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0. 6. 3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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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6:17-27 사도 바울의 마지막 권고, ‘복음, 그리고 은혜' 

1. 로마서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다. 마지막까지 사도 바울이 부탁하고 권면하는 내용은 ‘복음’과 ‘은혜’이다. 먼저 복음과 거슬러 분쟁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 떠나라고 말씀하고 있다 (17절).

2. 그리스도의 복음과 다른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가 누구이든 우리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없다. 우리는 거짓 복음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한 때 혹은 지금도 유행하고 있는 ‘번영 신학’이나 지금 태국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구원파’ 등의 무리에서 우리는 떠나야 한다. 

3. 그들을 복음의 사랑으로 품지만 그들로 부터 미혹받지 않도록 떠나야 한다. 위조 지폐 감별사가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위조 지폐에 관한 연구가 아니라 진짜 지폐에 관한 연구라고 한다. 우리가 진짜 복음 가운데로 더 깊이 들어가고, 더 알아가고, 더 삶에 적용되어저 갈 때, 우리는 더 이상 미혹되지 않을 것이다. 진짜 복음에 더 집중해야 한다.

4. 그리고 두 번째는 선함이다.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 원하노라” (19절 하반절). 인생을 살아오면서 느낀 점은 사실 이와 반대이다. 선한 일에는 미련하고, 악한 일에는 영특하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악한 일들을 배우고, 말들을 배우고 또 몰래 몰래 그것들을 행하기에 빠르다.

5. 하지만 사도 바울은 우리 힘으로 선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0절) 하나님께서 창세기 3장에서 주셨던 그 언약이 이뤄지고, 그리고 그 은혜를 우리 가운데 주시길 간구하고 있다. 

6. 우리는 진짜 ‘복음'을 알아야 하고, 그 복음으로 인해 받은 ‘은혜’ 안에 거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삶이 그제야 악을 떠나고 거짓 복음을 이길 수 있다.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 즉 복음으로만 이길 수 있는 것이고 그 은혜로만 우리는 오늘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7. 매일의 삶에서 복음 갱신 (Gospel Renewal)이 필요하다. 매일 복음이 내 안에서 새로 이해되면서 누려지는 은혜가 필요하다. 그것이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하는 일일 뿐이다. 내 힘이 내 노력이 복음을, 은혜를 넘어설 수 없다.

8. 오늘도 복음을 배우고,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 복음의 정신으로 살아가기 원하고, 원함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내기 위해 그 은혜를 주시기를 간구한다. 그것을 하실 수 있는 오직 한 분 하나님 앞으로 더 나아가기 원한다. 

9. 특별히 오늘은 13번째 결혼 기념일이다. 우리 부부의 관계 안에도 복음과 은혜가 더 흘러 넘쳐서 서로가 서로를 더 사랑하고 아껴주는 그런 부부가 되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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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6. 29.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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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6:1-16 동역자를 세워가는 방법

1. 사도 바울이 그렇게 낙심하지 않고 열심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적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그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언하셨던 그 메시아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 그리고 한 가지 이유를 굳이 더 덧붙이자면 아마도 바울의 동역자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울의 서신서 마지막 부분에는 이렇게 그의 사랑하는 동역자들에게 안부와 사랑을 전하는 인사 부분이 있다.

3. 바울은 참 행복했던 사람이었을 것 같다. 그에게는 자신의 목 까지도 내어 놓은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도 있었고 (4절), 아시아에서 처음 열매로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에배네도 (5절)도 있었고, 함께 감옥에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도 있었다. 

4. 동역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이름도 다수이고,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한 (12절) 버시의 이름도 나오고 있다. 주님과 더불어 가는 길이지만 또한 주님 이외의 주를 닮아가는 동역자들이 옆에 있어서 그는 너무나도 행복했을 것 같다.

5. 바울의 수 많은 동역자들의 이름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나오지 않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있었을까? 복음을 듣고 사도 바울을 만났지만 오늘 나오는 명단에 나오는 이들과 다르게 복음을 간 보다가 혹은 바울에게 무엇인가를 얻어낼까 하여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도 있지 않을까?

6. 혹은 열심히 바울을 쫓아다니다가 다른 길로 혹은 유대교의 전통으로 돌아간 자들도 많지 않았을까? 바울이 특별히 더 많은 은혜를 베푼 사람의 명단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바울이 사랑하고 복음을 전했지만 유대교의 전통을 버리고 예수께로 돌아온 자들의 명단일 것이고, 또 그 중에서도 더욱 더 열심히 주를 섬긴 자들의 명단일 것이다. 

7. 누가 나의 진정한 동역자가 될지, 혹은 나는 누구의 진정한 동역자가 될지는 정말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서로 동역자가 되려거든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그 복음에 더욱 더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갈 2:20 상반절

8. 이러한 아름다운 동역자를 얻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살아가다보면 합당한 동역자들이 생기는 것이다. 누가 나의 동역자이며, 나는 누구의 동역자인가? 라는 질문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이 나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로마서 12장 11절 말씀과 같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9.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합당한 자들, 함께 그 길을 걷고 있는 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언젠가 나도 사도 바울과 같이 그 동역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할 날이 오기를 원한다. 하지만 오늘은 우리 가정을 위해 후원하고 기도하는 분들을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야겠다. 나도 그 분들께 합당하고 충분한 동역자가 되어야겠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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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6. 2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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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5:1-13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

1. 살면서 속상한 일이 생긴다. 오해를 받거나 내가 한 말에 대한 의도를 곡해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나에게도 그러한 일이 있다. 하지만 뭐 누구에게든 없으랴?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고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2. 죄로 인해 어그러진 세상에 사는 우리의 인생에서는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께서도 그런 비방을 당하셨고, 성경에서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음을 오늘 본문은 보여주고 있다. 

3. 사도바울은 시편 69:9를 인용해서 기록하고 있다.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사실 사도 바울도 수많은 비방과 오해를 받았고, 비방과 오해의 정점에는 그리스도께서 계셨다. 

4. 하지만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의 교훈을 주고 있다. 바로 4절 말씀이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성경의 인물들의 사건들과 그들이 경험한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교훈하시기 원하고, 우리가 인내하기를 원하시고 성경의 위로를 통해 소망을 가지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6. 그리스도의 인내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위로를 얻고 소망을 갖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5절을 보면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라고 말씀하고 있다. 

7.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에게 인내와 위로를 얻고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고, 성경의 인물들을 인도해나가신 하나님께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8. 어제 저녁에는 기도조차 나오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도 나가기 싫은 마음이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말씀묵상을 하며 다시 그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을 말씀 속에서 만나게 된다. 내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하시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그 상황을 설명하시고 위로하신다. 어찌 바울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9. 내가 한 올의 실타래도 풀 수 없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인내하고 소망을 잃지 말자.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께서 옆에 계시지 않은가? 먼저 걸어가고 계시지 않은가?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시 119:105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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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0. 6. 26.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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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4:13-23 사랑으로만 행하는 삶, 그리고 교회

1. 공동체 안에는 연약한 사람도 있고, 성숙한 사람도 있다. 내가 어느 쪽에 속했든지 간에.. 우리는 사랑으로 행하여야 한다 (15절). 사랑으로 행하여야 서로가 근심하거나 (15절) 비방하지 않게 된다 (16절).

2. 단순히 음식의 문제 뿐만이 아니다. 그것이 무슨 일이든지 사랑 없이 행하면 우리는 망하게 된다 (15절).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랑으로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19절) 이다. 

3. 결국은 사랑이 모든 문을 여는 열쇠이고, 사랑이 모든 관계를 여는 촉진제이며, 사랑이 모든 것을 회복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사랑으로만 행한다는 것은 우리에 매우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래야 하는 것을 알지만 그걸 해낼 힘은 없기 때문이다.

4. 연약한 자를 배려하는 것, 사실 이 마음이 없는 기독교를 기독교라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뛰어나고, 은사가 흘러 넘치는 사람들만의 교회는 교회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그 누구나 다 연약한 자의 자리에 있었던 자들이다.

5. 항상 성숙한 사람의 위치에 혹은 태어나자마자 성숙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대해야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섬겨야 한다. 

6. 그래서 17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의 희락이라” 먹고 마시는 그런 일상적인 일이 아니라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 안에서 사랑으로 서로를 세워나가는 의와 평강의 희락이다. 

7. 하나님 나라는 그런 곳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랑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서로 사랑하고 섬길 때 우리 안에 의와 평강의 희락이 넘치게 되고, 하나님 나라가 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8. 내 안에 사랑이 좀 더 흘러 넘쳤으면 좋겠다. 다른 이들을 대할 때 사랑으로만 대했으면 좋겠다. 조금 달라도, 조금 내 심기에 거슬려도, 의견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도 모두를 사랑으로 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 

9. 그리고 그런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성숙하고 은사가 흘러 넘치는 형제, 자매들 뿐만 아니라 연약하더라도 관심이 먹고 마시는 것일 뿐일지라도.. 기다려 주고, 사랑해줄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의 힘으로..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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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0. 6. 2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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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3:8-14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사랑 받아야 한다. 

1. 성경에서의 가장 핵심에 근접한 것은 아마도 ‘사랑’일 것이다. 하나님도 사랑이시고, 그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또 그 사랑으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온 땅을 회복하실 것이다.

2. 사도 바울도 오늘 그런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8절)

3. 예수님께서 율법을 두 가지로 요약 하셨는데,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에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면 실제로 율법을 다 이룬 것이 맞다. 이웃을 사랑한다면 10절 말씀처럼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을 것이기에 율법의 완성이 될 것이다.

4. 오늘 말씀에 비추어 볼때, 내 삶의 문제는 '사랑 없음’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나님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우상을 사랑하게 되고, 나를 사랑하게 되고, 죄를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5.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보다는 이해받고 싶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행하기 보다는 그 사람이 나를 위해 해줬으면 싶고 하는 삶의 태도가 있다. 결국은 사랑 없음의 문제이다. 

6. 사랑이란 감정은 억지로 생기지 않는다. 노력으로 생기지도 않는다. 사랑이란 감정은 사랑 받을 때에만, 내가 사랑을 받고 있다고 깨달을 때에만 생긴다. 내가 사랑받고, 용납받고, 이해받고, 용서 받았다는 그 사실이 나로 하여금 사랑하게 한다.

7. 주변에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많다. 사실 모두가 사랑해야 할 대상들이다. 특별히 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우리 개척 팀 멤버들, 그리고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후원자들과 묵상을 나눔하는 사랑하는 동역자들, 그리고 나와 다른 이해관계에 서 있거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 태국의 영혼들.. 모두 사랑해야 한다. 

8. 그러기 위해서 내가 가장 많이 사랑 받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음을, 나를 사랑하셨고, 용서하셨고, 용납하셨음을.. 그 복음의 진리가 내 삶에서 더 이해되어지고, 깨달아져서 내 마음이 풍성해지고, 내 마음이 넓어져서 다른 사람들을 품을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내 안에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 가득 차서 다른 이들을 위해 흘러 넘치게 되기를 원한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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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0. 6. 23.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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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3:1-7 존중하지만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도록 할 것

1. 오늘 본문은 위의 권세에 복종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1절). 그 이유는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났음이다 (1절). 

2. 그리고 오늘 본문은 세금과 관세를 받치라고 말하고 있다 (7절). 하나님이 세우신 권세, 하나님이 세우신 국가에 대해 우리가 지고 있는 의무는 반드시 하라는 이야기이다. 

3. 이런 본문을 묵상하다보면 삐뚤어진 마음이 든다. 적절하지 않은 권력, 부패한 권력에도 우리가 그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착취와 불법을 바라보아야만 하는가?

4. 7절은 조금 숨통을 튀여준다.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NIV 번역에는 “if respect, then respect; if honor, then honor.” 라고 번역하고 있다. 

5. 그들이 우리가 존경하고, 명예를 줘야 할 자라면 줘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불의를 저지르고, 가난한 자들과 연약한 자들을 핍박하는 자들이라면 그들에게 어떤 존경도 명예도 줄 이유가 없다. 

6. 우리는 권세를 가진자에게 우리의 의무를 다해야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자의로 사용하거나 오용할 때에는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존경과 명예를 줄 필요가 없고, 때로는 맞서야만 한다. 그것을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다.

7. 완전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까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혼란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써 세상과 정부, 조직들을 보며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의무를 먼저 다 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 권세를 잘못 사용할 때에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의와 공의가 이 땅에 실현될 수 있도록 일어서야 한다. 

8. 여기까지 묵상을 하면서 마음이 점점 불편해졌다. 구한말에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와서 이 땅에 그리스도의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도록 많은 일을 하셨다. 노비들을 복음 안에서 자유를 얻게 하셨고 차별받던 여자들을 교육받도록 하셨다. 지금 내가 태국에서 정부를 존중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정의와 공의가 이 땅에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이미 많은 부분 나아졌지만 여전히 많은데.. 내가 어떤 부분을 섬겨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9. 미혼모들과 그의 자녀들에게 관심이 있다. 가난 속에서 공부하거나 일을 하는 청년들에게 관심이 있다. 앞으로 내 삶 속에서 이러한 부분들이 어떻게 세워져 가는지 계속해서 보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관심 뿐이다. 우리가 세워가는 교회가 이러한 사람들을 품을 수 있으면 좋겠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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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0. 6. 2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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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2:9-21 그리스도께 있는 선으로 내 삶의 악을 이기라

1.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이 떠오르게 한다.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들을 죽거나 다치게 혹은 그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서 배척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그들은 오늘 말씀과 같이 일상을 살았다.

2.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고 (10절), 부지런하여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겼고 (11절),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기도에 항상 힘썼고 (12절)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고 손님 대접하기에 힘썼다 (13절)

3.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14절),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었다 (14절) 사도 바울은 힘든 박해의 상황 가운데 있는 신자들에게 이런 권고를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성도들은 어떻게 또 이 권고에 순종할 수 있었을까?

4. 아마도 그 이유는 19절이 아닐까 싶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5. 상대방이 어떠하든지, 나를 박해하고 힘들게 하는 자가 어떠하든지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의 공의를 따라 갚으시겠다는 것이다. 사실 매우 순종하기에 어려운 말씀이다. 

6.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든지 보복하고 싶은게 나의 심리이다. 그것이 직접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든지, 아니면 뒤에서 그 사람에 대해 험단만 하는 것이든지.. 아니면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계속 말하는 것이든지.. 나는 나의 정당성을 자꾸만 방어하려고 한다.

7. 하지만 그런 모습은 ‘악에게 지는 모습이다’ 성경은 21절에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라고 말씀하고 있다. 선으로 악을 이기려면 파도 파도 죄만 나오는 내 자신이 아니라 오직 선하신 하나님께 의탁하는 수 밖에 없다. 

8. 그 분이 나를 위해 일하시고, 오해를 풀어주시를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그들에게 선과 사랑을 베푸는 일을 하는 것이다. 마치 초대교회 성도들 처럼 말이다. 이러한 방식의 삶은 쉽지 않다. 하지만 주님이 우리를 위해 이렇게 죽으시지 않았는가? 주님이 우리를 위해 모든 오해와 정죄를 받고 죽으시지 않았는가? 

9. 그렇다면 Christian (예수쟁이)의 삶도 그래야하지 않을까? 은혜를 받은대로 은혜를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 내 안에 받은 참된 사랑이 내 삶으로 드러나기를 원한다. 물론 어렵고 하기 싫다. ‘왜 나만?’이란 생각도 수시로 떠오른다. 그래도 주님이 나를 아시니.. 주님이 내 모든 상황을 아시니 그 분께 의탁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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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6. 19.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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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1:13-24 사람을 세워가고, 복음을 더 깊이 배울 수 있도록 준비하는 삶

1. 사도 바울은 율법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 출신이다. 그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어도 (13절) 그는 여전히 자신의 동족들에 대해서 긍휼히 여기고, 그들에게도 이 복음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2.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민족이란 개념이 이스라엘에 비해서는 많이 다르겠지만 결국 그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같은 민족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실제로 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다. 

3. 같은 언어, 같은 문화가 주는 편안함과 자연스러운 대화, 친구가 되어줌을 통해서 그들의 마음을 얻는 것 등 어느 하나 외국인이 더 잘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실제로 어제 들은 연구 결과도 동일한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4. 태국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된 이유를 연구한 결과를 어제 제자 훈련을 하는 미국 선교사님을 통해 들었다. Dwight Martin이란 태국 mk출신 학자가 연구한 결과인데, 선교사를 통해서 회심한 비율이 6%, 태국 목사님을 통해서 회심한 비율이 24%, 그리고 친구나 주변의 신자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회심한 비율이 70%라고 한다. 

5. 선교사로써 태국의 영혼들을 위해 선교사가 조금 더 우선순위를 가지고 집중해야 할 일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태국 목회자들을 세우고 성도들을 잘 양육하여 그들로 하여금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해야 하는 것임을 한 번 더 깨달았다. 

6. 물론 저 결과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다. 선교사는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그리고 외국인으로써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다르다. 

7. 선교사와 태국의 목사님, 성도들의 할 일과 역할은 다르지만 우리의 목적은 같다. 함께 영혼들을 섬겨 이 태국의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도록 하는 일이다. 

8. 선교사로써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좀 더 고민하게 된다. 내가 잘하는 것과 태국의 환경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나는 함께 교회를 개척하면서 어떻게 이 영혼들을 섬기고 세워나가야 할지를 더 고민하며 기도하자. 

9. 이들로 하여금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더 격려하고, 먼저는 복음의 감격이 그들 안에 가득할 수 있도록 복음을 더 깊이 배우고 알 수 있도록 삶의 모든 영역에서 복음을 적용할 수 있도록 말씀을 준비하자.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그러한 본을 보일 수 있는 주님 앞에 선 사람이 되도록 더 준비되자. 하나님이 사도바울처럼 그들의 동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사용하실 것이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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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6. 1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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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1:1-12 모든 영역에서 은혜로

1.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실 수 없다. (1절).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는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버리는 것이다. 

2. 모든 것이 끝나 버리고 나 혼자 남아 있는 것 같은 그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를 남겨두셨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의 의지로 자신을 지켜 남은 자가 된 것이 아니다.

3. 우리를 결코 버리시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셨기 때문에 (5절) 남은 자가 된 것이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은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6절)

4. 우리가 잘나서, 우리가 잘해서, 즉 우리의 행위로 우리가 남은 자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하는 행동이다. 

5. 내가 잘했든, 잘 못 했든 내 행위와 상관없이 은혜로 택하심을 입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하나님의 백성 됨도 변할 수 없다. 은혜로 되었기 때문이다. 

6. 교회 개척을 준비하면서도 하나님께서 다 하셨다고 고백하였다. 그런데 그게 정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고백이었기 때문이다. 은혜로 되지 않은 것이 없었고, 내가 한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진심을 다해 고백할 수 있는 말이 ‘하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7. 그런데 정말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부분에서는 겸손하고 하나님을 인정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하나님을 그렇게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지식이 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뭔가 뻐길 것이 있는 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부분도 나는 하나님이 하셨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것이 은혜로 구원받은 믿는 자의 자세이다.

8. 내가 뭔가 잘해서 남은 자가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남은 자가 되었음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내가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영역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그래야만 겸손할 수 있고, 그래야만 다른 사람의 비판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복음이 내 삶에 적용되는 것이다.

9.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고전 15:10 이 고백이 내 삶에서도 모든 영역에서 드러나길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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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0. 6. 1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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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0:14-21 복음 ‘전함'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

1. 그 어느 누구도 듣지 않고 믿을 수 없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이다. 14절 말씀처럼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어떤 루트를 통해서든 들어야 우리는 믿음이 생길 수 있다. 즉 우리는 그 어느 누군가의 ‘전함’을 통해서 지금 믿는 자가 되어 있다. 

2. 그 누군가가 우리에게 이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15절은 또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이 복음을 전하러 가는 사람은 모두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3. 그것이 해외를 의미하는 것이든 우리 옆의 가족과 친구를 향한 것이든 우리 모두는 ‘전함’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고 우리가 ‘부르심’을 따라 이 복음을 ‘전할’ 때에 그들에게 믿음이 생긴다. 

4. 하나님은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나님 스스로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못할 일이 무엇인가? 없다.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이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부르셔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하셨다. 

5. 왜 복음 전파를 위해 우리를 부르셨는지는 모르겠다. 효과적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셨고, 나를 부르셨다. 듣지도 못한 자들을 위해 우리 가족을 태국으로 부르셨다. 

6. 태국의 영혼들은 190년 동안 여러가지 방법으로 복음을 들었다. 하지만 0.5%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복음에 반응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와서 190년 동안 전한 결과가 0.5%의 신자들이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선교사들이 여러 자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7.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이 효과적인 방법인지는 정말 모르겠다. 선교 사역에 있어서 ‘효과적’이라는 단어가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선교는 쏟아붓는 시간과 노력, 재정에 비해 사실 얻는 것이 적은 모양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듣지도 못한 이들을 위해 오늘도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이다. 효과적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영혼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8.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마 18:12-13

9. ‘전함’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는 효율성이 아니라 ‘한 영혼’을 위해 아낌없이 쏟아 붓는 자이다. 효율적이거나 효과적일 수 없을 때 그것을 고민하거나 아까워하지 말자. 전하는 자가 없으면 결코 믿을 수 없다. 전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전하는 일’에 충실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다. 효율성이 아니라 한 영혼을 사랑하는 오늘이 되자.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15절 하반부)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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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