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19. 2. 1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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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4:1-18 오늘 하루를 동행할 때 내 삶의 변화가 생긴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정리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고, 이삭과 야곱을 선택하셔서 어떻게 애굽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는지를 말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애굽에서 이끌어 내셔서 지금 이 곳 까지 안전하게 올 수 있게 하셨는지를 이야기 한다. 

14절부터는 ‘그러므로’로 시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말로 하고 싶은 말로 결론을 내고 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을 것을 결코 강요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이렇게 우리를 신실하게 인도해오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이 강 건너 애굽의 신이 더 좋아 보이거든 그들을 섬기라고 아주 쿨하게 말하고 있다. 믿음을 강요하지도 구걸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들이 선택하도록 만든다 (15절). 

하지만 자신들의 선택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이야기 한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15절 하반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떠한 선택을 하든지 상관없이 이미 자신과 자신의 가정의 마음은 결정되어 있다. 세상이 어떻게 가든, 세상이 뭐라고 하든, 세상이 우리에게 어떠한 유혹을 하든 관계없이 이미 마음을 결정한 것이다. 

시 57:7 하나님이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믿음의 자리에 서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면서도 많은 순간 내가 세상에 한 발, 하나님께 한 발을 걸치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나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여호수아와 같이 저렇게 마음을 확정하지 못한 까닭이다. 세상과 다른 방향으로 갈 용기가 없는 까닭이다. 세상에 여전히 미련이 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가 인생의 마지막에서 모든 사람들과 상관없이 저런 결단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그의 생에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끊임없이 해주신 말씀이 있었다. 바로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라는 말씀이었다. 반대로 이야기 하면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끊임없는 말씀을 듣지 않고서는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평생을 그렇게 듣고, 하나님의 율법책을 늘 가까이 하며 말씀을 대한 여호수아의 마지막은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때에 나는 세상을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때라야 비로소 세상보다 하나님이 더 크심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의 인생의 마지막 결정, 결단은 그의 인생 전체를 함께 하신 하나님과 보냈던 시간(과정)의 결과였다. 과정없이 결과를 얻을 수 없다.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없이 세상을 넘어서는 결정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 하루를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내 결정이 연약하고, 부족해도 이 시간들을 거치며 나타나는 결과는 지금과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더 말씀을 대하며, 연구하며, 읽고, 묵상하기 원한다. 시간이 없다 핑계대지 않기 원한다. 세상의 소리보다도 더 하나님의 소리를 듣기 원한다. 내 안에 잡음과 시끄러운 소리들을 꺼버리고 오직 하나님께 귀 기울이기 원한다. 지금 당장 여호수아와 같이 결단하지 못하여도, 오늘도 이 하루를 주님과 동행하는 과정을 걸어내기 원한다. 나도 이 하루 내 마음을 더 확정하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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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19. 2. 1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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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3:1-16 나의 인격과 삶에서 드러나는 복음 

여호수아의 고별설교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충성하였고, 이제 나이가 많아졌다 (1절). 23:3을 보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남기고 싶어 하는 유산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23:3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

여호수아가 가장 남기고 싶어했던 유산은 바로 하나님께서 너희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3절에서 계속 반복되는 단어는 ‘너희’이다. 하나님도 ‘너희의' 하나님이고, 그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셨고, ‘너희의’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분임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이 늙어버린,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 온 여호수아의, 여호수아를 위한 하나님일 뿐 아니라 그 하나님이 너희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이시고, 너희를 위해 싸우셨음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이제 오늘을 살아가는 너희 모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자녀들들에게 형제, 자매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 바로 이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멀리 계시고, 아빠, 엄마의 하나님, 혹은 선교사의 하나님이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이 직접 하나님을 경험해야 하고,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나의 하나님이 이제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적을 보았고, 기적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되게 하지는 못했다.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하나님을 강제로 만나게 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우리의 삶으로 보여줄 수는 있다. 결국 나의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나의 삶, 나의 인격, 내 삶에서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나야 한다. 결국은 내가 나의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고, 내가 하나님을 만난 것이 삶에서 드러나야 한다. 

지난 주 주일예배 후 식사를 마치고 함께 설겆이를 했다. 몇 번 같이 하긴 했었지만 자주 하지는 못했었다 (그룹이 짜여져 있다). 그런데 함께 설겆이를 하는 우리 대학생 형제, 자매들이 뭔가 낯설어 함과 동시에 뭔가 좋아하는 것을 느낀 것 같다. 아차 싶은 마음도 들었고, 무엇을 해야할지도 더 알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섬김의 본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옷을 걷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나도 더 옷을 걷고, 설겆이에, 섬김에 동참해야겠다. 복음은 말에서 나오지만, 삶에서도 더 크게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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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1:1-19 받은 사랑을 품고 영혼을 섬기는 일에 대한 감사

오늘 본문은 레위인들을 위해 성읍을 분배하는 내용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는 레위인들이 어떤 존재들이었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를 돕고, 하나님을 섬기기로 헌신되어 자기 자신의 기업이 없이 하나님을 자신의 기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그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생각했을까? 

겨우 겨우 치열한 싸움을 통해 자신의 기업을 차지했는데, 갑자기 자신들의 성읍들과 목초지들을 그들에게 나눠주라고 이야기 들었을 때, 정말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우리는 한 몸이니까 당연히 줘야지? 아니면 쟤들은 싸우지도 않고 땅만가져가네? 과연 어떠한 마음이었을까? 

오늘 본문에서는 어떠한 불평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3절) 자신들의 기업에서 성읍들과 목초지들을 레위인들에게 주었다. 그저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에 순종한 것이다. 그들이 한 몸임을 잊지 않았던 것 같다. 감사가 레위인들의 몸에 기억되었을 것 같다.

내가 레위인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이 레위 지파에게 내 모습이 대입해 보여진다. 나 또한 선교를 위해 이 땅에 나와 있고, 많은 분들의 후원과 기도를 힘입어 살아가고 있다. 우리 가정을 후원하고, 기도해주시는 분들의 모습 또한 오늘 11지파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아 보인다. 불평이 아니라 늘 기도해주고, 더 해주지 못해서 아쉬워 하는 분들을 자주 경험한다.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하나님이 태국으로 부르셔서 영혼들을 섬기기 위해 나온 우리 가정을 위해서 이렇게 자신들의 기업에서 기꺼이 일부를 떼어서 보내주시는 분들로 인해서 우리 가정은 오늘도 살아간다. 자신의 기도의 시간에서 우리 가정을 위해 시간을 떼어 기도하고, 중보해 주시는 분들로 인해 이 땅의 선교는 확장되어 간다. 늘 이렇게 살아왔지만, 오늘은 말씀 속에서 비추어지니 더 감사하고, 더 감사할 따름이다. 이 사랑의 빚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도 이 하루를 태국 땅에서 그리스도를 삶으로 비춰내기 위해서, 복음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 이 땅에서 땀 흘리며, 성실하게 살아간다. 

자신들의 기업에서 기꺼이 내어주신 후원과 기도들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오늘 하루도 시간을 아끼며, 영혼을 사랑하며, 눈물 흘리길 원한다. 오늘 하루 더 감사하기 원한다. 

*동역자 여러분들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묵상을 하면서 깊은 감사의 마음이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참 많은 감사로, 참 많은 격려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 가정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 기도해주시고, 기꺼이 자신의 쓸 것들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무익한 종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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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9 도피성, 곧 여호와께 피하는 것

오늘 본문은 독특한 도피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혹시 실수로 사람을 죽이더라도 이 곳에 들어오면 그는 피의 보복을 피하게 된다 (2-3절). 이것은 이스라엘 전체 안의 약속이었다. 그 누구도 이 약속을 깰 수 없는 그런 엄한 약속이다. 보복자들을 피해서 일단 성 안으로 들어오면 그가 실수로 살인을 했을지라도 절대로 보복자들에게 내어 줘서는 안되는 그런 곳이다. 

하지만 조건은 분명히 있다. 아무렇게나 사람을 죽인 사람들이 피하는 곳이 아니라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 5절에 나오는 것 처럼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 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을 경우’에만 피할 수 있는 곳이다. 바른 재판까지,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 안에 거하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도록 해줬다. 

하나님께서는 고의가 아닌 실수로 범한 사람들의 억울한 다른 죽음을 막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 도피성은 이스라엘 백성 뿐안 아니라 그들과 함께 지내는 이방사람들에게도 유효하다. 9절에 보면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은 단순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도피성을 우리 모든 사람에게 주셨다.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어떠한 죄를 지었든 어떠한 죄 가운데 거하고 있든 우리가 그 분안으로 피하면 우리는 모든 죄의 참소와 심판으로부터 피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살인을 했든, 다른 말하기 힘든 죄를 지었든.. 그것이 드러나는 죄이든, 혹은 마음 속의 죄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그 분께 피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들인 것이다. 

시편 118:8-9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오늘도 날 위한 도피성,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려 계신다. 언제나 내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시고, 두 팔 벌려 안아 주신다. 나는 여호와께만 피해야 한다. 내 속에 가득한 죄악을 가지고 그 분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이 이 땅 가운데 드러나도록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
나의 허물을 보며 여호와께 피하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보며 여호와께 피하자.
나의 어려움들을 안고 여호와께 피하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안고 여호와께 피하자.

그 분께서 그 분의 도피성 안으로 피하는 사람들을 통해 그 분의 정의와 공의를 드러내실 것이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안으로, 예수님 안으로 피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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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19:40-51 입이 아니라 삶으로 말하게 하자. 

여호수아의 리더쉽은 탁월했다. 특별히 스스로가 실수한 것도 없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온전히 완수 했다. 그리고 단 지파까지의 땅을 모두 분배한 그 이후에 이제 드디어 자신의 기업을 취한다. 자신의 공로를 앞세워 먼저 기업을 받지 않았고, 모든 지파에게 분배를 먼저 마쳤다. 

마지막으로 분배 받았는데도, 주석을 보니 여호수아게 요구한 성읍 에브라임 산지 딤잣 세라라는 곳은 (50절) 그 당시 유력하고 위세있는 성읍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 말은 권력의 중심부를 가질 수 있었던 여호수아가 취할 수 있는 권리를 취하지 않고, 변방으로 갔다는 것이다. 

그의 선택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는 울림이 어땠을까? 결국 탁월한 리더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삶으로 전해진 것이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좋은 리더와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가게 된다. 하지만 여호수아의 그 겸손함이 주는 울림은 오늘 나에게 까지 미친다.

입술이 아니라 삶이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의 길을 쫓아가지 않았던 것 처럼 그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 길을 묵묵히 가야 하는 것이다. 입이 아니라 삶으로…
요즈음은 좀 힘든 일들이 많은 시즌인 것 같다. 양가 부모님 일들도 그렇고,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하지 말아야 할 일들도 있다. 아침에 아내와 이야기 한 것 처럼 좀 입을 닫고, 잠잠하게 있기를 원한다. 입술이 말하지 않고 삶이 말하도록 오늘도 내 의견을 내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일을 보고 계실지에 집중하기 원한다.  

모두가 내 삶에 박수쳐주지 않더라도, 모두가 내 삶에 칭찬하지 않더라도 묵묵하게 오늘도 걸어가기를 원한다. 나에게 박수쳐주시는 주님만 바라보면서 말이다. 말로서 다른 사람의 이해와 인정을 구하기 보다는 삶으로써 하나님의 인정을 구하는 오늘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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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19:24-39 가족이 중요하다. 

아셀 지파도, 납달리 지파도 제비를 뽑을 때,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다 (24, 32절). 다른 지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주시는 가나안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가정도 남김없이 참여하도록, 그들에게 분깃을 주시기 위해서였다. 어떤 가족도 소외될 수 없었다. 즉 모든 지파의 모든 가족이 자신의 땅을 가질 수 있었고, 그 땅에서 필요한 것을 재배하면서 먹고,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주셨다는 것이다.  

땅을 분배함에서 보듯이 가족은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가장 작은 공동체 단위이다. 하나님께서 결코 개인에게 땅을 분배해 주신 것이 아니었다. 가족에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가정을 나는 어떻게 돌아보고 있는가? 가장으로써 잘 섬기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 가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집안에 여러가지 힘든 상황들이 있다. 아버지께서는 암이 재발되면서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셔서 항암 치료를 받고 계신다. 많이 힘들어 하시고, 식사를 제외하고는 계속 주무시고 계신다. 기력이 많이 떨어지셔서 힘들어 하신다. 선교지에 있는 아들로써 기도하고, 필요한 것들을 좀 보내드리는 것 외에 해드릴 수 있는게 별로 없다. 장인어른도 얼마전 교통사로고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 마찬가지로 내가 해드릴 수 있는게 별로 없다. 요엘이는 조금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가정에 많은 어려움과 힘듦이 있는데, 나는 지금 어디에 서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오늘은 특별히 또 설날이다. 타국에서는 설날의 정취를 느끼기가 어렵다. 하지만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한번 더 가정의 소중함과 내가 이 가정에서 어떠한 자리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기를 원한다. 

내가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우리 가정을 돌아보시는 하나님 앞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양가 부모님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흘러가도록 해야 하는 가장의 자리이다. 이 자리에 세워주신 것을 두려워 말고, 부끄러워 말자. 그리고 모든 것들을 한 번에 잘하지 못해도 오늘부터 전화를 자주 드리는 것 부터라도 다시 시작하자. 아이들에겐 다시 한번 친절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아빠가 되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정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흘러가기를 간절히 원한다. 

큐티를 보시는 분들은 양가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샬롬
그리고 2019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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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19:1-23 조금은 엉뚱한 생각?

오늘 본문을 보며… 좀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왜 나는 이렇게 남의 땅 이야기를 읽으면서 지루하고, 힘이 들까? 순식간에 드는 생각은 내 땅이 아니어서였다. 내가 만약 시므온 지파였다면, 스블론 지파였다면, 잇사갈 지파였다면 이 본문을 그냥 그냥 읽을 수 있었을까? 

우리 조상의, 우리 부모의 땅이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열심히 지도를 찾아보며 분명히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매번 지도를 대충 찾아보다 말고, 대충 대충 보고 있다. 왜냐하면 내 땅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의 이해관계가 있는가? 없는가? 의 문제가 매우 중요함을 알수 있다. 이 마음을 가지고 다시 읽어보지만 여전히 큰 상관없이 느껴진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교 사역을 하면서도 매우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이 것이 내 사역이냐? 라는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내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이 일을 하는가? 아니면 변두리 인물로, 그냥 마지 못해서 하는 사람으로 이 일에 포함되어 있느냐? 의 문제는 시작은 작아 보여도 나중의 차이는 매우 클 수 밖에 없다. 

알아서, 찾아서, 주인 의식을 가지고 오늘도 섬기려 한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고, 마지못해 하려고 하지 말고, 내 땅이고, 내 사역이고, 나를 부르신 곳이다. 시므온, 스불론, 잇사갈 지파와 같이 나와 상관없는 곳이 아니다. 부르신 곳에서 오늘을 살아가면서 후회하거나 낭비하는 인생이 되지 말고, 오늘을 정성껏 살아내는 하루가 되자. 

영어의 기초가 없는 친구들을 졸업 시험을 패스 시키는 일을 나서서 하고 있는데, 오늘 오전 수업은 살짝 절망을 맛 보았다. 영어의 시제를 설명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태국어에 없는 개념이기 때문인 것 같다. 좀 더 준비해서 적어도 어느정도의 이해를 바탕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준비하자. 내일은 학생들이 좀 더 이해되는 표정을 볼 수 있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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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18:1-10 은혜와 전략의 리더쉽

여호수아는 좋은 리더였다. 그의 나이는 이미 많고, 늙었지만 그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지파들을 깨우친다. 그리고 그들이 그냥 나가서 땅을 점령하고, 알아서 땅을 나누라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느 지파가 어느 땅을 분깃으로 받을지에 대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제비를 뽑는다. 가나안이라는 큰 땅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 세부적으로 목표를 분배해 주었다. 일곱 지파가 각 지파 별로 차지하면 되니까 대략 점령해야 하는 목표가 1/7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지도를 그리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가야 하는 목표지역에 대해 가시적으로 보며 전략과 작전을 세울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게 하였다.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고 해서 그냥 하나님이 하시겠지 라는 태도로 있지 않았다. 하나님은 땅을 이미 주셨지만, 그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지혜와 용기, 그리고 은혜로 말미암아 차지해야 하는 땅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하실거라는 태도는 여호수아에게는 있지 않다. 

나에게는 때때로 많은 전략을 세우는 것이 믿음없는 태도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나님이 하실 것을 의지하는 것만이 믿음이고, 내가 세우는 전략은 믿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때로는 안일한 태도, 믿음이면 다 해결될 것 같은 태도를 가질 때도 있었다. 오늘 여호수아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둘 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도를 만들어서 분배했지만 분배는 자신의 생각대로 하지 않았고, 하나님이 하시도록 제비를 뽑았다. 

은혜를 구하는 동시에,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을 해 내는 것, 눈에 보이는 비전으로 보여주고, 그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 그것이 여호수아가 보여주는 리더쉽이다. 아직 나에게는 많은 리더쉽이 있지는 않다. 지금은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시기이다. 지금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어떠한 비전을 품고, 어떻게 나아갈지, 어떻게 움직일지를 부지런히 연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에 보여줄 수 있도록 준비하자. 

아이들에게도 자꾸만 다그치기 보다는 보이는, 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목표를 정해주고, 그들이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빠가 되어야겠다. 나 스스로에게도 언어공부와 성경연구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은 목표와 그에 따른 성취를 경험하도록 오늘은 좀 계획을 세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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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17:1-18 주님 손잡고 좁은 길로...

므낫세 지파도 다른 지파들과 크게 다름이 없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땅을 기업으로 받았고, 주민들은 쫓아내지 못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14-18절의 내용인데, 자신들이 큰 민족을 이루었기 때문에 한 분깃으로는 좁다고 여호수아에게 불평하는 내용이다. 여호수아의 목소리는 '그 땅에 스스로 올라가서 개척하라' (15절) 였다. 

그런데 므낫세 지파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 못하고 (좁고)….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16절)’ 다른 말로 하자면 그 산은 좁고, 거기 사는 사람들은 우리 보다 강합니다 라고 대답한 모양이다. 스스로 개척하기 보다는 다른 땅을 주길 원했던 것 같다. 지금 이스라엘이 땅을 다 차지해서 나누는 수순이 아니었다. 여전히 싸우며, 여전히 그 땅을 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애쓰고 있는 중인가? 그런데 그들이 요청했던 것은 쉬운(?) 땅이었나 보다. 넓은 땅인데, 쉬운 곳을 원했던 것 같다. 세상에 그런 곳이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여호수아의 대답은 그래도 너희들은 큰 민족이요, 권능이 있으니 개척하라고 권면했다 (17절). 

이미 소유한 분깃의 땅을 누가 그들에게 주셨는지를 므낫세 지파는 잊어 버렸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나님이 하게 하셨는데, 새로운 땅은 그들의 힘으로 차지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하나님의 힘으로 하려고 하지 않으니 그들의 거대함과 강력함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 편하고 쉬운 것을 찾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리더를 통해서 주신 사인은 개척이었다. ‘개척’ 단어만 들어도 얼마나 힘들어 보이는가?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개척을 요구하셨다. 단 자신의 힘이 아니라 여태까지 해왔던 것 처럼 하나님의 힘으로 하는 개척이다. 

태국의 미세먼지가 엄청나다. 미세먼지 수치가 거의 200에 수렴중이며 학교들이 어제, 오늘 강제 휴교중이고, 다음주 월요일도 주일에 어떻게 될지를 말해준다고 한다. 바트화는 계속해서 오르고 있어서 실제로 들어오는 선교비가 계속 줄어드는 상황이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보는 태국의 모습은 선교사들의 무덤이다. 200여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0.5%도 되지 않는 복음화율… 오랜시간 동안 사역하지만 열매가 보이지 않는 힘든 곳이다. 정말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면 므낫세 지파와 같이 우리의 상황을 불평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강함에 주눅이 들게 된다. 

하지만 세상에 넓은데 쉬운 곳이 어디에 있는가? 예수님 말씀과 같이 우리는 오늘도 좁은 길로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단 좁은 길로 들어서는 것도, 좁은 길 안을 걸어가는 것도, 그 좁은 길을 통과하는 것도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이긴 전쟁의 주인이신 하나님만 붙들고 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붙잡지 않으면 지금의 상황에 압도 당하고, 나의 연약함에 쓰러지게 된다. 

개척하자. 내 앞에 주어진 상황을 개척하자.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에 기대어 개척하자. 내 힘으로 하는 일 아니다. 내 힘으로 가는 좁은 길 아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하는 것이다. 두려워 말고, 내 시선을 예수님께만 고정시키자.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fixing our eyes on Jesus, NIV)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볼 때 좁은 길로 갈 수 있다. 개척할 수 있다. 내 힘으로 하겠다는 교만함을 버리면 우리는 주님과 함께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새로 시작되는 영어 수업, 설교, 사역들, 아이들 문제, 재정 문제 다 하나님과 함께 개척하는 내가 되길 원한다. 좁은 길을 주님과 손잡고 함께 걸어가는 내가 되기를 원한다. 
완전하신 나의 주님, 저를 의의 길로 인도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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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19. 1. 3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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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16:1-10 순종과 편안함 어느 곳에 기준을 둘 것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에브라임 지파였다. 쫓아내지 못한 것인가? 쫓아내지 아니한 것인가? 성경은 그들이 쫓아내지 아니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을 종으로 부리기 위해서, 자신의 좀 더 편안한 삶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한 것이다.

순종하기 때문에 편하지 않은 길을 걷는 것과 순종 하지 않았기 때문에 편한 길을 걷는 것 중에 어떤 것을 택하려 하는가? 의 문제이다. 어디에다 방점을 둘 것인가? 순종인가? 편안인가? 

이스라엘 백성은 편안에 방점을 두었다. 그러니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편안한게 더 우선이었다. 그래서 불순종하더라도 편안한 길을 택하였다. 나는 오늘 어디에 방점을 찍기 원하는가? 머리로는 순종인데, 많은 순간 편안함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순종이 삶의 기준이 되기를 원한다.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편안함을 취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기를 원한다. 현실의 삶이 기준이 되지 않고, 말씀이 기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지금 내가 말씀을 기준으로 생각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이 있는가? 

오늘 샬롬하우스 학생들 졸업영어시험 2차를 함께 준비하기로 하고 클래스를 만들었다. 처음엔 내가 먼저 도와주겠다고 찾아갔지만, 이제는 그들이 먼저 나에게 자신의 필요들을 이야기 한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다보니 부담이 되기도 하고, 내가 영어 선생님으로 여기에 온 것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영어 수업을 통해서 그들과 복음적인 삶을 더 나누길 원한다.  내 육신의 평안함이 아니라 그들의 필요를 따라, 복음의 가치관을 더 말하게 되기를 원한다. 절대로 영어만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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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