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히 12:14-29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평함을 추구하자.
14절은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는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이다. 거룩함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단어인데, 왜 굳이 거룩함 앞에 화평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
묵상하다보니 거룩함과 화평함은 굳이 구분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닌 것 같다. 화평하지 않고서는 거룩할 수 없고, 거룩하지 않고서는 결코 화평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 성경의 모든 계명을 두가지로 요약하셨는데, 하나님 사랑, 예수님 사랑인데 아마 마찬가지인것 같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이웃을 사랑할 수 없고, 이웃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나는 거룩함은 그래도 추구하고 있어 보이는데, 화평함은 잘 추구하지 않는 것 같다. 거룩함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쉽게 보이지만, 화평함은 오히려 무시할 수도 있고, 원래 그런거야 라고 넘길 수도 있고, 뭐 굳이 그렇게까지 라고 생각할 때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 새 언약의 공동체는 이렇게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화평함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공동체이다. 이미 하나님과 화평하고서도 사람과 화평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찌 거듭났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지금 가장 화평해야 하는 사람은 아마도 요엘이 같다. 사실 요엘이와의 관계를 내가 잘 못넘기는 것 같다. 둘째의 어려움을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님 그 아이의 기질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반응이 다르게 나가는 것인지? 정말 잘 모르겠다. 그리고 한 가지 더는 다른 선교사님들과의 관계인 것 같다. 나는 기본적으로 친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마음이 많다. 그래서 불편한 관계를 안 만들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과 알고 지내지 못한다.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과도 화평하게 만드셨는데, 나는 그것을 누리려고만 하고, 내가 화평하려는 노력은 게을리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고, 불편한 관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되기를 원한다.
728x90
반응형
'생각(Thinking) > Meditat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 13:18-25 기도와 (주님으로 부터, 사람으로 부터) 들음을 통해 조금 더 성숙하기 원합니다. (0) | 2018.09.25 |
---|---|
히 13:1-17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 주님을 깊이 바라보자. (0) | 2018.09.24 |
히 11:27-40 예수, 예수, 예수 (0) | 2018.09.21 |
히 11:13-26 믿음을 따라 죽은 믿음의 영웅들을 따라가기 원합니다. (0) | 2018.09.20 |
히 11:1-12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때 흔들리지 않게 믿을 수 있다. (0) | 2018.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