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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15:20-63 복음을 살아내는 오늘
오늘 본문은 유다지파의 기업에 대해서 나온다 그들은 매우 넓은 땅을 받았다. 20절부터 61절까지 그들이 어떠한 성읍과 마을들을 가졌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준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들이다. 자기 스스로를 메뚜기 같다고 여겼던 자들이 얼마나 많은 땅을 차지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소상히 설명한다.
그런데 문제는 마지막 63절이다.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해서 예루살렘에서 함께 거주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신실하심으로 그들을 인도하였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고, 함께 거주하게 된다. 마치 드라마에서 앞으로 일어날 나쁜 일을 예고하는 것 처럼 유다 지파와 여부스 족속은 함께 살게 된다.
사실 새로울게 없다. 언제나 하나님은 신실하셨고, 인간들은 언제나 그 분의 마음을 배반하였다. 그들의 가지고 살아갈 기업을 주셨지만, 그들은 여전히 순종하지 않는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나의 모습이다. 늘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나는 그 분의 은혜와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오늘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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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경은 여호수아이다. B.C 15세기 혹은 13세기가 배경이다. 그 말은 앞으로 하나님이 얼마나 더 그들을 사랑하셨는지.. 그래서 \\지금 2019년이 되실때까지 하나님은 늘 인간들의 그러한 배신과 불성실함을 경험하시면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배우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다.
여부스 족속과 함께 살아가는 것과 같은 나를, 그런 이스라엘을 조건없이 받아주셨다. 용납해주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런데 나는 타인들을 그렇게 받아들이기 쉽지가 않다. 어제 저녁만해도 그런 일이 있었다. 내가 복음으로 인해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만 그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다. 이중적인 모습이다. 나는 복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원하면서도 내 삶에서 복음적인 가치관으로 살아내는 것에는 인색하다. 마치 받은 은혜를 알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했던 유다 백성들처럼 말이다.
이렇게 묵상을 하면서도 여전히 어제의 일은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되내이는 것은 내가 용납, 용서 받은 자임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나도 사랑하기 원한다. 잘 안되어도 오늘도 복음을 붙들고 걸어가기 원한다.
내가 용서받은 죄인임을 결코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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