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1:17-34 성찬을 생각하며 다른 이들과 한 몸을 이루라
1.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어려움 중의 한 가지는 한 몸이 되지 못함 이었다. 19절을 보면 파당이 존재했고, 21절을 보면 함께 만찬을 할 때, 서로를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먹고 먼저 마시는 자가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미 취했는데도 어떤 이들은 시장하였다.
2. 그런데 아마도 이미 취한 인물들은 부유한 자들이었고, 주린 자들은 가난한 자들이었거나 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종들은 자신의 주인을 섬기다가 늦게 와서 예배에 참석하니 이미 부유한 자들이 먹어버려서 음식이 없는 것이다. 부유한 자들은 음식이 충분했을텐데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3. 사도 바울은 주의 성찬을 27-29절에서 예로 들면서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가 서로 한 몸임을 강조한다.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와 함께 먹고 마셨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의 권면은 33절이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4. 함께 먹는 건 사실 아무것도 아닌거 같지만 매우 큰 사건이다. 함께 먹음을 통해서 우리는 한 가족도 되고, 한 몸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을 때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내 것을 남겨놓지 않는다면 아마도 엄청나게 서운할 것이다.
5. 주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한 몸이고, 한 지체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위해 음식을 기다려주지 못한다면 어찌 한 몸이 되고, 한 지체가 될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도 늘 제자들과 함께 드시지 않았는가?
6. 사도행전 2장의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그들은 늘 함께 먹고 마셨다. 떡을 함께 떼고,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예배하였다. 그때 그들에게 나타난 현상은 자신의 땅과 재물을 팔아 필요한 자들을 도운 것이다.
7. 함께 먹을 때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아직 오지 못한 형제, 자매가 있다면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한 몸과 한 지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교회에서 기다려줘야 하는 것이 비단 먹는 것 뿐일까? 한 몸이고 한 지체라면 우리가 기다려줘야 하는 것은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8. 기다려줄 수 있는 이유는 한 몸이고, 한 지체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계속해서 마음에 드는 질문은 ‘정말 한 몸인가? 한 지체인가?’ 라는 질문이다. 나는 수쿰빛 언약교회의 교인들과 교회의 리더십과 정말로 한 몸인가? 나의 아이들에게 정말 한 지체로 살아가고 있는가? 때때로 한 몸이 되기 보다는 내 한 몸을 더 많이 생각할 때가 많기에 나의 이기심이 연약함이 한 몸, 한 지체 됨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울의 권면처럼 그리스도께서 성찬을 통해 우리와 한 몸이 되신 사건을 더 깊이 이해하고 묵상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나의 이기심을 넘어 나와 다른 이들을 한 몸 되게 하심을 잊지 말자.
9. 결국은 복음이고, 결국은 그리스도께로 돌아가야 한다. 그 분께서 나와 한 몸 되시기 위해 치르신 그 십자가의 사건을 내 몸에 새겨야 한다. 그 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도 그 의미는 기억하지 못한채 나만 생각하는 그 이기적인 마음을 십자가에 못박기 원한다. 오늘도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아가기 원한다. 그래서 한 몸되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 욥형제는 미국에서 학부를 MIT에서 나오고 박사를 버클리에서 한 인재입니다. 미국에서 얼마 전에 귀국해서 저희 교회에 나왔는데 집에 교회와 너무 멀어서 (1시간 30분) 고민 중에 있습니다. 직장을 구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셔서 직장을 잘 구하고, 계속해서 저희 교회와 한 몸을 이뤄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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