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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03:15-22 여호와의 이름을 송축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불평할 것인가?
17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이르지 않는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사람이다. 신학교에서 배웠던 용어중에 'common grace’ (일반은총) 라는 용어가 있었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누리는 은혜이다. 햇빛, 물, 가정, 재능, 사랑 등등의 모든 사람이 자신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받는 그 무엇인가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우리의 삶은 이러한 common grace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아주 자주 그 일반은총 (common grace)을 주신 분은 잊어버리고, 주신 일반은총을 가지고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이것이 아마도 여호와를 찬양하지 않는 삶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17절에서 말하고 있는 '주의 인자하심'이란 단어는 이러한 일반은총에 관한 것이 아니라 믿는 자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 곧 영혼의 구원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여겨진다. 이것은 결코 누구에게나 줄 수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는 자에게만 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신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이러한 일반은총 위에서 이 특별한 은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에서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은 여호와를 송축하는 것이다 (20-22절).
이것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취사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삶에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 분의 아름다우심을 찬양하는 것, 그 분이 우리에게 일반은총을 허락하셔셔가 아니라 그 분이 우리를 그 분의 품 안에 품어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주셨음에 우리는 감사하고 그 분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순간 신자라는 이름으로,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일반은총을 바라보며 그것들을 다른 사람들의 것과 비교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재고, 따지고 드는가? 찬양보다는 원망과 따지고 드는게 더 많은게 나 아닌가? 출애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며 무지하다고 하면서도 나 자신이 무지한지는 모르는게 나의 모습이다.
오늘은 정말 하나님의 그 특별한 은혜에 더 감사하고 그 분의 이름을 높이는 하루가 되길 원한다. 단순히 입으로만의 찬양이 아니라 삶의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원한다. 이미 내게 주신 수많은 은혜들과 사랑들을 잊어버리지 않기를 원하고, 결코 다른 사람들과도 비교하지 않기를 원한다. 22절 말씀처럼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이 고백이 오늘 하루 흘러 넘치길 원한다.
여호와의 이름을 송축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불평할 것인가? 오늘 하루의 선택은 내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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