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2. 19.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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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12:1-10 무한대이신 하나님께 기대는 겨우 1일 뿐인 나 

1. 바울은 자신의 영적인 경험을 먼저 이야기 하고 있다. 너희들이 은사와 영적 경험을 자랑한다면 나도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자신의 삼층천(셋째 하늘)으로 올라간 경험을 이야기 한다.

2. 하지만 바울이 이 영적 경험을 이야기 한 것은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요 오히려 그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영적 경험 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십자가의 역설이다.

3.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약함'을 경시하고 강함을 신봉한다. 숫자가 적은 것 보다는 많아야 하고, 많이 가져야 하고, 항상 최신이어야 하고, 더 많은 좋은 경험을 해야만 한다. 

4. 바울도 지금 시대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을 가졌던 것 같다. 자신의 위대한 영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자신의 육신의 가시는 뭔가 어울리지 않았기에 세 번을 구했으나 하나님은 육신의 가시를 없애는 것을 허락치 않으셨다.  

5. 그리고 하신 말씀이 “내 은혜가 네가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9절 상반부) 라고 말씀하셨다. 즉 너가 지금 가지고 있는 육체의 가시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에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6. 하나님은 언제나 옳으시고 언제나 완전하시기에 언제나 문제는 나에게서 부터 시작된다. 나의 생각과 나의 전제가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된다고 하나님을 제한한다. 하나님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인 것이다. 

7.  하지만 하나님은 그 분의 강하심을 언제나 우리 안에서 드러내신다. 1+무한도 무한이고 1000+무한도 무한이다. 내가 얼마냐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 1이면 어떻고 1000이면 어떤가? 어차피 더해지는 하나님은 무한이신데…

8. 지난 주 금요일에 조이 자매가 친구들을 따라서 케어그룹 모임에 왔다. 그냥 친구들이 오자고 해서 처음 온 것이었고, 크리스마스때도 온다고 하여 케어그룹을 함께 했었다. 도중에 배가 아프다고 해서 함께 손을 얹고 기도했고, 소그룹으로 나눠서 모임을 하고 났는데 갑자기 예수님을 영접하겠다고 했다. 예상치 못했던 전개에 선교사인 내가 오히려 더 놀랐다. 태국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우리교회가 1을 했든 100을 했든 10000을 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무한이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니 처음 온 자매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었다. 할렐루야 

9. 선교사로서 절대로 교만할 수 없는 이유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이기 때문이다. 더 겸손하게 주의 일에 힘쓰자. 무한이신 그 분께 기대자. 그 분께서 역사하실 것이다.

10. 오늘도 샬롬

*본문에 나오는 조이 자매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믿음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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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2. 12.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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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7:2-16 공동체를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것을 목표로 살아가는 인생

1. 사도바울은 함께 교회를 세워나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냐고 하면 그는 약간 조폭스러운 말을 할 정도 하였다. 

2.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3절 하반부)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 이유는 함께 죽고 함께 살고자 함이었다.

3. 그런데 조폭들의 말과는 어순이 좀 다르다. 조폭들은 ‘같이 살고 같이 죽는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의리라는 것은 살때도 같이 살고 죽을 때도 같이 죽는다는 의미이다. 조폭 영화를 보면 무슨 의미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4. 그런데 바울은 어순은 먼저 함께 죽고, 그 다음에 함께 산다고 이야기 한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죽을 때에만 그제서야 우리는 공동체로서 함께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5. 실제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함께 연합하고 협력하기 위해서는 내 욕심과 내 생각, 내 혈기 등등을 내려 놓아야만 (결국 내가 죽어야만)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혈기가 그들을 찌르고 나를 찌르게 되어 우리는 공동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6. 바울은 육체가 편하지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고 다툼과 두려움이 있는 그 상황 안에서도 디도의 방문으로 인해 진심으로 기뻤다 (5-6절). 왜냐하면 디도의 방문과 위로는 동역자들 모두의 방문이요, 위로였기 때문이다. 

7.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죽었기에, 이제는 함께 살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서로에게 기쁨이 될 수 있는 존재들이 된 것이다. 순서를 잊지 말아야 한다. 먼저 죽어야 함께 살 수 있다. 

8. 나는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죽고 있는가? 내 욕심과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죽고 있는가? 먼저 죽음으로써 공동체를 세워가는가? 아니면 조폭들의 의리와 같이 온갖 나쁜 짓을 하면서도 같이 살다가 그저 마지막을 함께 죽는 정도로만 공동체를 바라보고 있는가? 결국 문제는 내가 죽었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죽었는가? 오늘도 죽고 있는가? 가족들에게는? 동역자들에게는? 우리 교인들에게는?

9. 공동체를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것을 목표로 살아가는 인생이 되자. 

10. 오늘도 샬롬

*사진은 금요일 연합 셀그룹 모임 입니다 (Youth + 금요일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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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2. 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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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39:22-43 말씀하신대로 순종하는 일

1.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에봇 받침 긴 옷, 거룩한 패를 다 말씀하신대로 만들었다. 무엇을 만드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만드느냐일 것이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그대로 하였다. 31절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전면에 달았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3. 43절 “모세가 그 마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모세가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 하나님이 만들라 하신 것을 만들었는데 내 맘대로 만든다면 그것은 만들지 않은 것 보다 못한 것일 수도 있다.

4. 무엇을 하든 중요한 것은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하는 것이다. 내 생각과 내 고집에 가득차서 내가 원하는대로 하려는 마음은 바로 아담이 가졌던 마음이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이 더 중요해서 자신의 생각대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을 때 가졌던 마음 말이다.

5.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먼저 잘 듣는 것이다. 듣지 않으면 순종할 수 없다. 듣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하고, 들었다면 기억하고 순종해야 한다. 실컷 들어놓고도 딴소리 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기억해야 한다. 

6. 마지막으로 순종이다. 들어서 머리에 있는 것이 삶으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복음은 우리 머리 속에 지식으로만 남아 있게 되고 그 지식은 나 자신을 포함하여 누구도 변화시킬 수 없는 그저 지식이 될 뿐이다. 

7. 명령하신 대로 하고 있는가? 말씀하신대로 하고 있는가? 특별히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께 묻고, 듣고, 순종하는 것일 것이다. 

8. 수쿰빛 언약교회가 2주년 예배를 드렸다. 주일에 50명이 왔고, 예배의 장소가 꽉 차서 이제는 새로운 모임 장소를 구하든지 가정교회로 예배를 나누든지 어떠한 새로운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주님께 묻고 듣도록 하자. 우리 교회에 어떤 모델이 가장 필요한지, 어떤 모양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 성도들에게 가장 유익하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이 될지를 묻고 듣어야 한다. 내 생각을 주장하려고 하지 말고, 합리적인 것을 고민하지 말자. 

9. 주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될 수 있도록 순종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그게 리더가 할 일이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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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1. 22.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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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35:20-29 아낌없이 드리고, 성도들이 아낌없이 드리릴 수 있도록 돕는 자가 되자. 

1. 하나님은 처음부터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굳이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되었지만 언제나 인간에게서 받기 원하는 것은 자발적인 마음이었다. 모든 것을 가지신 하나님이, 모든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의 마음을 굳이 얻고 싶어하신 이유는 아마도 사랑일 것이다. 다윗의 인생을 기억해보면 다윗의 자발적인 사랑의 마음이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렸다.

2. 오늘 본문에서는 회막을 짓기 위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나온다.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니" (21절)

3. 22절도 이렇게 시작한다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29절은 “마음에 자원하는 남녀는"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지금 한 일은 자발적인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쁘게 드린 것이었다. 

4. 하나님과의 우리와의 관계의 핵심은 강제적이거나 의무적인 사랑이 아니라 오직 자발적인 사랑이다. 자발적인 사랑의 마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한다. 

5. 내 삶에 자발적인 사랑이 있는가? 내 삶에 자발적인 감사의 마음이 있는가?  내 삶의 동기들을 살펴보게 된다. 나는 하나님께 무엇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가?

6. 아니면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내 삶에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기에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는가? 사실 이 경계가 참 모호하다고 느껴지고, 나 자신만 알 수도 있을 정도로 미묘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나는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기꺼이 감사함으로 드리고 있는가? 하나님께 사랑은 얼마든지 드려도 되지만 사람에게는 잘 분별해야 한다. 

7.  얼마전에 세례를 받았던 바리스타 뚜아 형제가 좋은 커피샵에 취업이 되어서 새로 사람을 구해야 해서 어제 밤 늦게까지 회의를 하였다. 결국은 재정의 문제였다. 북쪽 지방에서 지원한 자매를 뽑기로 했는데, 이 자매는 신학교를 나왔고 주일학교 사역을 섬기고 있으며, 한국인 선교사님이 운영하시던 커피샵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한국어, 영어도 할 줄 아는 우리 까페와 교회에서 섬기기에는 너무나도 적합한 자매였다. 그런데 이 자매를 쓰려면 북쪽에서 왔기 때문에 기숙사나 숙소를 제공해야만 했다. 커피샵과 교회가 재정적으로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은 금액이었다. 한참을 논의했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8. 내가 헌금할테니 집을 구해서 고용하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었다. 우리 교회에 너무나도 필요하고 (주일학교를 위해) 함께 섬길 수 있으면 너무나도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비용은 모금을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일시적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재정적인 면에서 선교사를 의존하게 만들어서는 안되기 때문이었고, 나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고 싶지만 줄 수 없었다. 그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도록 만드는게 내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것들을 자발적으로 아낌없이 드림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채우심을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9. 나의 것을 아낌없이 드리는 자가 되자.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드리는 자가 되도록 돕자. 중심을 잘 잡고, 그들로 성장케 하자. 내가 나의 것을 드리는 것보다 그것이 훨씬 더 어렵지만 그게 더 맞는 길이고, 그게 더 필요한 길이기 때문이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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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1. 2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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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35:1-19 안식일은 하나님 나라의 선포이다. 

1. 하나님은 지속해서 안식일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그만큼 안식일이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왜 중요한 것일까?

2. 오늘 본문에서는 거룩한 날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엿새 동안은 일하고 일곱째 날은 너희를 위한 거룩한 날이니 여호와께서 엄숙한 안식일이라…” (2절).

3. 이 날은 거룩한 날이었다. 그 날만 거룩한 것이 아니라 안식일을 지킴으로 인해서 다른 날도 거룩해 지는 것이다. 즉 거룩한 날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면 다른 날도 거룩할 수 없다는 것이다. 

4.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내 삶의 주인, 내 삶을 다스려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안식일에 쉬는 것은 즉, 나의 삶의 모든 날이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믿음의 고백의 표현인 것이다. 

5. 안식일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셨던 ‘하나님 나라'와 의미를 같이하는 개념이다. 하나님 나라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통치가 내 삶에, 온 우주에 임하였다는 것이다.

6. 온갖 더럽고 추잡한 짓을 하며 살아가는 어떤 조폭의 이름이 김거룩 이라고 한다면 어떤 느낌을 받겠는가? 삶과 그의 이름의 괴리감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우리는 웃을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면서 내 힘대로, 내 뜻대로, 내 욕망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비웃음을 유발하게 만드는 것이다.

7. 안식일은 (이제는 주일)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도록 우리를 가르치는 지표인 셈이다. 멈추어서 쉬면서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 이심을 깨닫고, 내 삶의 오직 왕이신 하나님 한 분을 기억하며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가는 날인 것이다.

8. 어제가 주일이었다. 사역자는 주일이 더 바쁘기 때문에 안식을 하지 못하기에 보통 월요일을 안식일로 쉬게 된다. 나는 오늘 어떤 안식일을 지킬 것인가? 멈춰 서서 어떤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할 것인가? ‘하나님 나라'가 내 삶에 임하였다는 그 기쁜 소식을 어떻게 내 삶으로 드러낼 것인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부터 시작하자. 나의 두려움과 염려를 그 분께 맡기고, 그 분께서 일하실 것을 기대함으로 기도하고 기다리자. 즉, 내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자. 그것이 오늘 할 일이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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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1. 1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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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29:29-46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은 자

1. 아론과 아론의 자손들은 제사장이었다.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제물을 드리는 직분을 가지고 있었다.

2. 그런데 아론과 아론의 자손이 매일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매일 일년 된 어린 양 두 마리를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는 것이었다. “네가 제단 위에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매일 일 년 된 어린 양 두마리니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릴지며" (38-39절)

3. 그것도 아침에 한 마리, 저녁에 한 마리를 번제로 드려야했다. 아론의 자손들이 깨달아야 했던 것은 자신들을 위해서 매일 양 두 마리가 제물로 드려진다는 사실이었다. 

4. 그들이 영광스러운 제사장의 직분을 맡고 있지만 그들 또한 어린 양의 제물이 아니면 죄인일 뿐이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깨닫는 것이 구원의 시작이다. 

5. 그리고 번제를 드리는 일을 하루에 한 번만 한 것도 아니다. 아침, 저녁 두 번을 해야 했다. 마찬가지로 구원의 은혜는 반복되어야 한다. 아침에 묵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들어야 하고 기억해야 한다. 

6. 내가 어떤 직분을 맡고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선교사라는 것이 목사라는 것이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장해주지 않고, 나의 구원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우리 모두는 그저 죄인일 뿐이고 나 대신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들일 뿐이다. 

7. 이제는 더 이상 번제를 드릴 필요가 없다. 예수께서 단번에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려지셨기 때문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나의 죄인됨을 깊이 자각하고 그리스도의 행하심(복음)을 기억하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8. 오늘도 복음을 붙들고 하루를 살아내기 원한다. 내가 오늘 본문에서 제물로 받쳐진 양들과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은자 임을 잊지 말고, 더 너그럽고, 더 사랑하고, 더 섬기는 자로 살아가기 원한다. 

9.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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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1. 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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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28:1-14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임을 기억하자. 

1.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아론의 자손들을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도록 부르셨다 (1-2절). 그런데 왜 아론이었을까? 모세의 형이었기 때문에? 혹은 다른 어떤 이유가 있어서??

2. 사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어떤 이유를 굳이 찾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우리를 구원하시면서도, 우리에게 직분을 맡기시면서도 어떤 이유가 있어서 맡기시지 않기 때문이다. 

3.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불러 주셨다는 것 외에는 사실 어떠한 이유를 찾을 수도 없을 것 같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사랑 그것이 복음이고 그것이 은혜이다. 

4. 아론의 자손들에게는 거룩한 옷을 입히셨다. 오늘 본문에는 그 내용들이 주로 나온다. 왜 굳이 거룩한 옷을 입히셨을까? 거룩이 옷에서 나오는게 아니라는걸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실텐데 말이다. 

5. 그 옷은 아마도 아론의 자손들을 위한 옷이었을 것이다. 옷을 보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떤 직분으로 부르셨는지를 자신들의 옷을 보면서 기억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6. 인간은 늘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늘 하나님과 반대쪽으로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입고 있는 옷을 통해서라도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나를 무엇으로 부르셨는지를 기억하라는  의미에서 아름다운 옷을 입히신 것이다. 

7. 지금 우리는 무슨 옷을 입고,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바울은 이런 우리를 권고하고 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롬13:14) 

8. 우리는 더 이상 아론의 자손들이 입었던 아름다운 옷을 입을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부터는 우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어야만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정체성이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사명이 되시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이 이유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능력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그리스도를 보며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점검해야 하는 것이다.

9. 나는 오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있는가? 복음에 합당하게,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내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혹은 육신의 정욕의 옷을 입고, 내 옷을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가? 내가 입고 있는 옷이 그리스도임을 잊지 말자.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나의 신분과 나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을 잊지 말자. 기억하는 것이 믿음이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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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1. 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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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26:1-14 우주보다 더 크시면서도 세포를 세실 만큼의 디테일하신 하나님

1. 성막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설명해 주고 계신다. 천의 크기, 실의 종류, 어떻게 설치하고, 어떻게 맞물려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디테일의 하나님이시다. 

2. 아침에 요엘이한테 왜 한 폭의 천으로 안 만들고 여러 폭으로 만들게 하셨는지에 대해서 물었더니 ‘옮겨 다니기 쉽게 분리 되도록 한 것’이라고 대답을 하였다. 나는 뭔가 신학적으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였는데, 요엘이 대답을 들으니 가장 맞는 대답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막은 구름기둥을 따라 불기둥을 따라 움직이며 해체하고, 조립하고를 반복해야 했기 때문에 한 폭의 천으로 만들거나, 너무 조립 및 해체에 복잡한 구조이면 안되었다. 

3. 하나님은 이렇게 너무나도 세밀하셨고, 너무나도 자세하셨다. 여분의 천막까지도 어떻게 늘어뜨릴 것을 말씀해주실 정도였다. 우주보다 더 크신데 우리 세포를 세실 만큼 디테일하시다. 그게 우리 하나님이시다.

4. 아침에 후원해주시던 한 교회에서 내년에 다른 곳을 후원하기로 결정이 되어 후원을 중단하게 되었다고 미안하다고 연락이 왔다. 목사님이 그 말을 하시기까지 참 마음이 어려웠겠단 생각이 들었다.  

5. 하지만 아침에 연락을 받고 나서는 나도 마음이 참 어려웠다. 최근에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재정적 후원이 줄어드는 것에서 오는 불안감이 나를 휘감았다. 사역적으로 가정적으로 지출은 늘어가는데 정기 후원이 많이 줄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려워졌다. 염려가 믿음보다 더 커진 것이다. 

6. 한참을 마음 속으로 불안감과 실갱이 한 후에, 내 안에 드는 생각은 ‘내가 지금 누구를 의지하고 있는가?’ 였다. 내가 그 동안 하나님을 의지하는 맘으로 선교지에 있었지, 우리를 후원해주시는 분들을 의지해서 선교지에 있었던게 아니었지 않은가? 

7. 우주보다도 더 크시면서도 우리 세포를 세실만큼 디테일 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작은 일 하나에 마음이 요동치고, 믿음보다 염려가 더 커진다. 이게 나의 믿음의 현 주소이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8. 하나님께서는 우주보다 더 크신 능력의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가장 나를 잘 아시며, 가장 나의 필요를 잘 아시는 디테일의 하나님이시다. 내가 염려하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인도해 나가실지를 믿는 것이다. 염려는 두려움은 나를 어떻게 하지 못한다.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 10:31)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막 5:36).

9. 다시 한번 상황과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 한 분만 붙들기를 결정한다. 내 두려움의 이유보다 더 크신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기로 결정한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 우리 가정과 모든 사역을 의탁하기로 결정한다. 혹시 나의 믿음이 연약하여 내 결정대로 살지 못하고 흔들릴지라도 이런 나를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붙들어 주시길!!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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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1. 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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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25:10-22 겸손의 길, 사랑의 길

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거궤 혹은 언약궤를 만들라고 말씀하신다. 이 언약궤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을 상징한다. 

2. 10절부터 21절까지는 이것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무척이나 디테일하신 분이시다. 그냥 너 마음대로 만들어봐 라고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관심이 많으시다

3. 다 만들어진 언약궤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이 만나는 장소이다. 그런데 왜 굳이 전능하시고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굳이 한 장소를 만들어 그 위에 임재하시겠다고 하셨을까?

4.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22절). 굳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신 이유는 출애굽이라는 상황을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 

5. 이스라엘은 이제 하나님과의 다시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화려한 신들, 화려한 성전들을 그동안 많이 봐 왔다. 그들이 생각하는 신은 보이는 신이었다. 그래서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 갔을 때 그들의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만들어 내지 않았는가?

6. 하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시고, 애굽의 신들과는 다른 분이다. 따라서 이 언약궤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를 만듦으로써 보이는 신에 대해서만 이해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7. 온 세상에 충만하시고,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이해하시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임재하시는 장소를 우주에서 먼지도 안되는 지구에서 그것도 작은 궤 위로 한정하신 것이다. 

8.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이 겸손이다. 하나님은 그러실 필요가 없으셨다. 크신 하나님께서 굳이 왜 자신을 그 작은 궤 위로 가두시는가? 사랑 때문이다.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셨고, 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는가? 우리를 향한 겸손하신 그 분의 사랑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위해 겸손의 길을 택하셨고, 우리를 살리는 길을 택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언약궤는 같은 의미이다.

9. 그 분이 택하신 겸손의 길, 사랑의 길을 나는 오늘 택하고 있는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고 있는게 아니다. 내가 만든 하나님을 믿고 있을 뿐이다. 겸손의 길, 사랑의 길을 걷는 내가 되고 싶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역에서 겸손과 사랑의 길을 택하길 원한다. 손해보더라도 낮아지더라도 그 좁은 길을 가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https://www.youtube.com/watch?v=tOAh8OHFx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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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inking)/Meditation2022. 11. 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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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25:1-9 청지기는 주인 뜻을 따르는 자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성소를 지으려고 한다. 성소를 짓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예물이었다. 이게 성소를 짓기 위한 재정적 기반이었을 수도 있고, 성소를 장식하기 위한 무엇인가일 수도 있다.  

2. 그게 무엇이든 성소를 건축하는데 필요한 것이었고,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스스로 공급하실 수 있는 분이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져오도록 모세를 통해 명령하셨다. 

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1-2절)

4.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친 모든 것은 3-7절에 나타나는데,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래부터 소유하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보았던 애굽 백성들이 준 것이다. 

5.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쳤던 것은 즉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주셨던 것을 다시 하나님께 올려 드린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비단 이스라엘 백성들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렇다. 

6. 내가 처음부터 가졌던 것이 있는가? 아무것도 없이 태어난 나에게 하나님께서 다 주신 것을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면서도 고뇌하고 아까워하고, 가능하면 덜 드리려고 애쓰지 않는가? 우리는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돌려드리는 자에 불과한 것이다. 

7.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었었다. 그런데 그것들을 내 것이었다고 착각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드리는게 아깝고, 가능하면 적게 드리려고 하고, 고민하게 된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이유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부터 왔음을 인정하는 고백이 아닌가?

8. 우리가 가진 것 뿐만이 아니다. 자녀들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런데 자녀를 키우면서도 얼마나 내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은가? 하나님 자녀라고 말하면서도 내가 아이들을 좌지우지 하려고 하고, 하나님의 길을 가르치려고 애쓰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모든 것은 하나님 것이고,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이다. 

9. 청지기가 결정하고, 청지기가 욕심내서는 안된다. 청지기는 주인의 것을 사용할 때 주인의 명령대로 할 뿐이다. 내 삶에 주신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원한다. 내것이라고 생각하며 내가 관리하려고 했던 시간, 물질, 자녀, 사역 모두를 주님께 올려 드리기 원한다. 아까워하지 말고, 내 뜻대로 사용하려고 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시도록 주님께 올려 드리길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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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신애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