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1. 5. 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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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23:16-24:3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 만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

1. 때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사람이 더 의식이 되고 무서울 때가 있다. 여호야다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산 사람이었고, 그는 이스라엘을 개혁을 실시하였다. 그는 정말로 하나님만을 의식한 사람이었다. 

2. 16절을 보면 “여호야다가 자기와 모든 백성과 왕 사이에 언약을 세워 여호와의 백성이 되리라 한지라” 그리고 17절을 보면 그는 바알의 신당과 제단, 형상들을 깨뜨리고 그 제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였다 (2절) 

3.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만을 의식하며 살아간 사람이었고, 남 유다의 영적개혁을 이루었다. 하지만 다윗의 유일한 혈통 요아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몰살 당할 뻔 했을 때 여러 사람의 헌신으로 생명을 구했고, 자신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다윗의 혈통이기 때문에 왕이 되었다. 

4. 요아스 왕에 대한 평가는 아쉽다. 2절을 보면 “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며” 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여호야다가 죽은 후의 그의 인생은 다를 것을 암시하고 있다. 요아스 왕은 하나님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사람인 여호야다를 두려워한 것이다. 

5. 요아스 왕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랬을 수 있다. 자신을 지금 왕위에 앉게 한 가장 중요한 사람이 여호야다가 아닌가? 그러니 그는 항상 두렵고 어려운 인물이었을 것이다. 거기다 여호야다는 빈틈도 없어 보인다. 종교개혁까지 이뤄낸 인물이었다. 하지만 요아스 왕의 문제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는데서 시작되었다.

6. 사람을 두려워 할 것인가? 하나님을 두려워 할 것인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자주 멀어 보인다. 멀게만 느껴지고 나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여호야다 같은 사람은 가깝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사람 때문에 내 행동과 생각이 바뀌어서는 안된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해야 하고, 모든 삶의 이유와 동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7. 그렇지 않으면 오늘 요아스 왕 처럼 그 사람의 영향력이 없어지면 변질된다. 여호야다 제사장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온전하게 하나님 한 분만을 의식하며 살았다. 그는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기 전이나 왕으로 세우고 나서나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하나님을 섬겼다. 권력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가 사람이 아니라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8. 오늘 나는 누구를 의식하고 있는가? 가끔은 멀어 보이는 하나님인가? 아님 지금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 누군가인가?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 하나님께 우리의 목적을 둬야 한다. 유력한 누군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식하자. 그것이 가장 바른 길이고, 가장 빠른 길이고, 가장 합당한 길이다. 

9. 내 삶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교회개척팀 안에서도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 나올 수 있도록.. 사람 앞에서 연기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자.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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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1. 5. 1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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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23:1-15 탁월한 여호야다의 삶은 아니더라도… 

1.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언약의 혈통, 다윗의 후손 요아스를 소망이 없는 것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 왕으로 세우는 이야기이다. 사실 요아스 왕자는 자신이 한 것이 별로 없다. 오늘 일은 여호야다라는 제사장이 하나님의 언약을 쫓아 사람들을 모아서 시작한다. 

2. 1절에 여호야다가 ‘용기를 내어’ 다른 이들과 언약을 세웠다고 말한다. 용기를 내지 않고서는 이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반역이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여호야다 입장에서는 언약을 세우는 거지만 아달랴 입장에서는 체제를 전복하는 반역이다. 

3. 그들은 지혜롭게 모든 사람들을 1/3로 나눠서 적합한 자리에 배치하고 필요한 일을 맡겼다 (4-7절). 그들의 유일한 목적은 3절이었다. “온 회중이 하나님의 전에서 왕과 언약을 세우매 여호야다가 무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다윗의 자손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왕자가 즉위하여야 할지니"

4. 옳은 일을 위해 용기를 내었고, 하나님의 언약에 생명을 걸었다. 그래서 그들은 준비한대로 요아스 왕자를 왕으로 세웠다. (9-11절). 여호야다에게는 진정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 같다. 그의 개혁은 그가 권력을 잡고자 함도 아니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회복시키는데 관심이 있었다.

5. 이러한 사람이 세상 입장에서는 가장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이 된다. 거룩한 욕심 외에는 욕심도 없고, 권력이나 다른 것에 대해서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그 언약의 회복에 대한 갈망 외에는.. 정말 순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세상은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어떤 것으로도 그를 넘어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6. 우리 사회가 필요한 사람이 이런 사람이 아닐까? 자신의 이익에 휘둘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갈망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만 갈망하는…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살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같이 이익에 휘말리고, 거룩이 아닌 다른 것에 가치를 두니까 세상이 우리를 비판하는 것이 아닐까? 

7. 나는 그럼 그런 사람인가? 그런데 나도 아니다. 결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선교사로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나 자신에 대한 생각과 여러가지 욕망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지만 그 비판하는 것이 결국 내 안에 동일하게 있다. 우리는 결국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조금도 달라질 수 없는 사람이다.

8. 그래서 결국 다시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며,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의 연약함을 그 십자가 앞에 꺼내어서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나의 소망은 나의 어떠함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계속 십자가의 예수를 만남으로 인해서 계속 우리의 연약함들을 내려놓게 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이다. 

9. 지금 오늘 당장 여호야다같이 살지 못한다고 해서 너무 자책하지 말자. 그렇다고 너무 뻔뻔하지도 말자. 그저 그 분을 닮아가려고 애쓰자. 그저 그 분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려고 힘쓰자. 주님 마음을 저에게 주소서.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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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1. 5. 12.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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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20:1-13 지혜, 능력, 그리고 나의 본분은?

1.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과 마온 사람들이 연합하여 남유다를 공격하러 온다 (1절) 이에 따른 여호사밧의 반응은 군대를 모으고, 무뎌진 칼을 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다.

2. “여호사받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3-4절) 여호사밧은 본인 뿐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이 함께 금식하며 간구하는 것이었다.

3.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하나님께 말씀드린다(5-9절). 하나님의 신실함에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 산 사람들을 물리치신 것도 말씀 드린다 (10절).

4.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주를 바라본다”(12절)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한 마음으로 여호와 앞에 섰다 (13절).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13절)

5. 우리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지혜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이 능력이다. 그리고 오직 주를 바라보며 여호와 앞에 서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다. 그들은 어려운 시기에 그들이 해야할 마땅한 일을 하였던 것이다. 

6. 나의 지혜와 능력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본분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가? 지난 두 달간의 기도편지를 쓰면서 느끼는 것은 오늘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했던 일이 내 삶에도 역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혜와 능력과 본분을 잘 지켰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였다.

7. 하지만 나의 지혜와 능력이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점검하게 된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도록 우리를 전적으로 내어드리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 한 분 만이 모든 소망이 되시기 때문이다. 

8. 나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려는 수고를 멈추자. 전쟁과 같은 삶의 어려운 순간에 군대를 모으려고 하거나 무뎌진 칼을 갈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기도하며,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그 분 앞에 온전히 서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산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내가 되기 원하고 수쿰빛 언약교회가 되기를 원한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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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1. 5. 1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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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19:4-11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

1.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생명을 구한 여호사밧은 그 은혜로 말미암아 유다의 개혁을 지휘해 나간다. 먼저 4절을 보면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까지 두루 다니며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했다. 신앙을 개혁한 것이다. 

2. 두 번째 그의 개혁은 재판관들을 향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동일한 반응이라면 우리가 죄인이라고 느끼는 것일 것이고, 그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갈망하게 되고,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없는 사회를 보고 슬퍼하게 될 것이다. 

3. 여호사밧이 재판관들에게 물었던 질문은 참으로 중요하다. “너희가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하여 할 것인지 여호와를 위하여 할 것인지를 잘 살피라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심이니라” (6절)

4. 내가 하는 재판이, 내가 하는 어떤 일이 누구를 의식하며 하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인가 사람인가? 사람을 의식하게 되면 우리는 그 누군가의 이익을 구하게 된다. 그/그녀의 이익이든 혹은 나의 이익이든… 공평과 정의는 사라지고 이익만 남는다. 인간이 죄인이기 때문이다.

5.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할 때에,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그 하나님을 의식할 때에만 우리는 그 분의 거룩하심을 쫓아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익이 아니라 정의와 공의를 바라보게 된다. 비단 재판의 일만이 아닐 것이다.

6.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도, 교회를 세워가는 일도, 아내와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 분을 배워갈 때에라야 우리는 옳은 길을 갈 수 있게 된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누구를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7. 스스로 잘 아는 것은 나는 하나님 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더 자주 의식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겠지만 눈치도 많이 보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자꾸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다. 

8. 무엇을 하든, 어떤 말을 하든 하나님을 의식하며 행동하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 때문에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게 되고, 무엇을 하든 주께 하듯 하게 되기를 원한다. 그렇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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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1. 5. 1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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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18:28-19:3 잔머리와 술수를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기

1. 북이스라엘 왕 아합과 남 유다의 왕 여호사밧이 연합하여 전쟁터로 나아간다. (28절) 그들은 그 전에 하나님의 예언을 들었다 (17-22절). 전쟁을 나가면 아합이 죽을거란 예언이었다. 

2. 아합은 그래서 머리를 쓴다.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 왕이 변장하고 둘이 전쟁터로 들어가니라” 여호사밧은 왕복을 입히고 자신은 변장하여 전쟁터로 간 이유는 이 예언이 이뤄지지 않게 하려는 술수였을 것이다.

3. 전쟁터에서 화려한 왕복을 입은 왕이 죽을 확률이 훨씬 높지 않겠는가? 하지만 세상의 일은 우리의 계획과 술수를 따라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과 일하심을 통해 역사는 진행된다. 31절을 보면 아합 왕의 계략되로 되는 것 같다. 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싸우려고 한다. 

4. 그런데 그 사건에 우리가 생각하는 우연, 혹은 기적으로 하나님께서 개입하신다.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가게 하신지라” (31절). 그리고 동일한 우연 혹은 기적이 또 발생한다.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33절 전반부)

5. 아합왕의 생각처럼 가던 역사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로 가게 된다. 아닌 것 같을 때도 많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역사가 바로 하나님의 역사이다. 우리의 머리로 재단하고, 내 계획과 생각을 이야기해도 결국은 내가 고려하지 못했던 요소들로 인해 나의 계획과 생각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6. 지혜로움은 범사에 그 분을 인정하는 것이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 3:6) 지혜로움은 내 계획과 생각을 내려놓고 그 분을 의지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잠 1:7)

7. 무엇을 의지할 것인가? 무엇을 경외할 것인가? 내 생각과 내 욕망과 내 계획과 내 잔머리인가? 아니면 하나님인가? 정답은 알고 있으면서도 내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 쉽지가 않다. 하지만 아합의 마지막을 보며 다시 한번 내 삶의 교훈으로 삼으며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결정한다. 

8. 특별히 지혜가 필요한 시기이다. 어떻게 하면 이 시기에 만나지 못하는 성도들과 성도의 교제를 할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 깊이 예배하게 할지 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지혜롭고 창의로운 방법으로 함께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시간이 되길 원한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길 원한다. 

9. 오늘도 샬롬


* 떨어져 있는 성도들과 교제를 하기 위해 온라인 애찬식을 했습니다. 저희들에겐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자세한 소식은 페북 링크를 보내드립니다. 늘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www.facebook.com/jdreamer79/posts/4182236275155555?notif_id=162048179071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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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16:1-14 아사왕도 나도 답이 없다

1. 인간이 죄인이란 것을 아사가 다시 보여주고 있다. 어제 본문까지만 해도 그는 마음을 잘 지키며 우상숭배에 관해서는 어머니도 용서하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왕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늘 아람의 군대를 의지한다 (2-4절).

2. 동맹을 맺어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짓고 있는 라마 건축을 멈추게 하고 그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했다. 그의 계획은 성공적이었지만(5절) 하나님의 선견자 하나니로부터 이제 전쟁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받는다 (7-9절).

3.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하나님만 의지하길 원하신다. 하지만 우리의 본성상 하나님만 의지하는 건 가끔 되고, 거의 대부분은 되지 않는다. 특별히 우리의 머리로 계산이 될 때에는 더욱 더 그렇다. 아사는 아람과 동맹을 맺으면 자신이 원했던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되었던 것 같다.

4.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아니었다. 하나니로부터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 난 아사는 삐뚤어진다. 12절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을 때에도 그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했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5.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내 힘과 지혜를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계산과 내 방식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눈에 좋아보이고, 내 눈에 옳아보여도 하나님께 묻고 가는 것이다. 그런데 아사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다. 아니 우리 모든 인간들의 모습이다. 

6.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고, 사랑한다고 하지만 일시적이다. 어느 순간은 하는 것 같지만 대부분의 순간은 그렇지 못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들을 어린양의 피로 깨끗하게 하여 주셨다. 하나님을 배반하기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7. 아사와 같은 우리의 인생에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 어린 양의 피가 우리를 온전하게 하셨고, 깨끗하게 하셨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는 그 마음도 그 분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함으로 인해 그의 피로 우리의 연약함은 덮혀졌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피가 모든 것을 덮었고, 깨끗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8. 예수 그리스도를 더 붙들고, 그 분 안에 거하기 원한다. 그 피가 나를 살게했고, 그 피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셨다. 예수 안에 거하고, 예수님만을 의지하고, 예수님만이 해답이 되셔야 한다. 예수님께 구해야 하고, 예수님께 들어야 한다. 삶의 문제들을 그 분께 맡기며 그 분이 말씀하시길 구하자. 그 분이 그 분의 때에 이루실 것이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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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15:8-19 내 삶의 마아가는? 

1. 아사가 종교개혁을 실시한다. 그의 개혁은 그 자신의 마음을 강하게 하여(8절) 자신으로부터 시작이 되었고, 가증한 물건을 없애고, 여호와의 제단을 재건하였다 (8절). 가증한 물건은 분명히 우상숭배에 관계된 것이었을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를 떠나 여호와를 예배할 수 있도록 하였다. 

2. 그리고 이 개혁은 아사 자신에서 끝나지 않았고, 온 유다로 퍼저나갔다. “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15절). 개혁은 결국 나로부터 시작되어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3. 그런데 아사 왕의 어머니 마아가가 아세라의 목상을 만들었다. 종교개혁을 하는 아들 왕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우상을 만든 것이다. 아사 왕은 단호했다. “아사가 그의 태후의 자리에서 폐하고 그의 우상을 찍고 빻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더니”(16절). 아사 왕은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다. 

4. 설사 그것이 가족이고, 어머니라고 할 지라도 타협하지 않았고 성경은 이러한 그를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온전하였더라” (17절)라고 증언하고 있다. 참으로 멋진 인생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아사왕이 어머니의 우상숭배에서 ‘정’을 보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5. 넘어짐은 사실 아주 작은 균열, 혹은 타협에서 발생한다. 만약 어머니 마아가에게 인간적은 눈의 기준으로 그렇게 가혹하게 하지 않았다면 그 또한 평생 온전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언제나 작은 유혹에서, 작은 타협에서 넘어짐은 찾아온다.

6. 나에게도 이러한 마아가(작은 타협)의 유혹이 있지 않은가? 정 때문에.. 혹은 관계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랑하는데 걸림이 되는 것이 있지는 않은가? 혹은 '이정도면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타협하는 것이 있지는 않은가? 왜 없겠는가… 아침마다 묵상을 언제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나도 있지 않은가? 

7. 우선순위가 밀리면.. 그 날은 묵상을 정리해서 보내지 못하고 넘어가는 날도 있지 않은가? 급한 일에 밀려서 가정 예배를 못 드리는 날도 있지 않은가? 사실 찾아보면 내 삶에 마아가는 많다. 오늘 아사왕의 모습을 보며 좀 더 단호하게 믿음의 기본을 지키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함을 생각한다. 

8. 작은 타협 혹은 우선순위를 뒤로 미루지 않으면서까지 내가 붙들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예배이다. 그것이 없이는 선교도 사역도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진심이 아니라 기술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다. 나도 내 마음이 아사와 같이 일평생 온전하기를 원한다. 타협하지 않고 미루지 않고 주를 따라가기 원한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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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14:1-15 참 평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1. 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다. 이 평안은 모든 것이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때 아사의 땅에는 전쟁도 없었고, 그는 힘을 모아 성들을 건축할 수 있었다.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그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 (6절)

2. 평안을 누리는 일은 너무나도 부러운 일이다. 특히나 지금과 같이 평안을 찾기 힘든 세대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그가 평안을 누린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 비결은 2절에서 설명하고 있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3. 4절에서 또한 설명하기를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5절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평안에는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이 아니다. 

4. 평안을 위해서는 우리도 바로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 자리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율법을 따라 살아가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정의와 공의를 행할 힘이 그리 많지 않다. 때로는 가능하지만 더 많은 시간은 죄를 짓고 살아간다. 아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애썼다. 우리도 애쓰면 어쩌면 잠깐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5.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절망적인 우리들에게 새로운 산 소망을 주셨다“인애(Steadfast Love)와 진리(Faithfulness)가 같이 만나고 의(Righteousness)와 화평(Peace)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시 85:10)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우리의 힘으로 평안을 누릴 수 없기에 그 분의 사랑과 진리, 정의와 화평이 만나는 그 한 점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다. 

6. 그래서 그 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요 16:33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된 평안을 경험할 수 있다. 모든 율법이 완성되어 의로움이 흘러 넘치며, 모든 사랑이 충만하여 그 평안이 흘러 넘치는 그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이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오직 그 분 안에서만 평안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7. 나는 누구 안에 거하고 있는가? 어디에 있으면서 평안을 누리려고 하는가? 아사와 같이 어쩌면 가능한.. 때때로 일시적으로 가능한 평안을 찾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그 일시적 평안에 만족하고 있지 않은가? 혹은 오직 예수 안에서 구할 수 있는 평안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지는 않은가? 

8. 오늘도 예수 안에 거하는 하루가 되기를 원한다. 세상이 어지럽고, 코로나의 확산으로 인해 불안하고 선교사로써 무능해 보이는 시간을 경험하면서도 예수 안에 거하길 원한다. 그 분의 참 평안 안에서 쉼을 누리며 그 분의 사랑을 누리길 원한다. 오늘도 예수 안에서만 참 평안을 경험하길 소망한다. 내가 그 분 안에, 그 분이 내 안에 계시는 그 신비를 경험하기 원한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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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1. 4. 3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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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12:9-16 유일한 참 소망 예수 그리스도

1. 르호보암은 인간이 어떤 존재지인지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어제 묵상에서도 봤지만 그는 하나님의 얼굴이 아니라 손을 구하는 자였다. 인생을 거의 마감하는 시점에 섰지만 그는 거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2. 9절을 보면 "애굽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여호와의 전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고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도 빼앗은지라”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랬더니 12절에 “르호보암이 스스로 겸비하였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3. 하지만 13절에 “르호보암 왕이 예루살렘에서 스스로 세력을 굳게 하니…”라고 기록된 후에 14절은 또 다시 그의 넘어짐을 기록하고 있다. “르호보암이 악을 행하였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굳게 하지 아니함이었더라"

4. 약해지면 하나님을 찾고 (스스로 겸비하고), 강해지면 악을 행한다. 우리 삶에 있는 악의 존재는 이렇게 끈질기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같지만 어느덧 순식간에 다시 나를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을 구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5. 이것은 비단 르호보암과 나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인간들의 문제이다. 우리는 이러한 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르호보암의 삶의 결론의 죄의 삯인 “사망”이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저내랴” 롬 7:24

6. 우리의 힘으로 죄를 해결해보려는 노력은 이렇게 허망하다. 힘들면 의지하고, 좀 괜찮으면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이러한 우리들을 하나님께서는 잘 아시기에 영원한 용서를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어린양으로 보내셨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면 우리의 연약함은 그 분 안에서 감추어진다. 

7. 내가 가망이 없다고 깨닫는 것, 나에게서 아무런 소망이 없고, 르호보암과 같이 절망적이었지만 내 삶에 한 소망이 나타나셨음을 믿는 것이 소망이다. 물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죄의 문제 해결의 차원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고, 우리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8. 나의 삶의 결론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기를 원한다. 절망의 반복 속에서도 참 소망을 따라갈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오늘도 넘어지고 오늘도 나에 대해 실망하는 내 삶이 그리스도로 인해 참 소망을 얻게 되기 원한다. 4월의 마지막 날이다. 5월에는 더욱 더 예수를 사랑하고, 더욱 더 예수 안에 거하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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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1. 4. 2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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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12:1-8 하나님의 손이 아니라 얼굴을 구하는 자

1. 어제 본문에 따르면 르호보암의 나라가 하나님을 쫓는 자들로, 예배하기 원하는 자들로 인해 강해졌다. 하지만 그러한 강하여짐은 르호보암으로 하여금 교만하게 만들었다. 르호보암의 교만은 단순한 한 사람의 교만 그 이상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한 나라의 리더였기 때문이다.

2. “르호보암의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매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 (1절) 하나님을 의지해서, 사랑해서 얻은 강함이 오히려 하나님을 등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모습은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따라하도록 만들었다. 

3.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지만 르호보암이 여호와의 율법을 지켰던 이유는 사랑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들이 율법을 지켰던 이유는 그들의 안전과 강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4.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율법을 지킨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시는 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강하여졌더라도 계속 율법을 지켰을 것이다. 

5. 이렇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을 ‘기복신앙’이라 한다. 복을 구하는 신앙이다. 하나님이 복 그 자체이신데도 그 하나님께 다른 복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영원한 생수에게 가서 먹고나서 목이 마른 다른 물을 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

6. 이것이 르호보암의 모습이고 또 나의 모습이다. 언제든 나의 유익만 채워지면 나의 필요만 채워지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온데간데 없다.  하나님을 이용하고, 또 이용한다. 사역에서도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7. 하지만 그런 나를 하나님께서는 결코 멸하시지 않는다. 마치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을 멸하지 않으신 것 처럼 말이다 (7-8절). 지금 나는 무엇을 간구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얼굴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손(나의 필요)인가?  손이 아니라 얼굴을 구하는 자가 되기 원한다. 

8.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나의 초점을 맞추기 원한다. 코로나가 잠잠해질 줄을 모른다. 태국 전역은 2,000명이 넘고 방콕은 계속 1,000명 가까이 감염자가 나오고 있다. 전화와 라인을 통해서 계속 심방하고 하나님의 손이 아니라 얼굴을 구할 수 있도록 성도들을 격려하자.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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