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0:17-34 그리스도의 관심과 나의 관심은 일치하는가?
1. 예수님의 관심은 그 분이 져야 할 십자가와 부활에 있었다. 왜냐하면 그 십자가 사건이 인류의 모든 것을 바꾸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니라”
2. 예수님께서 이렇게 심각하고도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배대의 아들의 어머니와 제자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1절)
3.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이야기하고, 부활을 이야기 하시지만 나는 자주 나의 소망과 나의 원함을 주님께 이야기 하게 된다. 주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아서 누릴 그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4. 세배대의 아들의 어머니는 진정으로 예수님의 길이 어떤 길인지를 몰랐다. 만약 예수님의 좌, 우편이 십자가 상의 좌, 우였다면? 과연 부탁을 할 수 있었을까? 오히려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것 처럼 이 잔을 옮겨 달라고 부탁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십자가와 부활의 길은 예수님만 걸어가시면 되고, 그녀는 그 이후의 자녀들에게 있을 콩고물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5.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 부탁을 엄청 분하에 여긴다 (24절). 세배대 아들의 어머니와 제자들, 그리고 나의 차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도 제자들도 나도 십자가보다는 부활의 영광에만 오로지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지나야만 부활이 있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고서 어찌 부활의 영광을 함께 누리겠는가?
6. 우리가 주를 위해 살아간다고, 주를 위해 무엇인가를 행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우리는 나의 영광만 생각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일 뿐이다. 맹인들의 고백이 그래서 우리에게는 절실히 요청된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30절 하반부)
7. 나의 관심이 나의 생각이 나의 물질의 사용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인가 아니면 그 부활의 풍성함에서 오는 어떤 콩고물인가?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가?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가?
8. 태국은 종교비자가 따로 있고, 나도 그 종교비자를 사용하고 있다. 어제는 특별히 1년 비자 갱신을 받았다. 앞으로 1년을 새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비자를 받으면서 기쁜 마음과 동시에 힘들고 어려운 마음도 함께 들었다. 왜냐면 나는 이 비자에 합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나는 정말 태국교회와 선교를 위해 섬기고 있는가? 나의 유익이 아니라 태국 교회의 유익이 되고 있는가? 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관심과 생각이 그리스도와 정말 같은가? 나는 정말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는가?
9. 더 깊이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원한다. 그리하여 나의 생각과 나의 관심이 그 분의 생각과 그 분의 관심과 일치가 되어서 딴 생각을 하며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선교사가 되지 않기를 원한다. 태국 땅에 유익이 되는 선교사로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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