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32:1-19 히스기야의 삶의 태도
1. 십일조를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눠주고 난 이후 이스라엘은 앗수르왕 산헤립이 쳐들어왔다 (1절). 하나님 앞에서 좋은 일을 하고, 충성스럽게 섬겼는데 어려움이 닥쳤다. 하나님께 더 집중해서 예배 드리기 위해서 십일조를 레위인들에게 나눴지만 결과는 전쟁이었다. 사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일상에서 자주 있는 일이다.
2. 그럴 때 어떤 자세를 취하게 되는가? “하나님 나한테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제가 이것도 하고 이것도 하고…” 이렇게 대들 수도 있고, 여전히 충성스럽게 섬길 수도 있다. 오늘 히스기야 왕은 두 번째의 모습이었다.
3. 그 자세는 하나님을 향한 사람의 생각과 자세에서부터 비롯된다. 첫 번째 태도는 하나님에게 내가 이만큼 했으면 하나님도 나한테 이만큼 해줘야 한다는 기복신앙에 가깝다. 하나님은 내가 이해되는 방법으로 나의 삶에 간섭해야만 하는 작은 신에 불과하다. 사실은 내가 하나님인 것이다.
4. 내가 원하는 시점에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일하여 주시기 원한다. 왜냐하면 내가 내 삶의 주인이고, 하나님은 램프의 지니같이 나를 서포트 하는 존재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태도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진정 하나님 되게 하는 방법이다.
5. 히스기야의 말을 들어보자.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7절) 그는 하나님께 이 전쟁을 마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이 전쟁을 없게 해달라고도 기도하지 않았다.
6.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불평하지도 않았다. 그는 오직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선포하였다. 하나님은 자신의 생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면 하나님께서 빠져나갈 방도도 주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7. 이러한 삶의 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그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사 나의 편에 서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는 내 앞에 시련이 얼마나 크든지 상관없이 그 하나님의 은혜로 넘어갈 것이다. 내 힘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분으로 말미암음이다.
8. 히스기야 왕과 같이 오늘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내가 하나님 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나만의 램프의 지니 만들지 말고 그 완전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편에 서 계심을 믿고 지금 이 어려운 순간들을 잘 헤쳐나갈 수 있기를 원한다. 지금의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더더욱 하나님을 붙들기 원한다. 그리고 그 분 편에 더 서기 원한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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