 그저 그리스도 안에서 쉬면서 한국에서 치료를 받도록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란 생각이 들었다. 요엘이와도 함께 한의원에서 치료도 받고, 같이 이야기도 하고 영화도 보면서 함께 쉬고 있다. 이 시간이 정말로 내게 필요했던 시간이란 생각이 든다. 

8. 정말로 선교는 누가 하시는가? 정말로 이 선교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신가? 그렇다면 멈추어 쉴 줄 알아야만 한다. 더 빨리 달리기 위해서는 시작점에서 움크릴 수 있어야 하고, 더 멀리 달리기 위해서는 충분히 멈추어 쉬면서 스스로를 점검할 수 있어야만 한다. 나에게는 안식년과 희년의 정신이 있는가? 

9. 2011년 선교사로 사역을 시작하면서 정말 쉬어본 적이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늘 바빴고, 늘 분주했고, 늘 애썼던 것 같다. 잠시의 시간이지만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원하고, 태국에 돌아가서도 바쁜 일정들을 조금 더 조절하여 가족들과도 좀 더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나 스스로도 멈추고, 쉴 수 있는 사역자가 되기를 원한다. 충성은 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태도에 대한 것임을 잊지 말자. 

10. 오늘도 샬롬

*16일 밤 비행기로 태국에 돌아갑니다. 여전히 허리 통증이 있어서 비행기를 타는 것이 조금 염려가 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치료하여 주시길 기도해주시고, 또 제가 스스로가 정해놓은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계획표를 따라서 필요에 따라서는 멈추어 쉬는 것에 순종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3. 5. 23. 11:20
728x90
반응형

레 14:21-32 힘이 미치는대로

1. 오늘 본문은 나병환자의 정결의식에 대한 내용이다. 나병환자들은 그 시대에 가장 소외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도 부정한 사람들 취급을 받은 자들이었다. 경제활동도 어려웠을 것이었고, 따라서 매우 가난했을 확률이 높다. 

2.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나병환자들의 속죄를 위해서도 제물을 요구하신다.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든다. ‘그들이 무슨 벌이가 있고, 무슨 재산이 있다고 그들에게도 제물을 요구하십니까? 그들은 그냥 용서해주셨으면 안되는 것입니까?’

3. 그러나 22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의 힘이 미치는대로…” 31절도 이렇게 시작한다. “곧 그의 힘이 미치는대로" 하나님께서는 나병환자들을 가난하다고 불쌍하다고 그저 죄를 용서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서도 그들의 힘이 닿는대로 제물을 바칠 것을 요구하셨다. 

4. 그만큼 죄는 무서운 것이다. 죄는 그 누구도 아무런 희생없이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부유한 사람은 제물을 통해 용서 받고, 가난한 사람은 제물을 드리지 않아도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죄는 오직 피로써만 (제물) 사함받는 것이다. 

5. 그래서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우리가 지불할 수 없는 죄의 무게의 대가를 예수께서 지셨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우리는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6. 한국에서 체류한지 1달이 되었다. 한국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한국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전적으로 필요함을 느낀다. 아무리 우리가 이전에 부흥했더라도, 아무리 기독교 인구가 몇 %이고, 수 많은 대형교회들이 우리 주위에 있더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임을 깨닫는다. 

7. 예수 없는, 예수가 필요 없다고 느끼는 한국 사회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음을 듣게 된다. 한국 사회가 이렇게 되도록 그간 내 신앙, 내 믿음만 생각했던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이 가장 많이 든다. 나는 예수면 충분하다고, 예수가 전부라고 이야기 하면서도 정말 그렇게 살아온 것일까? 그들이 보기에 나는 그런 사람이었을까?

8. 한국이든 태국이든 다시 한 번, 나는 죽고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역사들이 일어나기를 소원한다. 그리하여 그 믿음이 내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내 주변의 이웃들에게로 퍼져 나가길 원한다. 그러기에 나도 힘 닿는대로 주님께 드릴 수 있기를 원한다. 찬양의 가사처럼 ‘몸 밖에 드릴 것이 없으니 내 삶을 받아 주소서’ 라고 말하며 내 삶을 더욱 더 드릴 수 있게 되길 원한다. 

9. 나병환자 같은 날 위해 사랑하시기 때문에 죽으신 그리스도를 위해 오늘도 내 삶을 드릴 수 있기를 원한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하나님 닮아가는 삶을 살아내므로 이웃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한국에 와서 바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정신없이 지내느라 묵상도 정리해서 보내지 못했었지만 그간 많은 은혜들이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어깨 수술도 잘 마쳤고, 한국에서 해야 할 일들도 하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모든 분들을 다 뵙고 돌아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힘이 미치는대로 사랑하기 원하고, 힘이 미치는대로 섬기기 원합니다. 한국에서 남은 일정들을 잘 보내고  갈 수 있도록, 병원 치료 일정들과 요엘이 상담, 그리고 저희 가정과 사역의 후원이 늘어나기를 기도 부탁드립니다. 늘 감사합니다. 샬롬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3. 3. 17. 11:22
728x90
반응형

마 23:1-12 모세의 자리 = 모세의 (기도의) 자리

1.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도록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말은 본받아서 지키되 말만 하는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2-3절 상반부)

2. 그들은 좋은 말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들의 말하는 바는 행하라고 하셨지만 그들의 말뿐인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사실 모세의 자리라는 것은 권력의 자리라는 의미 보다는 오히려 엄청난 기도와 책임감의 자리였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가면서 얼마나 고뇌하고 힘들었었나?

3. 하지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기도와 책임감을 지려고 그 자리에 앉은 것이 아니라 권위와 힘을 행사하기 위해 또 자신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를 말로써 증명하기 위해 그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말은 번지르르 했지만 말에 대한 행함은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권위를 이용해서 좋은 말만 하고 책임은 지지 않았다. 

4. 가장 쉬운 것이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는 것이고, 권한은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행동들을 경고하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이러한 행동들은 하나님께서 또 모세가 보여주었던 리더십과는 거리가 멀다. 

5. 어떠한 리더십을 가질 것인가? 누구를 위해 리더의 자리에 앉을 것인가? 나의 권한과 힘을 가지고 행사하기 위해 리더가 될 것인가? 아니면 나의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 함께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보고, 따라가도록 하는 리더가 될 것인가?

6. 나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말을 실천하기 위해 어떠한 책임을 지고 있는가? 책임질 수 없는 약속만 남발하고 있지는 않은가? 권한과 힘만 좋아하고, 희생과 헌신은 거리가 멀게 살고 있지는 않은가?

7. 지금 책임져야 하는 일들이 참 많다. 교회사역 뿐만 아니라 두 곳의 연구소와 박사과정 공부, 신학교 강의 등등 내가 반드시 책임을 져야만 하는 일이 많다. 나는 이런 책임 속에서 어떤 리더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입만 살아 있는 사람은 혹시 아닌가? 

8. 나는 나의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책임을 지기 위해 정말로 애쓰고 노력하고, 책임을 마무리 짓기 위해 잠을 줄이고 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내가 책임질 수 있는가? 정말 내가 말한 바를 지켜낼 수 있는가?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모세가 자신의 무거운 책임을 지기 위해서 했던 것은 그의 애씀도 많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기도였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정으로 이끌어 가실 수 있으신 이스라엘 백성의 진짜 왕이신 하나님께 엎드렸다. 

9. 나의 리더십은 기도하고 있는가? 오늘 아침에 요엘이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기도해야 하는데.. 좀 더 엎드려야 하는데.. 나의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서는 나의 애씀과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기도가 있어야만 된다. 나는 기도하는 엎드리는 리더인가? 모세의 (기도의) 자리에 앉은 리더인가? 말로만 기도할게 아니고, 기도하겠다는 말과 내 삶의 행동을 일치시키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3. 3. 10. 12:01
728x90
반응형

마 21:12-22 말씀을 그 의미 그대로 읽어야 한다

1.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 잎사귀를 마르게 하셨다. 예수님은 그런데 굳이 잎사귀를 마르게 하실 분이 아니셨다. 이사야서에서 예언하는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사 42:3)의 주님이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아주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시다. 

2.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굳이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셨다. 이 사건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시청각교재를 통해서 무엇인가 말씀하고 계신 사건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3. 주석을 보면 이 사건은 아마도 이스라엘의 멸망과 이방인들을 위한 성전과 제사 제도의 파멸을 예고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컨텍스트를 무시하고 21-22절만 생각하면 본문을 오해하기 쉽상이다. 

4.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의 백지수표를 주신 것이 아니다. 우리의 욕심대로 기도해도 믿음만 있으면 다 응답받는다는 믿음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보게 될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5. 무화과나무가 마르는 것 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때문에 성전도, 제사 제도도 다 무너질 것이고, 믿음이 있는 자들은 이 놀라운 일들을 보게 되고, 참여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일에 참여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신다. 

6. 하지만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예수님께서 기도의 백지수표를 주셨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은 아마도 욕심 때문일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히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21-22절)

7. 이 말씀을 컨텍스트에서 뚝 떼서 그냥 믿음을 가지고 구하는 것은 내가 다 얻을 수 있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러한 생각이 세상사람들이 조롱하는 것 처럼 ‘주식회사 예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말씀은 말씀이 의미하는대로 읽어야 하는데, 우리는 스스로의 욕망을 따라 말씀을 읽는다. 그래서 내가 좋은 방식대로 읽고 해석한다. 

8.  하나님의 말씀을 그 말씀하신 의도대로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때로는 말씀이 적혀진 시대와의 갭으로, 이스라엘의 사고방식과 지금 내가 가진 사고방식의 차이로 말씀을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대로 해석하는 잘못을 저지를 때도 있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원래의 의미 그대로 읽으려고 하는 노력은 매우 필요하다. 안그러면 ‘주식회사 예수'로 세상 사람들의 조롱을 받아야 하고, 우리 또한 말씀이 아니라 욕망을 따라 살게 되기 때문이다. 믿음이 중요하다. 하지만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사랑’이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3) 예수님도 사랑으로 모든 율법을 요약하시지 않으셨는가? 

9. 말씀을 그 의미 그대로 제대로 읽음을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728x90
반응형

미 7:14-20 선하신 하나님은 선한 우리의 삶에 담아서 전해야 한다

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미가는 하나님을 양 떼를 먹이시는 목자로 표현한다. “원하건데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 떼를 먹이시되…”(14절). 

2.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시다. 이러한 메타포는 시편 23편에서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다. 목자의 이미지는 날마다 우리를 성실하게 우리를 인도하여 먹고, 마시게 하는 하나님을 떠오르게 만든다. 

3. 실제로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때로는 드러나게, 우리가 느낄 수 있도록 특별 은총으로, 때로는 드러나지 않고, 매우 평범한 일반 은총으로 우리의 삶을 날마다 인도해나가시는 분이시다. 

4.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 뿐만 아니라 인간의 죄악을 아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우리를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죄를 짓고, 끊임없이 반역하는 인간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5.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18-19절)

6. 실제로 18-19절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 자신이 직접 인간의 몸으로 오셨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서 드리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가리셔서 다시는 우리를 죄인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아들이라, 의인이라고 칭하셨다. 

7. 세상에 이런 신이 어디 있는가? 사랑 때문에 거룩하신 그 분이 우리를 매일 용서하시고, 사랑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을 선택하시고,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을 선택하신 그런 신이 어디에 있는가? There is none like You. 

8. 최근 삼일절의 한 목사의 말도 안되는 언행이 도마에 올랐다. 일제 강점이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잘못된 역사관, 그릇된 신학을 가진 한 목사가 기독교인들을 싸잡아서 욕먹게 만들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기독교에 또 한 번의 강펀치를 날린 것 같은 느낌이다. 뭔가 부끄럽고 뭔가 아프다. 목사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책도 안 읽고, 생각의 사유도 할 줄을 모르는가? 하나님이 이렇게 좋은 분이시면 뭐하는가? 그 좋은 분을 전하는 우리도 그 분을 닮아가는 자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좋은 것은 좋은 그릇에 담아야 그 내용물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은가? 세상에 다른 사람에게 좋으신 하나님을 소개하고 싶다면 우리 또한 좋은 그릇이 되어야만 한다. 

9. 이번에 그 목사와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내 안에도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없다. 필요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이고, 주님의 도우심이다. 좋은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오직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할 뿐이다. 선한 것이 없는 내 안에서 선한 것을 짜내려고 하지 말고, 선하신 주님과 동행함으로 인해서 그 분의 선하심이 나도 모르게 내게 묻어날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728x90
반응형

미 3:1-12 들으려면 사랑해야 한다

1. 이스라엘의 리더들은 타락했다. 그들의 타락상을 1, 5, 9절에서 고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들으라” 라고 하며 말씀하신다. 

2.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1-2절 상반부)

3.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며 들으라고 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씀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듣지 않았다. 

4. 듣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들으려면 마음을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들으려면 겸손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옳다고 생각하는 한, 내가 하나님보다도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한 들리지 않는다. 

5.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자신을 하나님보다 옳게, 낫게, 지혜롭게 여긴 것이다. 자신들이 죄악을 범하고, 정의를 가리고 (1절), 입에 음식이 들어올 때 (나에게 유익이 될때에만) 만 평화를 외치고 (5절), 정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만들면서도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을 옳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6. 이러한 굳은, 높아진 마음은 결국 사랑이 없어서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듣지 않는 것이다. 듣기 위해서는 귀를 열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수적으로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7. 하나님도 이웃도 사랑하지 않았기 정의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내 입 안으로 들어오는 먹을 것, 내 유익, 내 이익이 가장 중요한 것일 뿐, 나머지는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8. 나는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사랑하고 있는가? 듣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들으라 말씀하실 때, 귀를 열고 듣는가? 아님 여전히 나를 하나님 보다 옳다 여기며 귀를 닫고 있는가? 들어야 한다. 들어야 산다. 들어야 회개하게 되고, 들어야 회복하게 되고, 들어야 부흥하게 된다. 나는 오늘도 듣고 있는가? 듣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가? 

9. 듣는 자로 하루를 살기 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내의 말을, 아이들의 이야기를, 성도들의 이야기를 듣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728x90
반응형

미 2:1-13 나에 대한 정확한 인식: 나는 더 많은 용서를 받은 자이다

1.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가 임한다. 그 경고의 메시지는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을 계획하나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하게 다니지 못할 것이라 이는 재앙의 때임이라 하셨느니라" (3절)

2.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으면 적어도 뭐라도 바꿔야 되지 않는가?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이 예언조차도 듣기 싫어한다.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거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하는도다" (6절)

3. 굳어진 마음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자 않는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도, 하나님의 예언이 들려도 이럴리가 없다는 자신의 생각을 더 의지하게 된다. 그래서 예언자의 입을 닫게 만든다. 

4. 이스라엘의 이러한 행동을 보면 ‘이것들 정말 확 쓸어버려?’라는 생각이 들만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들을 더 사랑하셔서 여호와께서 남은 자들을 모으시며 그들의 선두에서 가시겠다고 말씀하신다.

5. “야곱아 내가 반드시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반드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의 양 떼 같이 하며 초장의 양 떼 같이 하리니 사람들이 크게 떠들 것이며 길을 여는 자가 그들 앞에 올라가고 그들은 길을 열어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가며 여호와께서는 선두로 가시리라" (12-13절)

6.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스라엘의 반역에도, 이스라엘의 불순종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시고, 여전히 그들을 모으시고, 그 앞에서 선두로 가시며 그들을 보호하신다. 

7.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크다. 나는 요엘이의 짜증 하나도 잘 받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결같다. 아무리 배신하고, 불순종해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사랑하는 그 분의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8. 내 마음에 사랑이 없음을 느낀다. 그래서 자꾸 빠글거린다.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인내해주는게 너무 어렵다. 그래서 순간 순간 예민해지기 일쑤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서인가? 나는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것인가? 중요한 것은 나 또한 오늘 본문과 같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오래 참아주시고, 기다려주시고, 끝없이 용서해주셔서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인데 나는 나에게는 너무 관대하고 남에게는 너무 타이트한 잣대를 들이댄다. 결국은 내 자신에 대한 인식,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의 크기에 대한 실제적인 인식이 부족함이다. 

9. 머리로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머리로만 알았기에 하나님의 경고 조차도 듣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마음으로, 진정으로 알기 원한다. 그래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사랑을 어디에서는 누구에게든 실천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10. 오늘도 샬롬 

*사진은 교회의 분립 이후 처음으로 시작하게 된 쁘라뚜남 가정교회입니다. 첫 번째 모임이었는데 4명이 참석하였고, 그 중에서 두 자매(능, 쁠러이)가 영접 기도를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영혼들을 불러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펫티 자매를 통해서 모임이 시작되었는데,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이 모임을 통해 많은 영혼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직장을 마친 후 모임을 하게 되어 늦은 시간에 하게 되는데 (밤 9:30-11시) 모두가 피곤치 않고 이 모임 속에서 하나님의 회복과 사랑의 역사라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샬롬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728x90
반응형

미가 1:1-16 리더이기 때문에 더더욱 하나님께 듣고 물어야 한다

1. 미가서 1:1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

2.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라엘이 힘든 이유가 다른 나라들과 달리 이스라엘에 왕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왕을 세웠다. 그리고 지금 그 왕의 계보가 요담과 아하스 까지 내려온 것이다. 

3.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유력한 왕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으시고, 누군지도 모르는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되 곧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밝으실 것이다" (2-3절).

4.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염원을 담아 세운 왕에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변방의 미가라는 한 선지자, 아무도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 말하셨을까? 주석을 찾아보니 미가는 한 번도 명시적으로 ‘선지자'로 일컬어진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5. 그 이후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죄를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왕들도 이 죄를 피해가지 못했던 것 같다. 리더십을 보여야 할 왕들이 오히려 이러한 죄들을 방조하고 조장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미가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6.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더 깨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리더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고, 더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가 잘 못 세워지면 나라까지 위태해지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많이 봐 오지 않았는가? 

7. 선교사의 자리는 원하든 원치않든 리더의 자리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자리이다. 이러한 리더의 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항상 더 깨어 있고, 항상 더 조심하고, 항상 더 나를 깊이 돌아봐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기쁜 소식)을 전하러 와서 오히려 나쁜 영향을 태국 사람들에게 미칠 수 밖에 없다. 

8.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는가? 나는 듣고 있는가? 혹시 내가 듣지 못해서, 내가 범죄해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말씀하시도록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날마다 깨어 있고, 날마다 듣고 순종하는 자로 살아가고 싶다. 나의 연약함이 태국에 세워지고 있는 교회에, 또 하나님의 나라에 허물이 되지 않기를 원한다. 

9.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들어야 하고, 날마다 물어야 한다. 다윗이 늘 하나님께 듣고, 물었고, 순종했다. 나의 삶도 다윗과 같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