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6:19-32 복음과 복음의 결과
1. 바울은 자신이 알게 된 복음이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19절을 보면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하고 아그립바 왕에게 말한다. 복음은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부터만 나온다.
2. 그 하늘에서 보이신 것은 20절이다.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복음을 들은 자의 반응은 이와 같아야 한다.
3. 먼저는 회개를 해야한다. 복음을 듣고 나면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지만 우리는 죄인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서의 반응은 회개에 합당한 일이다. 이것은 어떤 사역을 말한다기 보다는 복음을 들은 자로서의 합당한 삶의 반응일 것이다. 복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였다면 이 두 가지 반응이 꼭 있어야 한다. 회개,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삶. 바울은 이러한 복음의 깨달음 위에 자신의 사명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 빛을 전하는 것이다 (23절)
4. 자기의 뜻대로 살아가는 회개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 메시지는 당연히 미친 것 처럼 들린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24절) 하지만 바울은 결코 미치지 않았고, 나도 결코 미치지 않았다. 기독교인들은 미친 사람들이 아니다.
5.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알게 되기를 원했다.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29절) 바울은 모든 사람이 자신이 누리는 평안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의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원했다. 이 마음이 바울로 하여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6. 복음을 알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때,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정돈되어 샬롬을 누릴 때,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게 된다. 대충 내 맘대로 죄 가운데 살면서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이 살게 되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7. 그리스도인들에게 드러나야 하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이다. 그 삶이 없이는 안 그래도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복음 조차도 의심받을 수 밖에 없게 된다. 특히나 기독교에 적대적인 지금 시대에는 말의 복음이 아니라 삶의 복음만이 다른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8. 복음은 상식적일 수 없다. 파격적이고 믿기 힘든 사랑이다. 하지만 복음에 합당한 우리의 삶은 얼마든지 상식적이어야만 한다. 그 상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과격한 사랑 밖에 없다. 이렇게 우리의 삶이 상식적이나 파격적인 사랑을 보여줄 때, 삶의 예배와 삶의 전도가 시작될 것이다. 내 삶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9. 복음에 합당한 삶을 맺기 위해서는 당연히 복음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복음을 깊이 알고 그 사랑을 경험할 때에만 복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내 삶이 오늘도 그렇게 회개에 합당한 삶의 열매를 맺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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