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19. 8. 1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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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8:1-15 먼저 나를 드리고, 주님의 뜻을 쫓아가기

1.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들의 헌금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5절)

2. 헌금은 먼저 나를 주님께 드리는 행동이다. 내가 주님께 드려지지 못하면 그 헌금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드러내려고 하는 헌금, 내가 그들에게 권위를 가져서 내 마음대로 하려는 생각들로 하는 것이 헌금이 아니다. 

3. 사역도 선교도 마찬가지이다. 결국은 나를 먼저 주님께 드리고,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를 그들에게 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내가 먼저 주님께 드려지지 않고 행해지는 어떠한 헌금이나 사역도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먼저 주님께 드려져야 한다. 

4. 그 다음이 나를 주님의 뜻에 따라 그들에게 주는 것이다. 많은 순간 이 순서가 바뀔 때가 얼마나 많은가? 주님과 충분히 만나고, 주님의 뜻을 따라 하기 보다는, 사역을 위해서 나를 주님께 드리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사역을 위해 억지로 말씀보고 기도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5. 가식을 버리고, 거짓을 버리고, 내가 하나님 앞에 먼저 서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6.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하기 원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내가 하기 원하시는지, 하나님께서 지금 어떠한 인도하심을 보이시는지가 더 중요하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싶다. 

7. 이제 우리 가정의 사역 방향에 있어 중요한 이야기를 앞두고 있다. 내일 만나서 함께 이야기 하려고 한다. 서로 오해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에게 축복해줄 수 있는 시간이 되기 원한다. 나를 먼저 주님께 드리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싶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리고의 이야기 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우리를 드리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쫓아갈 수 있는지를 이야기 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한다.

8. 저희 가정을 위해서 특별히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쫓아 가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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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19. 8. 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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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7:2-16 함께 죽고, 함께 살려고 하는 말

1.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할 말을 했다. 그들을 근심할 수 밖에 없게 하는 편지를 보냈다 (8절). 이 편지는 아마도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내용으로 여겨진다. 

2. 사도 바울이라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마음에 쉽지 않은 이야기들을 해야 하는 것이 쉬웠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8절에 보면 편지를 보낸 것을 후회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도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필요한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3. 아마도 그 마음은 3절에서 읽을 수 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4. 바울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어려운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도 바울이 바로 그들과 함께 죽고, 함께 살려고 했기 때문이다. 

5. 내 마음 속에 다른 사람의 잘못은 쉬이 보이고, 쉬이 지적할 수 있지만 내 안에 그를 위해 함께 죽고, 함께 살겠다는 마음이 정말로 있었던가? 내가 그를 지적하는 것은 내가 그보다 옳아 보이고, 내가 드러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어떤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허물을 이야기 해야 하는가?

6.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늘 한다.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내가 그들과 함께 죽고, 함께 살려는 마음으로 지적한다면 그들도 내 진심을 결국은 알게 될 것이다. 진심 없이, 같이 죽고자 하는 마음 없이 쉽게 지적하지 말자.

7. 아이들에게 쉽게 내뱉는 말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가? 또한 곧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나는 정말로 같이 죽고, 같이 살고자 하는가? 아니면 그는 틀렸고, 나는 옳았다고 말하고 싶은가? 

8. 내 삶이, 내 태도가, 내 마음이 아이들을 향해, 그들을 향해 위로와 격려가 되도록, 나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 마음에 합하며, 그들과 한 몸을 이루어 같이 죽고, 같이 사는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9. 두렵지만 오늘도 내가 진심으로 말할 수 있도록…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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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19. 8. 1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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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6:14-7:1 약속을 받은 자로써의 합당한 삶, 거룩함

1.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아닌 것은 빛과 어둠의 차이이다. 글자로 보면 빛, 어둠 단순해 보이지만 이것은 절대로 함께 할 수 없는 속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빛은 결코 어둠이 함께 할 수 없다.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사라진다. 

2.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은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차이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고 하셨고, 우리를 그의 자녀로 삼아주신다고 하셨다 (16, 18절). 그런데 우상은 우리를 지배하려고 하고, 우리의 자유를 구속하고, 우리를 파괴하려고 한다. 

3. 우상은 사탕과 같다. 달콤하지만 이빨을 썩게 한다. 달콤하지만 우리를 질서에서 무질서로 초청한다. 

4. 사도바울은 7:1절에서 우리를 초청한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려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5. 우리는 약속을 가진 자들이다. 그 약속이 빛의 약속이다. 세상의 창조주이시고, 왕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어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와 더불어 우리를 아들로, 딸로 불러주셨다. 이 약속보다 더 큰 것이 무엇이 있을까? 아빠 능력으로, 아빠 권세로 우리는 이 땅을 살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온 세상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이다. 능력의 아버지께서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6. 이 약속을 가진 자들의 삶은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가는 것이다. 이 세상의 법과 이 세상의 가치를 따르지 아니하고, 아버지의 가치를 따르는 자들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고 말씀하신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다. 

7. 약속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순종할 수 있다. 약속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탕의 유혹을 버릴 수 있다. 약속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말씀을 읽고, 공동체로 모이고, 서로의 삶을 나눌 수 있다. 약속이 있기 때문에.. 그 약속 때문에…

8. 우리가 약속을 달라고 요청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우리에게 그 약속이 주어졌다. 내가 어떻게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어떠함 때문에 주어진 약속이다. 그래서 약속을 주신 분이 그 약속을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이루실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 분의 약속을 받은 자로써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주님의 신부로 거룩함을 지키며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이다.

9. 오늘도 거룩함을 내 삶에서, 내 마음에서, 내 생각에서, 내 눈에서 지키길 원한다. 그 약속을 붙들고, 그 사랑을 붙들고, 자녀로써 신부로써…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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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19. 8. 1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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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5:11-21 내가 그 안에 그가 내 안에

1. 우리의 인생은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가? 바울은 우리의 인생이 이제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들의 삶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대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15절). 

2. 결국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 복음이 우리 안에 실제가 되지 못하면 우리는 다시 복음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살게 된다. 복음을 가졌음에도, 복음을 이해하고, 믿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복음과 관계없이 ‘나’를 위해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절망적이다. 

3. 하지만 이러한 우리들에게 사도 바울은 새로운 선언을 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새로운 존재가 된다. 그리스도의 새 창조가 우리 안에서 일어난다. 

4. 이 새 창조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만 우리의 인생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복음이 우리에게 주어졌지만 단순히 이해하는 차원에서, 단순히 아는 차원에서만 머물면 우리의 삶에 새로운 창조는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복음은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5. 오늘도 나의 삶은 누구를 위한 삶인가? 매우 많은 순간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내 삶은 나를 위해서 살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임을 잊지 말자. 

6.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삶, 그 삶을 살아내려면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한다. 

7. 잊지 말자. 나는 그 분 안에 있다. 나는 그 분 안에, 그 분은 내 안에 있다. 

8.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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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19. 8. 10.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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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5:1-10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1. 나는 이 땅에 내 집이 없다. 한국에서도 남의 집에서, 태국에서도 남의 집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하늘에 나의 영원한 집이 있다고 한다. 복음이다.

2. 영원히 살 것 처럼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집 한 채도 없는 나에게, 정말로 영원한 그 곳에서 내가 머물 집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집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다 (1절).

3. 완벽하다. 월세, 전세 하지 않아도 되는 하늘에 있는 나의 집으로 어서 가고 싶다.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권하는 것은 지금 당장 그 집으로 가라는 것이 아니다.

4.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9절)

5. 빨리 가야만 할 것 같은데 그리고 8절에서 보면 그도 정말 가고 싶어 했는데, 왜 사도 바울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 위해 힘쓴다고 말하고 있는가? 

6. 주를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주를 위해 하기를 원하시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함으로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 분과 함께 걸어가고, 그 분과 함께 교제하고, 그 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할께 아니라 지금 이 시간 주와 함께 동행해야 한다. 

7. 우리가 천국에서 머물게 될 집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느냐? 혹은 홀로 있느냐? 가 더 중요한 것이다. 찬송가의 가사처럼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 믿는 자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8. 예수와 함께라면 (내 집이 이 땅에 있든지 없은지) 이 땅도 하늘 나라이다. 슬픔과 고난과 역경과 어려움이 있어도 그래도 이 땅은 하늘나라이다. 하지만 예수가 없다면 모든 것을 가져도, 좋은 집과 좋은 차를 가져도, 어느 좋은 곳을 가더라도 그 곳은 고생길이고, 지옥이다. 

9. 나는 정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나는 지금도 그 주님과 동행하며 이 곳이 하늘나라임을 선포하고 있는가? 요엘이의 짜증 속에서도 주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그 아이를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이고, 이 곳이 하늘나라이다. 내 집이 없어도, 이 곳이 천국이다. 

10. 오늘도 내 힘으로, 나 홀로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는 하늘나라를 걷고 싶다.

11.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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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4:7-18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과 맞닿아 있는 생명

 

1. 죽음은 늘 끝처럼 보인다. 죽음이라는 것 앞에서는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늘 생명과 연결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이 보배의 심히 큰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7절).

 

2.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예수의 죽음을 “항상” 짊어져서 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10절). 여기에서 예수의 죽음을 짊어진다는 것은 12-13절에 기록된 것과 같은 믿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 분의 죽음이 우리를 위한 것임을 믿어야 한다. 

 

3. 그 믿음을 통해서만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날 수 있다 (11절). 죽음과 생명이 맞닿는 신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4. 인생의 방향성은 영원한 삶, 하나님과 영원한 교제 안으로 들어간다. 그렇기에 우리의 겉사람은 늙고, 병들고, 이 땅에서의 죽음을 기다리게 되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다 (16절). 

 

5. 날로 새로워지는 속 사람은 영원한 삶에 주목하게 된다. 이 땅에서의 복잡거리는, 분열과 분리와 힘듦과 어려움과 죽음이 있는 해 아래의 삶이 아니라, 영원한 해 위의 삶을 소망하게 된다. 

 

6. 그레이스 포인트 교회와 함께 그저께 전도했던 무슬림-불교 커플이 어제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자신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자신들은 자신들의 종교에 만족하며, 절대로 너희들의 종교로 넘어가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들도 해 아래의 삶 뿐만 아니라 해 위의 삶도 원했다.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했고, 우리 힘으로는 의인이 될 수 없음을 이해했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 분에 대해서도 나눴다. 하지만 그들은 결단하지 못했고, 다시 해 아래의 삶만을 선택했다. 

 

7. 죽음이 생명과 맞닿을 수 있는 순간에서 망설이며 뒤로 물러난 것이다. 보배를 질그릇에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게 되었다. 이해는 되지만 안타깝다. 그들의 시선이 오늘 본문과 같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자유케 하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케 하시는 그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 원한다.

 

8. 그러면 나는? 해 아래서의 나의 삶은 어떠한가? 나의 시선도 영원에 맞닿기 원한다. 보이지 않는 것에 내 삶에 가치를 두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욱 더 사랑하는 내가 되기 원한다. 

 

9. 요엘이 사랑한다. 마음 뿐 아니라 의지로 더욱 사랑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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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4:1-6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빛이 내안에 비추면

 

1.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형상이시기 때문이다 (4절). 이제는 이전처럼 죄에 묶여 붙들려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로 살아가게 된다.

 

2.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시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에서 어둠 가운데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 안에 새 빛을 통해 새일을 시작하시기 때문이다.

 

3. 고후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그 새로운 빛을 보게 된 자들이다. 새로운 창조가 우리 안에 시작되었다. 더 이상 처음 창조 이후 타락하여 하나님과 분리되어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던 죄인이 아니다. 

 

5.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자들로 만드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빛, 즉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춰 주셨다. 

 

6.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그 빛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되었다. 

 

7. 영광을 알게 되면 나머지는 다 쓰레기다. 가장 존귀한 것을 보고 나면 다른 것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8. 우리는 그리스도의 빛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다시는 뒤돌아 서지 않는다. 다시는 어둠으로 돌아서지 않는다. 그 빛이 우리 안에 있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9. 이 빛이 내 안에, 내 속에 비치기 원한다. 그리고 우리 요엘이에게도 부지런히 가르치기 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이시고, 그 빛이 네 마음 속에도 비치고 있다고...

10. 어제 그레이스포인트 교회 팀과 같이 람캄행 대학으로 전도를 나가 불교-이슬람교 커플에게 복음을 전했다. 오늘 저녁 영어클래스에 오겠다고 하였다. 어제 그들에게 전한 그리스도가 그들의 삶에 참 진리로, 참 빛으로 그들의 삶을 밝혀주길 기도한다. 

 

11. 그리스도가 빛이시다. 그리고 그 빛은 내 안에 있다. 

 

12.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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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3:1-18 기도를 통해 수건을 벗어 버리자. 

 

 

1. 그리스도안에있지않으면우리는언제나수건을얼굴에채로생활하게된다(14). 수건은우리를살리는것이아니라죽이는것이다(6). 수건은오직그리스도안에서만벗겨질있다.

 

2. 이수건은율법이다. 수건은우리의선입관이다. 수건은우리의의다. 수건은우리가원하는모든어떠한것이다.

 

3. 그리스도안으로들어가야한다. 그래야수건이벗겨지게된다(14). 그리스도를만나야자유함이있다(17).

 

4. 지금나의얼굴을덮고있는수건은무엇인가? 덮여있는지도모르게얼굴에가득한수건은무엇인가? 나의 의인가? 나의 생각인가? 내가 예수 그리스도 보다 더 크고 더 귀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5.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다 (17절). 나는 내 스스로 내 마음대로 행하는가? 아니면 성령과 오늘도 동행하고 있는가? 

 

6. 성령이 우리 삶에 함께 하셔야 한다. 내 힘으로는 이 수건을 결코 벗을 수 없다.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다. 여전히 요엘이를 대함에 있어서 내 힘으로 하려고 한다. 그래서 오래 참지 못한다. 쉬이 분노한다. 조금만 인내해도 내 의가 올라온다. 

 

7.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그래서 더 기도하는 하루가 되기 원한다. 내 힘으로 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으로 하기 위해 기도한다. 

 

8. 기도를 통해 내 수건이 벗겨지게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내 삶에서 자유함이 흘러 넘치길 원한다.

 

9.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주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는 하루가 되기 원한다. 내가 수건을 벗은 얼굴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봄으로 그의 영광 가운데 거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주님 저를 도와주소서.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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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1:23-2:17 하나님의 소유로 사랑한다. 

 

  1. 사도 바울의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랑은 참으로 컸다. 그가 고린도 교회를 다시 가지 않으려 하는 그 일 조차도 사도 바울은 그들을 아끼는 마음에 결정한 것이었다 (23절).

  2. 왜냐하면 그들의 믿음을 자신이 주관하려고 하지 않고 그들을 돕는 자가 되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24절). 

  3. 우리가 믿음을 주관하게 되면 그들의 믿음은 결코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4. 때로 사랑은 한 걸음 물러나야 한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하려는 시도와 행동들만이 사랑인 것이 결코 아니다. 때로는 한 발 물러나는 더 어려운 사랑을 해야한다. 

  5. 나의 사랑은 어떠한가? 아이들을 향해서, 아내를 향해서, 그리고 우리 형제, 자매들을 향해서 하고 있는 나의 사랑은 과연 어떠한가? 

  6. 사도 바울과 다르게 내가 주관하려고 하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끌고, 혹은 추진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7. 요엘이에게 기다려주고, 인내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사랑을 표현하기 보다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 아이가 지켜야 할 그 것들만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가?

  8. 하나님도 나에게 그렇게 하시지 않았는데... 사도 바울도 고린도 교회에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그들을 영혼으로 볼 것인지? 나의 소유물(?)로 볼 것인지? 

  9. 영혼으로 볼 때는 사랑의 대상이 되지만 나의 소유물로 볼 때에는 내 만족의 대상이 된다. 나의 아이들과 아내, 그리고 우리 형제, 자매들은 나의 사랑의 대상인가? 아니면 소유물로 나의 만족의 대상인가? 

  10.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는(12절) 그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볼 때 내 삶에서 드러날 수 있다. 그들을 사랑할 때 나는 냄새이다.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는 사랑에서만 나타난다. 

  11.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로 사랑한다. 

  12.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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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6:13-24 성도의 교제, 사랑
 
  1. 바울은 우리에게 서로 거룩함으로 입맞춤 하라고 말하고 있다. 성도의 교제,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19절). 
  2. 하지만 바울은 지금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에 편지로 (친필로) 문안하고 있다 (20절). 바울은 할 수 있는데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3. 성도간에 믿는 자들 가운데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바울은 오늘 24절에서 이렇게 마무리한다. “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4. 우리는 서로가 경쟁자이거나 그가 죽어야 내가 사는 관계가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의 관계이다. 서로에 대한 문안과 사랑을 잃으면 경쟁하게 된다. 
  5. 그가 죽어야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는 죽고 그리스도는 살아야 하는 것이다. 
  6. 결국 남는 건 사랑이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3
  7. 나는 경쟁하고자 하는가? 아니면 사랑하고자 하는가? 
  8. 무엇을 하더라고 경쟁이 아니라 사랑하기 원한다. 영혼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이 땅을 사랑하는 선교사가 되기 원한다.
  9. 오늘도 교제와 사랑을 나누자. 
  10. 아내와 아이들이 어제 무사히 돌아왔다. 물론 열쇠가 없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해 친구네 집에서 잠을 자게 되었지만 말이다. 
  11. 아내도, 예준이도, 요엘이도, 마라도 너무 소중하다. 그들을 사랑하기 원한다.
  12. 그리고 우리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 만큼 이 땅의 영혼들도 그렇게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기 원한다. 
  13.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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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