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19:16-25 무엇을 향한 불편함인가?
나름 그 당시 최고의 권력과 힘을 가졌다는 애굽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16절). 그들은 흔들리고 떨며 두려워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에게 반역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혔던 애굽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신다. 19절을 보면 애굽 땅 중앙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과 기둥이 있을 것임을 말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한 구원자를 보내셔서 그들을 건지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20절). 21절에는 여호와를 알게 하실 것이고 22절에서는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서 치시지만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고쳐 주실 것임을 말씀하시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언제나 은혜를 베푸시고, 또 다시 기회를 주시고, 또 다시 기회를 주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이시기 때문이다. 인자하시며 노하시기를 더디하시는 그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께 끝까지 악인일 수 없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들을 돌보시고,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이시다. 내가 뭐라고 그 사랑을 제한할 수 있겠는가? 내가 뭐라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며 요나와 같이 그것이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도 그 사랑을 받은 자이거늘…
이 번 주의 계획이 이래저래 다 틀어져 버렸다. 기존에 참석하려고 참가비를 내었던 세미나도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고, 오히려 비자와 워크퍼밋 등 기타 서류로 인해 더 바쁜 한 주를 보내고 있다. 하루종일 노동국과 이민국에서 대기중이다. 그러면서 오전 내내 드는 마음은 '이 곳은 왜 이렇게 불편하지?' '이 곳은 왜 이렇게 외국인들을 힘들게 하지?’ 란 마음이었다. 기존에 하지 않아도 되던 일을 갑자기 엄격하게 적용 하면서 오히려 벌금을 물리는 그러한 태도들에 대해서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벌금도 많았다 ㅜㅜ. 왜 이러한 불편함들을 견뎌야 하는지, 왜 이러한 불합리함을 계속해서 경험하도록 하는지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은근히 계속 짜증이 솟아왔다.
노동청에서 이민국으로 차를 몰고 오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는데, 오늘 본문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오늘 말씀처럼 이게 다 애굽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게 다 태국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태국 때문이었다.
우리는 나그네이다. 나그네의 삶은 안정적이지 못하고 늘 뭔가 불편하다. 불편한건 당연한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 불편한가?의 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지금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가? 바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태국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태국 때문에 나는 이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고치시고 치료하실 태국 때문에 나는 지금 이 불편함 속에 있는 것이다.
무엇을 위한 불편함인지를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애굽을 고치실 주님께서 태국도 고치실 것을 믿음으로 감사하게 되었다. 불편함보다 더 크신 사랑을 이해하고 나니 나의 불편함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거란 생각에 감사하게 되었다. 항상 내가 문제이다. 불평하고, 불만을 가진 내가 항상 문제이다. 무엇을 위한 불편함인가? 주를 위한 불편함이다.
그 불편함 가운데 감사함으로 오늘도 살아가자.
하나님께서 태국을 사랑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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