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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4:1-12 믿음으로, 나는 정말 변하였는가? 

1. 이스라엘의 자랑은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할례를 표징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들과 이방인들을 구별하는 표였고, 자신들에게만 구원이 있게 하는 이유였다. 

2. 하지만 사도바울은 이를 처음부터 도전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게 하신 것이 할례 전이냐? 아니면 할례 후냐? 라고 논지를 전개한다 (10절). 아브라함 역시 무할례시에 의롭게 여겨졌다.

3. 그 또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 만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게 여기셨다 (3절). 그는 그 이후 할례 받은 자들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으나 그의 의로움의 근거는 할례가 아니라 믿음 뿐이었다 (11절). 

4. 믿음의 조상 또한 할례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여겨졌으니 지금의 우리도, 그 어느 누구라도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여기심을 받는다 (12절). 

5.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것을 행하셨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믿음이다. 믿음은 단순히 입술로만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의 마음이 변하는 것이다. 

6. 지금까지 섬기고 있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아직 보여주시지 않은 곳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변하여 내 말, 내 생각, 내 세계관 모두가 변하는 경험이 믿음이다. 마치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줄을 믿으며 제물로 드리려고 한 것과 같이 말이다. 

7. 믿음을 결코 쉬운 것으로 여길수 없다. 믿음은 입술의 고백과 같은 어떠한 한 행동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전 존재적인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어야 그 믿음이 ‘의’로 여겨진다. 

8. 믿음이 쉬운 것으로 생각하고, 편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저 입술로만 고백하면 된다고 단순화 시키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진정한 믿음’이 희귀한 시대일지도 모른다. 정치적으로 편향되고, 내 생각으로 하나님을 재단하고, 예수 보다도 다른 것을 더 믿으면서도 예수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이 때로는 ‘나의 믿음’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9.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이렇게 연약한 나의 믿음도 주님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약한 믿음도 하나님께서 ‘의’로 여겨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가? 믿음을 통해 더 내 존재와 생각과 삶이 변하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주여 내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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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3:21-31 믿음의 법 

1. 절망의 끝에는 희망이 있다. 율법으로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없었던 우리에게 새로운 한 ‘의'가 나타났다. 이 ‘의'는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 증거를 받은 (예언된) ‘의'였다 (21절). 

2. 이 ‘의'는 바로 그리스도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계속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믿음의 법’ (27절)이라고 까지 표현하고 있다. 믿음이 왜 이렇게 중요한 것일까? 왜 새로운 희망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중요할까?

3. 예수께서는 그의 피로써 ‘화목제물’이 되셨다 (25절). 레위기 3장에 화목제 규례가 나온다. 화목제는 제물을 남김없이 다 태워서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로 드리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산채로 태워서 드릴 수 있는가?혹은 매번 제물을 사서 하나님께 화목제로 드릴 수 있는가? 

4. 죄로 가득찬 절망적인 우리의 상황에서 계속 제물의 제사를 드리는 것을 우리는 재정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절대로 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믿음의 법’을 주신 것이다.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 분이 영원한 제물로 단번에 드려짐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5. 율법의 방법으로 불가능 했던 약속이 믿음의 법으로 가능해졌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 분의 백성이, 자녀가 되었다. 단순히 어느 순간 갑자기 믿음이 중요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의 법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믿음이 중요해진 것이다. 율법이 중요했던 시대에 율법을 중요하게 여긴 바와 같이 믿음이 중요해졌기 때문에 믿음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다. 

6. 율법을 통해서 내가 의롭기 위해 도무지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로 믿음을 통해 (by grace, through faith)서만 얻는 것이다 . 

7.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잘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잘 알기 위해서는 그 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8. 주변의 많은 소리들이 있다. 그 분의 말씀도 있지만 다른 많은 소리들 중에 살고 있다. 오늘 어떤 소리를 들을 것인가? 어떤 말씀을 들을 것인가? 믿음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나는 나의 믿음의 성장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자녀들의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 태국의 형제, 자매들의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 어떤 소리를 낼 것인가?

9. 깊은 고민과 더불어 내 안에서 복음의 소리, 말씀의 소리가 나오길 원한다. 내가 먼저 충만한 믿음으로 서서 믿음의 소리를 내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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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3:1-20 나는 죄인이다

1. 율법은 율법의 기능이 있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한다 (20절).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죄가 아닌지를 우리한테 설명해 주는 기능을 하는 것이지, 우리를 결코 죄에서 건져낼 수는 없다.

2. 이 율법에 따르면 우리 모드는 죄인일 뿐이다. 9절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율법을 가졌던 유대인도, 율법이 없었던 헬라인으로 대표되는 이방인도 다 죄 아래 있다. 

3. 어제 아내와 ‘신과 함께’라는 영화를 보았다. 불교적인 세계관에 따르고 있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우리 모두가 죄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각 지옥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있고, ‘귀인’ 조차도 환생하기 위해서 7개의 지옥을 돌면서 숨겨진 죄들을 다 꺼내어 심판받는다. 그런데 그게 영화가 아니라 실제 현실이라는게 무서운 일이다. 어느 착한 사람도 그들 안에 있는 죄를 피할 수 없었다. 

4. 실제로 우리의 삶이 그렇다. 죄인이다. 귀인이든 누구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는 그 누구도 우리의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10절에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고 말씀한다. 우리는 우리의 죄로 말미암이 심판을 받게 되어 있다. 

5. 로마서의 전반부를 읽노라면 ‘절망’ 그 이외의 어떤 감정도 느낄 수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깨닫지도 못하고 (10절) 찾지도 못하는 (11절) 그 처절한 ‘절망’을 온전히 느껴야만 나의 무력함을 깨닫고 그리고 나서야 참 소망을 찾게 되는 것이다. 

6. 결코 나에게서 어떤 선한 것도 나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은혜이다. 나로부터 어떤 구원의 능력도 실마리도 나올 수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구원을 선물로 받는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7. 죄인이다. 부인할 수 없는 죄인일 뿐이다. 하나님의 값없는 사랑을 선물로 받기에도 합당하지 못한 죄인이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 은혜에 의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려 주셨다. 내가 값을 치룰수 없는 큰 은혜를 값 없이 주셨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를 위해 허비하셨고, 그 그리스도의 생명이 이제 나의 생명이 되었다. 

8. 팀 켈러의 말이 맞다. “나는 내가 감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한 죄인이고 허물 많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감히 바랐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용납되었습니다” 내 존재에 대해서, 내가 받은 사랑에 대해서 잊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품어주는 오늘 하루를 살고 싶다. 순간 순간 터져나오는 내 감정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겨내자.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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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0. 5. 2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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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18-32 참 질서, 참 거룩 예수 그리스도

1. 누군가가 혹은 어디 책에서 읽은 듯 한데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사랑도, 미움도 관심이 있는 동안에만 유효하다. 관심이 없으면 그가 뭘하든 내 알바 아니다. 

2.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내버려 두셨다’라고 두 번이나 표현하고 있다 (26절, 28절). 왜 내버려 두셨는가? 그 이유는 25절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심김이라” 

3. 왜 바꾸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힘들어서이지 않았을까? 하나님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그 무엇인가가 더 사랑스럽고 좋게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우상은 항상 좋은 것을 절대적인 자리에 둘 때 발생된다. 하나님 한 분만이 절대적인 분이신데 다른 것을 그 절대자의 자리에 놓을 때, 우리는 그 무질서를 경험하게 된다. 

4. 하나님은 샬롬이시다. '여호와 샬롬' 샬롬 (평안)은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평안이다. 인간의 삶에 샬롬이 없는 이유는 바로 25절의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리에 피조물을 두고 섬기고 있기 때문에 평안을 누릴 수 없게 된 것이다. 즉 여호와 샬롬이신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무질서를 경험하게 된다. 

5. 우리는 그래서 절대자의 결핍과 평안의 결핍 속에서 악순환을 반복한다. 질서로 평안으로 돌아가기 보다는 자꾸만 다른 결핍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이것이 ‘내버려 두셨다’라는 뜻이라고 생각된다. 완벽하고 온전하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결핍된 존재로의 나의 믿음을 계속해서 옮기고 실망하고, 또 옮기고 실망하고를 반복하는 것…

6.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무질서(disorder)를 바로잡기 위해서 자신이 직접 오셨다. 이 무질서 속으로 질서 그 자체이신 분이 오셨다. 이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더 이상 하나님은 우리를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다. 오셔서 우리에게 새로운 질서와 하나님 나라를 말씀해주셨다. 

7. 보통 무질서와 질서가 만나면 무질서로 간다. 레위기에 따르면 거룩한 것이 부정한 것을 만나면 부정해진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회복시키신다. 질서(Order)이신 그 분께서 무질서(disorder) 속으로 들어오셔서 무질서를 질서로 만드신다. 거룩이신 그 분께서 오셔서 모든 부정한 것들을 거룩하게 만드신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고 모든 만물의 회복이다. 

8. 오늘 내 삶으로 참 질서이신, 참 거룩이신 그 분을 초청한다. 내 삶에 얼마나 많은 무질서들과 가짜 평안이 판을 치고 있었는가? 그 분이 오셔야 해결된다. 그 분이 오셔야 나의 이 혼잡한 상황들이 질서로 변하게 된다. 그 분이 오셔야 나의 불경건함이 거룩하게 된다. 그 분이 내 삶 가운데 임재하시기 원한다.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지친 우리 부부의 마음 가운데.. 홀로 그 누구보다 복작거리는 마음 가운데 있는 요엘이에게도.. 참 질서이신 그 분께서 임재하여주시기 원한다. 

9. 나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를 받아주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기 원한다. 이 복음이 내 삶에서 열매 맺기를.. 이 복음이 내 삶에서 열매로 나타나기를..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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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0. 5. 2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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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1-17 복음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삶

1.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2.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 (17절). 왜냐하면 복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우리 스스로가 의롭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가 의로울 수 없기 때문에 외부로 부터 오는 좋은 소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좋은 소식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구원자가 계시다는 사실이다. 

3. 내가 내 힘으로 나를 구원할 수 없고, 내가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에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복음 (구원자)이 필요하다. 그런데 나는 절망적인데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구원자가 없다면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충격적이겠는가? 

4.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완전한 절망의 상황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기독교가 죽어서 가는 천국을 설명하는 혹은 이 땅에서의 힘듦을 신앙으로 이기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독교를 단순히 어느 철학이나 세계 3대 종교 정도로 치부해 버린다. 

5. 바울의 고백대로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우리의 완전한 절망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완전한 소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분을 믿는 것 외에는 어떠한 회복의 소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구원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6. 내가 할 수 없는 죄의 무게를 십자가에서 다 담당하셨고,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임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이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7. 매일의 삶 속에서 참 많은 이유들로 속이 상하고 좌절하고 나의 모습에 절망한다. 내가 필요한 것 역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16절) 곧 복음이다. 나의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어주신 하나님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8. 그리고 그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삶이 필요하다.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살아가려는 삶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는 삶이다. 그 분께서 나를 사랑하여 주셔서 아들을 나 대신 죽게 하신 그 사랑 안에서 사는 것이다. 또한 그 하나님의 의가 내 삶에 드러나서 이제는 나 또한 이전의 삶의 모양이 아니라 의의 열매를 맺어가는 그런 삶이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이다. 

9. 강명식 씨의 찬양 ‘승리’처럼 오직 주님만 따라 가는 것, 오직 주님께서만 말씀하게 하시는 것, 주님만 내 안에 하시게 하는 것,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이다. 부족하더라도, 넘어지더라도,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살아가보자.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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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0. 5. 2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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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66:1-24 하나님의 영광이 나의 삶에 임하시길..

1.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동기는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오늘 이사야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절정으로 치닫는 이사야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영광을 말씀하신다. 

2. 18절에 ‘내가 그들의 행위와 사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악함을 아신다. 

3. 하지만 때가 되면 언어와 문화가 다른 민족들을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그 분의 영광을 보며 즐거워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지막 날을 고대하고 계시고, 우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4. 1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나의 명성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5. 이 때가 이르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기적보다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용하신다.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녀들이 그 분의 영광을 위해 다른 이들에게 나아가 그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을 ‘전도’ 혹은 ‘선교’라고 부른다. 

6. 내가 먼저 그 영광을 보아야만 먼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내가 먼저 그 영광을 보아야만 다른 이들에게 그 영광을 전할 수 있다. 나는 그 영광을 알고, 또 보고 있는가? 

7. 요즈음 슬럼프라는 생각이 든다. 좀 의욕이 떨어지고 무엇인가 손에 잘 잡히지 않고, 몸도 마음도 무겁다. 태국어 성경을 읽는 것도 힘들고, 쉽게 짜증이 나고 쉽게 지친다. 나 스스로가 알았기에 어제 아내와도 좀 나누었다. 뭔가 쉼과 평안 은혜가 필요한 시기이다. 감정의 탱크도 비워져야 한다. 요엘이 온라인 수업으로 인해 감정의 탱크가 너무 무겁다. 

8. 지금 내가 경험해야 할 것이 그 분의 영광이 아닐까? 그 분의 아름다움과 그 분의 거룩함을 경험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야만 나도 이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또 다시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잠깐 쉰다고, 혹은 지금 잠깐 즐거운 것을 한다고 이 마음이 회복되지 않음을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오늘이 되길… 이미 요엘이랑 한바탕 하고 나서 마음이 쉽지는 않지만…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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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0. 5. 25.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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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64:1-12 나도 그의 백성, 그들도 그의 백성

1. 이사야는 주님께서 하늘을 가르고 산들이 진동하며 불로 임하시길 간구한다 (1-2절).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주를 알게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임하시지 아니하신다. 

2.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습의 강림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의 집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강림하신다. 이사야가 했던 생각 나도 수없이 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짠 하고 나타나시면 공중에서 음성만 들려주시면 모든 이들이 다 믿지 않겠는가? 심지어 우리 아이들도 동일한 질문들을 하더라.

3.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의 성전과 집이 불에 타고,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나타나지 그러한 세상이 놀랄만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온 세상에 그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택하셨던 이스라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자들이 바로 ‘주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9절). 

4. 8절에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이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를 그렇게 지으셨다. 

5.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기에 그렇게 나타나셔서 심판하는 모습으로 오지 않으셨고, 작고 연약한 아이의 모습으로 대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는 어린양의 모습으로 오셨다. 우리가 그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6. 이사야의 기도대로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오셨으면 우리 이방인들은 어찌 되었을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때로는 이사야 같은 선지자의 기도에도 응답하지 않으신다.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응답하실 수 없는 것이다. 

7. 내가 기대하기에 옳다고, 내가 생각하기에 좋다고 나의 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려는 기도의 모습은 옳지 않다. 하나님의 성품 속에서 응답이 오는 것은 감사하고, 그렇지 않은 것 (No, 혹은 Wait) 모두 또한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 이사야의 기도에 대한 No의 응답이 지금의 우리와 교회를 있게 한 것이 아닌가? 그저 기도하고, 기다리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자. 우리는 다 그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8. 나도 그의 백성, 그들도 그의 백성이라는 생각이 내 생각과 태도를 바꿀 수 있다. 나의 기도도 바꿀 수 있다. 다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때로는 참 쉽지 않다. 특히나 나를 힘들게 하거나 나를 어렵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지가 않다. 

9.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나도, 그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이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이 정신은 또한 예수께서 요약하신 율법의 두 번째 계명 아닌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오늘도 누가 나의 이웃인가? 누가 그의 백성인가? 누가 나와 같은 그의 백성인가? 사랑함으로, 감사함으로 그렇게 걸어가자. 다 이해되지 않더라도, 다 깨닫지 못하더라도..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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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5. 2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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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61:1-11 장자,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만 따라가기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목적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만 선택 하셔서 그들만 구원받은 그런 그림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다른 모든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그래서 출애굽기에서도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출 19:5-6), 오늘 본문에서도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부른다 (6절). 

2. 제사장의 역할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속죄의 제사를 돕는 것이다. 레위기에 나오는 그 방법대로, 각 제사의 방법에 따라서 죄인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3. 또한 이스라엘은 장자의 나라였다. 7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갑절이나 얻는다고 하는데,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부모의 유산을 받을 때 ‘자녀의 수’에 1을 더 하여 나누었다. 왜냐하면 장자는 다른 형제들의 두 배를 받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또한 하나님께서 땅에서 갑절을 얻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장자는 이러한 권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이 이 장자권을 따라서 내려가야 한다. 

4.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셨던 그 언약 창 12장의 그 언약이다. '너는 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복은 그들만을 향한 복이 아니라 온 민족을 향한 복이었다. You will be a blessing to bless all nations. 하지만 이스라엘은 제사장의 역할도, 장자의 역할도 하지 못했다. 그들의 죄 문제 또한 어떻게 하지 못했고, 그들은 이방의 신들을 섬기며, 가나안의 신들을 섬기며 그렇게 자신을 불러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잃어갔다.  

5. 오늘 본문 1절에서 3절은 매우 유명한 구절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읽은 구절이기도 하다. 이렇게 사명을 잃어버린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영이 임한, 기름을 부음을 받은 한 존재가 나타나 모든 가난한 것을 회복시키시고, 자유와 놓임을 선포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 일을 하셨다. 

6. 예수께서 오셔서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4절)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회복시키셨다. 우리만을 위해서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스라엘도 실패했고, 우리도 실패하고 있다. 이스라엘도 우리도 제사장의 역할도 장자의 역할도 감당치 못하는 자이며, 그 복을 열방에 전하는 것이 늘 어려운 사람들이다. 

7. 하지만 이스라엘도 우리도 실패했지만 하나님의 외아들,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실패하지 않으셨다. 그 분이 이미 다 이루셨다. 모든 값을 지불하셨다 (요 19:30). 그래서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열방을 위한 복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그 분이 이루신 말씀을 통해 부족하지만 복이 될 수 있다. 

8. 내가 복을 받을 거란 말은 좋다. 하지만 복이 되라는 말은 쉽지도 않고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나 홀로 알아서 복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보여주신 본을 따라가면 우리는 결국 열방을 향한 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복이 이미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하시며 ‘임마누엘’의 약속을 주셨다. 그리고 그 분의 영 성령 또한 우리 가운데 주셨다. 그 발자국을 따라 가면 되는 것이다. 

9. 나는 이미 +1의 몫을 더 받은 사람이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복이 되기 위해 이 태국 땅에서 살아가면서도 그 복의 근원 되시는 예수님의 뒤를 쫓아가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요엘이 온라인 수업 하나 돌봐주는 것도 버겁고, 계속해서 화를 내게 된다. 묵상을 하는 도중에도 그렇다. 심한 자괴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오늘도 결코 실패하지 않으시는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예수를 깊이 바라보는 내가 되기 원한다. 그 분의 삶을 단 한 절이라도 닮아가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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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5. 2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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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59:1-21 하나님이 다 하셨다. 그리고 나는?

1.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이유는 '여호와의 손이 짧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1절) 하나님께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2. 바로 우리에게 문제가 있어서이다.’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결국은 죄의 문제이다. 

3. 우리는 정의와 공의를 바라지만 그 죄의 문제는 정의와 공의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11절). 죄는 우리의 모든 것을 망쳤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인간 사이의 관계도 (정의와 공의) 다 망쳐졌다. 

4. 문제의 해결점은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내가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애쓴다고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인간사이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다. 죄의 문제는 그만큼 심각하다. 

5.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20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6.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신다. 그리고 그 언약을 지키신다. 그게 문제의 해결의 시작이다. 그 분이 그 언약을 지키시고, 하나님의 영을 우리 위에,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입에 두신다. 그것도 영원히… 그리고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서 이 땅으로 오신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오셨다. 

7. 예수님의 승천 후 약속대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셨다. 그렇게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는 하나님의 주도적 역할로 회복되었다.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정의와 공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물론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기에 하신다 (15-18절)

8.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우리를 통해 하실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봄으로 인해서 정의와 공의를 실천해야 한다. 내가 값없이 용납받은 용납받은 자임을 알고 다른 이들을 겸손히 용납하며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9. 어제 코로나 사태로 일할 수 없어 먹고 살기가 힘든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들을 나눠주었다 (쌀, 계란, 우유, 라면 등등). 많지 않은 물건들이었지만 그들의 필요가 채워지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물론 선교에서 무조건적으로 물질적으로 퍼주는 일은 전략적으로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공의와 정의가 사랑과 함께 선포되어야 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 아닌가? 그들의 영적인 필요와 함께 육적인 필요도 중요한 것이 아닌가? 코로나 사태로 인해 그간 강조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뿐만 아니라 공의와 정의도 함께 전해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10. 오늘도 샬롬 

P.S 어제 기도해주셔서 감사해요.. 사진 한장 첨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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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0. 5. 1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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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58:1-14 진정한 금식

1. 진정한 금식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진정한 금식은 ‘나의 목소리를 하나님께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4절). 밥을 굶고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머리를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이 금식이 아니다 (5절).

2.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6, 7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단순히 밥을 굶고 내 뜻을 하나님께 어필하여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이 땅에 실현되도록 나를 내어놓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4. 내가 드러나고, 내가 높아지는 것, 내 뜻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눈은 아프고 상하고, 이 땅에서 연약하고 온전하지 못한 자들을 향해 있다. 하나님의 구원은 영적인 것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의 실현이기도 하다. 

5.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태국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 일용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태국에서 계속된 락다운(Lock down)과 폐쇄조치는 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고, 교회들이 여러가지 모습으로 돕고 있다. 

6. 진정한 금식에 대해 묵상하게 하신 오늘, 개척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 팀에서도 이런 필요 속에 있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으로 쌀과 계란, 우유, 생필품을 함께 나눠주기 위해서 간다 (한국 시간 오후 2시 기도해주세요!). 감사하게도 약 100가정에게 줄 수 있는 물품들이 준비되었다. 아마도 가면 부족할 것이고, 더 많은 필요가 보일 것이다. 

7. 우리가 세워갈 교회가 이 태국의 영적인 갈급함을 채우며, 또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이 땅에 나타나도록 움직이는 그런 교회가 되기 원한다. 

8. 마찬가지로 나의 삶도 나의 목소리를 하나님께 어필하려고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하는 자가 되기 원한다. 이 땅의 영적인 부요함 뿐만 아니라 태생적 계급과 부와 민족적 집단으로 발생되는 억압과 착취가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 회복되는 일에 내 삶을 계속해서 드리기를 원한다. 진정한 금식이 내 삶에서 열매 맺기 원한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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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