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2:17-29 ‘복음의 통로’ 로서의 정체성
1. 로마서에서 먼저 유대인들의 위선과 죄를 지적한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가졌다고 말하며 율법을 가진 자신들을 자랑하지만 그들은 그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다.
2. 유대인들은 이러한 생각 속에서 자신들이 교사요 스승이라고 믿는다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0절)
3.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선택하신 것은 맞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방의 빛’으로 부르셨지 교사요 선생으로 부르시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영광을 전하는 통로로 부름받은 자들이 자신의 통로됨을 잊어버리고 자고하며 자신을 교사로 선생으로 높이고 있었던 것이다.
4. 그리고 더 말이 안되는 것은 그들이 자신을 교사로 선생으로 자처하면서 그들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1-22절)
5. 이렇게 안타까운 유대인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 아닌가? 나에게서 보여지는 연약한 모습들이 아닌가? 선교사로 살아가기 때문에 나 스스로를 교사와 선생으로 생각하는 때가 꽤 있는 것 같다. 물론 역할적인 측면에서는 그런 부분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방의 빛'으로 부르셨지 자고하는 교사와 선생으로 부르지 않으신 것을 명심해야 한다.
6. 자고 하지 않고, 스스로를 오해하지 않으려면 내가 선교사 혹은 목사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부르심의 기능적인 면에 대한 집중이 아니라 부르심의 존재적인 면에 집중해야 한다.
7. 하나님께서는 나를 복음을 전하기 위한 통로로 부르셨다. 통로에게 필요한 것은 흘려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통로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내가 그 복음을 흘려 보내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 복음이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 또한 복음이 필요한 그 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다.
8. 육체의 할례(율법) 보다는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을 받아야 한다 (29절). 그게 피조물이며 복음의 통로된 자가 가져야 할 자세이다. 내가 주인이 아니고, 내가 복음이 아니고, 나는 그저 전달자일 뿐이다. 오늘도 전달자로서의 나를 기억하며 주님 앞에만 진심으로 서고 주님께만 칭찬받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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