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inking)/Meditation2022. 9. 20. 11:17
728x90
반응형

고전 11:17-34 성찬을 생각하며 다른 이들과 한 몸을 이루라

1.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어려움 중의 한 가지는 한 몸이 되지 못함 이었다. 19절을 보면 파당이 존재했고, 21절을 보면 함께 만찬을 할 때, 서로를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먹고 먼저 마시는 자가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미 취했는데도 어떤 이들은 시장하였다. 

2. 그런데 아마도 이미 취한 인물들은 부유한 자들이었고, 주린 자들은 가난한 자들이었거나 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종들은 자신의 주인을 섬기다가 늦게 와서 예배에 참석하니 이미 부유한 자들이 먹어버려서 음식이 없는 것이다. 부유한 자들은 음식이 충분했을텐데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3. 사도 바울은 주의 성찬을 27-29절에서 예로 들면서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가 서로 한 몸임을 강조한다.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와 함께 먹고 마셨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의 권면은 33절이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4. 함께 먹는 건 사실 아무것도 아닌거 같지만 매우 큰 사건이다. 함께 먹음을 통해서 우리는 한 가족도 되고, 한 몸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을 때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내 것을 남겨놓지 않는다면 아마도 엄청나게 서운할 것이다.

5. 주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한 몸이고, 한 지체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위해 음식을 기다려주지 못한다면 어찌 한 몸이 되고, 한 지체가 될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도 늘 제자들과 함께 드시지 않았는가? 

6. 사도행전 2장의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그들은 늘 함께 먹고 마셨다. 떡을 함께 떼고,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예배하였다. 그때 그들에게 나타난 현상은 자신의 땅과 재물을 팔아 필요한 자들을 도운 것이다. 

7. 함께 먹을 때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아직 오지 못한 형제, 자매가 있다면 기다려야 한다. 그래야 한 몸과 한 지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교회에서 기다려줘야 하는 것이 비단 먹는 것 뿐일까? 한 몸이고 한 지체라면 우리가 기다려줘야 하는 것은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8. 기다려줄 수 있는 이유는 한 몸이고, 한 지체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계속해서 마음에 드는 질문은 ‘정말 한 몸인가? 한 지체인가?’ 라는 질문이다. 나는 수쿰빛 언약교회의 교인들과 교회의 리더십과 정말로 한 몸인가? 나의 아이들에게 정말 한 지체로 살아가고 있는가? 때때로 한 몸이 되기 보다는 내 한 몸을 더 많이 생각할 때가 많기에 나의 이기심이 연약함이 한 몸, 한 지체 됨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울의 권면처럼 그리스도께서 성찬을 통해 우리와 한 몸이 되신 사건을 더 깊이 이해하고 묵상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나의 이기심을 넘어 나와 다른 이들을 한 몸 되게 하심을 잊지 말자.  

9. 결국은 복음이고, 결국은 그리스도께로 돌아가야 한다. 그 분께서 나와 한 몸 되시기 위해 치르신 그 십자가의 사건을 내 몸에 새겨야 한다. 그 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도 그 의미는 기억하지 못한채 나만 생각하는 그 이기적인 마음을 십자가에 못박기 원한다. 오늘도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아가기 원한다. 그래서 한 몸되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 욥형제는 미국에서 학부를 MIT에서 나오고 박사를 버클리에서 한 인재입니다. 미국에서 얼마 전에 귀국해서 저희 교회에 나왔는데 집에 교회와 너무 멀어서 (1시간 30분) 고민 중에 있습니다. 직장을 구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셔서 직장을 잘 구하고, 계속해서 저희 교회와 한 몸을 이뤄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2. 9. 20. 11:15
728x90
반응형

고전 11:2-16 머리가 되고자 하는 자는 먼 섬기는 자가 되라

**기도제목이 아래에 있습니다. 

1. 요즈음 우리 사회는 젠더 이슈가 큰 갈등으로 부상하고 있다. 젠더에 따른 갈등의 문제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특별히 아내가 없는 이 시간동안 아내가 그동안 해 온 일들을 혼자서 해보면서 정말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2. 오늘 본문은 특별히 여자의 인권이 바닥 중에 바닥이었던 바울의 시대적 배경에서 생각해보면 고린도교회에서 편지를 받았을 때에는 매우 파격적인 내용이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물론 지금 우리 시대에는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가 있을 것이다. 

3. 바울은 창조의 원리에 따라서 남자와 여자가 다른 권리와 의무를 지님을 이야기 하고 있고, 여자의 머리가 남자, 남자의 머리는 하나님 되심을 설명하고 있다 (3절). 이것은 어떤 계층 구조를 의미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창조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다. 

4. 왜냐하면 바울은 11-12절에서 이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리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께 났느니라"

5. 중요한 것은 남자도 여자도 각각 개별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내가 머리라고 주장하며 자의적으로 권위적으로 주장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12절이 말씀하는 의미가 창조의 순서는 비록 남자가 먼저이더라도 남자도 여자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6. 하나님을 자신의 머리에 두지 않는 남자가 여자에게 자신이 머리  임을 주장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주권과 왕 되심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나는 아내에게 머리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남자도 피조물이기에 불가능하다. 바울이 권면하는 것은 피조물로써 모든 것에 앞서 하나님을 머리에 두라는 것이다. 

7. 하나님이 나의 머리 되시면 (권위자가 되시면) 모든 것이 가하다. 하나님이 나의 머리가 되시면 아내에게 헛된 권한을 어떻게 행사하겠는가? 어떻게 아내에게 잘못된 권위를 보여주겠는가? 하나님의 내 삶의 주인이신데 내가 어찌 다른 이들을 욕되게 하고, 저주할 수 있겠는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그 말씀 앞에서 아내에게 어떻게 내 권위만 주장할 수 있겠는가? 

8. 창조의 원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남자가 여자의 머리 됨이 아니라 (부수적일 뿐이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머리 됨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머리가 되셔야 한다. 내 삶이 그리스도께 온전히 뿌리내리고 그 분께 들으며 그 분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그런 이후에 남자는 아내에게 또 가정에서 머리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되심과 같이 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교회의 머리가 되셨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시며 섬김으로 머리가 되셨다. 머리가 된다는 것은 권한이나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아니라 죽기까지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9. 예수께서 보이신 본 처럼 섬김으로 가정의 머리가 되기 원한다. 아내의 머리가 되기 원한다. 수쿰빛 언약교회의 가장 섬기는 자가 되기 원한다. [마20:27-28]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아내의, 가정의, 또 공동체의 머리가 되고자 하는 자는 먼저 섬기는 자가 되라.

10. 오늘도 샬롬

* 아내가 없는 지난 2주 동안 제가 계속 아팠습니다. 첫 주는 장염으로, 둘째 주는 허리가 아파서 거의 누워서 지냈습니다. 큐티를 정리해서 못 보내니 무슨 일이 있냐고 연락 주시기도 하시고, 또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엘이와 아내는 10월 중순 즈음에 돌아올 것 같습니다. 요엘이의 치료가 계속 잘 이루어지고, 한국에서 진료 등으로 계속되는 운전과 여행으로 많이 지친 신애 선교사와 또 계속 몸이 좋지 않았던 저를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세 아이들이 이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샬롬

*하나님은 계속 영혼들을 보내주시고 계십니다. 왼쪽 자매가 토이 자매, 오른쪽 자매가 엠마 자매입니다. 어제 교회에 처음 나왔는데 잘 적응하고,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728x90
반응형

고전 1:1-17 그리스도의 제자를 세워가는 그리스도의 제자

1.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편지한 고린도 전서를 큐티로 시작하게 된다. 고린도 교회는 참 많은 문제가 있었던 교회다. 그 중에 하나가 ‘분쟁'이었다. 처음 인사가 끝나자 말자 바울은 ‘온전히 합하라'라고 권하고 있다.

2.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0절) 그들의 분쟁은 서로 파를 지어 나뉘었던 것 같다. 

3.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2절) 이 구절에서 속했다는 단어는 ESV는 Follow로 번역하고 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을 따라 오라고 하셨는데 어떤 이들은 바울을 따르고, 어떤 이들은 아볼로를 게바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4. 인간은 항상 당을 짓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를 붙들려고 한다. 그것이 교회의 리더라고 할지라도 절대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아닌 존재를 하나님의 자리에 두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하기에 교회 안에서도 우상 숭배가 만연하다. 

5. 바울은 강력하게 권한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13절) 그리스도는 그 어느 리더와도 비교할 수 없는 우리의 구원자이셨다. 

6. 따라서 우리는 바울의 권고와 같이 그리스도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따르지 말고, 어느 누구도 나만 따르도록 만들어서는 안된다. 나는 나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양육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7. 선교사로 살아가면서 자주 들었던 말은 ‘누가 너의 제자냐?’라는 말이었다. 처음 들을 때에는 ‘맞아 내 제자가 있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선교사로 살아가면 갈수록 이것처럼 말이 안되는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를 세워가는 그리스도의 제자일 뿐이다. 누구도 나를 의지하도록 나의 말을 듣도록 만들어서는 안된다. 

8. 그리스도의 말이 아니라 어느 리더의 말을 듣는 사람들, 어느 리더의 제자들이 생겨나면 당을 짓게 되고, 자신의 리더의 말이 맞다고 주장하게 되고, 교회를 나누게 만든다. 나는 어떤 선교사인가? 태국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제자만 양육하려고 애쓰는 사람인가? 아니면 여전히 나의 제자를 세우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인가? 태국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나의 어떤 것도 포기할 준비가 되었는가? 아니면 교회 안의 리더에 대한 우상숭배를 조장하고 있는 자인가?

9. 아직 까지는 그래도 은혜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나이가 들기 전에 바른 복음을 더 마음에 새길 수 있기를 원한다. 내 고집과 아집으로 내 생각이 가득차기 전에 복음으로 내 마음과 내 생각을 가득 채우자.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제자를 세워가는 그리스도의 제자일 뿐임을 잊지 말자. 우리의 영원하신 리더는 그리스도 한 분이다.

10. 오늘도 샬롬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2. 8. 30. 10:56
728x90
반응형

출 23:23-33 청종

1.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받을 수 있는 복을 설명하고 있는 본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혼자 가도록 두시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들의 인생과 출애굽 여정에 가장 세밀하게 간섭하신다.

2.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30절)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 모세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이끄셨다. 

3. 하지만 그 모세가 가장 많이 했던 행동은 바로 하나님을 대면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듣는 것이었다. 21절, 22절에도 각각 이 단어가 등장한다. “청종" “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총정하고" (21절), "네가 그의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내 모든 말대로 행하면" (22절)

4. 청종의 뜻을 찾아보았더니 ‘이르는 대로 잘 듣고 좇음'이라고 되어 있었다. 영어에서도 pay careful attention to him and obey his voice (ESV)라고 되어 있다. 모세가 이스라엘이 해야 하는 것은 ‘잘 듣는 것' 즉 ‘청종’이었다.

5. 출애굽을 통해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일 수 없기에 내가 어떤 일을 성취해 낼 수 없다. 우리가 할 일은 ‘청종'이다. 잘 듣고, 좇아가는 것이다.

6. 하지만 잘 듣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왜냐하면 이미 나에게 경험이나 다른 것에서 부터 오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 내 뜻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듣기 보다는 내가 원하는데로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7. 그럴 때는 듣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도 않고, 들어도 잘 들리지 않는다. 결국 주님의 길이 항상 옳고, 가장 빠른 길이며, 주님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믿음으로 인정할 때에라야 그제서야 들릴 것이다. 

8. 요엘이의 일과 가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을 통해서 내가 여전히 목이 곧은 백성임을 깨닫는다. 어떠한 일이 발생했을 때 주님께 묻기보다는 머리를 굴린다. 이렇게 하려면 이걸 해야 하고, 이런 걸 준비해야 하고, 저걸 도와줘야 하고… 그 속에 주님께 묻고 듣는 과정은 생략되어 있다. 왜냐하면 내가 안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잘 몰라도 다른 이가 이렇게 해봤다고 하기 때문이다. 교회 개척할 때에는 철저하게 물었었는데 아마도 이건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의 일과 가정의 일도 주님께 들어야 한다. 청종할 때에야 주님의 사자가 앞서 가실 것이다. 

9. 청종하는 자가 되기 원한다.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내가 가진 지식대로 행하는 자가 아니라 청종하는 자가 되기 원한다. 주님께 묻고 듣는 과정을 통해서 주님과 더 깊어지며, 주님의 뜻이 우리 가정 가운데 더욱 더 이루어지길 원한다. 교회 사역도 마찬가지로 묻는 것로 시작하기 원한다. 목이 곧은 백성이 아니라 무릎을 꿇은 백성이 되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2. 8. 29. 11:08
728x90
반응형

출 23:1-19 복음의 정신은 나그네 되었을 때를 기억하는 것이다

1. 하나님의 법칙은 언제나 간단하다. 예수님께서 요약하신 그대로이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오늘 본문에서는 이웃 사랑이 먼저 등장한다. 그 이웃의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이웃으로 취급받기 어려울 것 같은 나그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2. 9절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누구보다 노예의 삶, 나그네의 삶에 대해서 잘 알았을 것이다. 

3.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죄인이기에 나의 과거는 미화되고, 현재의 나의 불행은 항상 더 커 보이기 마련이다. 내가 과거에 용서 받은 것, 용납 받은 것을 기억하며 용서하기 보다는 지금 내 앞에서 잘못을 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분노하고 화 내는 것이 더 쉬운 사람들이다.

4.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나그네 되었을 때를 기억하라고 하신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를 기억하라고 하신다. 우리가 용서받고 용납받은 그 날을 기억하며 다른 이들을 환대하고, 사랑하라고 하신다. 

5. 사역을 하다보면, 또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다른 이들의 연약함이 쉬이 보인다. 그들의 실수가 보이고, 그들의 부족함이 보일 때, 가끔 ‘왜 이런걸 못하지?’ 혹은 ‘왜 이런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6. 따져보면 나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우게 된 것들이 대부분이고, 처음부터 내가 잘했던 것은 하나도 없음에도 말이다. 아마도 내가 나그네였을 때, 내가 처음 사역을 시작했을 때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오래 참아줌과 인내를 통해서 지금의 (여전히 부족함이 한이 없지만) 내가 된 것이 아닌가? 

7. 내가 태국어를 배울 때, 얼마나 많은 형제, 자매들이 나의 틀린 말과 발음을 참아주고,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첫 태국어 설교 때 얼마나 많은 격려를 받았던가? 그런데 나는 그러한 것들은 다 잊어버리고, 나는 처음부터 꽤 괜찮았던 것 처럼 생각하며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8. 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내가 연약했을 때, 그리스도의 그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이 복음이라면, 나도 다른 이들의 이 복음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지금의 모습으로 그들을 생각하고 판단하지 말고, 복음의 정신으로 그들이 지금 변화되고 있음을 자라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용서 받고 용납 받은 것 처럼 그들에게도 용서 받고 용납 받는 그 시간이 필요함을 기억해야 한다. 다른 이들을 판단했던 마음을 회개하고, 나의 나그네 됨을 기억하자. 

9. 태국에서 나는 나그네가 아닌가? 태국인들의 배려와 사랑으로 비자도 받고, 사역도 하고 있지 않은가? 나의 나그네 됨으로 더욱 더 사랑하고, 용납하고, 기다려 줄 수 있는 선교사가 되기 원한다. 복음의 정신을 통해 더 겸손하게 살아가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2. 8. 25. 11:08
728x90
반응형

출 21:12-27 복음으로 인해 복음의 결과가 드러나는 삶

1. 사형과 다툼, 폭력에 대한 법규이다. 고대근동의 함부라비 법정과 동일한 법이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덴 것은 덴 것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23-24절)

2. 자기가 잘못한 것은 동일한 해를 당함으로 갚아야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이었다. 우리가 죄를 지었다면 죄의 대가는 죽음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죽게 내버려 두시지 않았다.

3. 우리의 죄를 대신 하여 우리 대신 죽을 제물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죄를 용서받게 하셨다. 이것이 레위기에 나오는 제사법의 원리이다. 반드시 죽어야 하기에 희생 제물이 대신 죽어야 하는 것이다.

4.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우리는 죄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죄의 결과로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 절망적인 인생이다. 동일한 해를 당해야만 하는데, 우리는 그 해를 감당할 힘이 없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 아닌가? 

5. 하나님의 사랑은 희생 제물로 제사를 드리게 하셨고, 이제 그 수많은 제사를 폐하시고 온전한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 제물로 단번에 드리심을 통해 우리 모두는 구원을 얻게 되었고 다시는 동물 제물의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게 하셨다. 

6.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언제나 내가 저지른 잘못의 해를 당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출애굽기의 법규를 묵상하며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7. 내가 죽지 않았음을 내가 해를 당하지 않았음을 기억하고, 나로 하여금 죽지 않도록, 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신 그 크신 사랑을 마음에 새길 수 있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잊어버리고, 내가 지금 살아있고, 해를 당하지 않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만족한다면 그것은 배신이고, 또 다른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8. 복음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해 죽지 않았고, 해를 당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복음을 잃어버리고, 복음의 결과로만 살아가는 자의 삶이 되지 않기를 원한다. 복음이 나의 삶을 드라이브 하게 하고, 복음으로 인해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복음의 결과들이 더 감사하게 받을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복음을 기억함으로 인해서 다른 자들에게 더 관대하기 원한다. 눈을 눈으로, 이를 이로 갚는 자가 아니라 내가 받은 사랑의 크기(복음)를 기억하며 예수님의 말씀처럼 오리를 가지고 할 때 십리를 가며, 겉옷을 달라고 할 때, 속옷 까지 내어줄 수 있는 그런 복음의 결과가 내 삶에 있기를 원한다. 

9. 오늘도 샬롬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2. 8. 24. 19:53
728x90
반응형

출 21:1-11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는 하나님의 법

1. 남종과 여종에 대한 법규이다. 남종은 여섯 해를 섬기면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더라도 자유인이 된다 (2절). 원래 자유인인 까닭이다. 결혼을 했으면 결혼한 아내도 함께 자유인이 된다 (3절). 하나님의 법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기 때문이다.

2. 그러나 이 자유인에게는 좀 더 선택권이 있다. 더 이상 종으로 섬기지 않아도 되고, 혹은 상전과 아내를 사랑함으로 자유인이 되지 않고 영원히 주인을 섬길 수도 있다 (5절). 그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매우 독특한 법규이다. 

3. 하나님의 법규에서 핵심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의지(감정)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로봇으로 창조되지 않았다. 사랑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선택은 가장 중요한 사항 중에 하나이다.

4. 하나님의 법규에 따르면 종의 입장에서도 주인을 섬길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다. 피조물의 입장에서도 하나님을 섬길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는 매우 심각한 도전일 수 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5.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런 존재로 만드셨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는 존재로 말이다. 그 이유는 강제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참 사랑이신 하나님께 더 심각한 도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강제로 사랑하는 것은 실제로 사랑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6. 배반하고, 거역 하더라도 우리의 의지와 감정에서 나오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기 때문이다. 참 사랑이신 하나님은 참 사랑을 원하셨기 때문에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7. 참으로 큰 사랑이다.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도(그 가능성이 훨씬 더 큰데도) 그것을 허락 하시다니 말이다. 그리고 인간들이 사랑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셨다니 말이다. 정말로 감당할 수 없는 큰 사랑이다. 

8.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할 자유를 주셨으니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을 선택하고 싶다. 사랑이란 쉽지 않은 길이다. 때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쉽게 느껴질 때도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조건없이 날 사랑하심을 내가 확신하기 때문이다. 종종 오히려 더 어려운 것은 날 사랑하실게 가장 확실한 하나님 보다도 말 안듣고, 자기 멋대로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특별히 어디서 저런 아이들이 나왔나 싶은 내 자녀들 말이다. 내 아이들을 사랑하는데도 때로는 큰 힘과 에너지가 들기도 한다. 

9. 그래도 사랑의 길을 선택하고 싶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그 예수님의 말씀을 삶으로 선택하고 싶다. 특별히 아내와 요엘이가 요엘이 검사를 위해 이번 주 금요일에 한국으로 들어가게 된다. 요엘이 존재 자체로 사랑하지 못한 부모의 연약함이 요엘이를 더 힘들게 만들었을 것 같이 미안한 마음이 크다. 검사를 통해 연약함들이 잘 드러나고 약이 필요하다면 적절한 약을 처방 받을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린다.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온 가족이 자발적인 사랑의 길을 선택하기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요엘이와 김신애 선교사의 모든 한국일정(최소 2주에서 석 달)이 순적하게 인도하심을 받아 검사가 잘 이뤄지고, 약을 비롯한 필요한 후속조치가 잘 이루어지며 또 필요한 모든 경비를 위해서도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2. 8. 23. 12:07
728x90
반응형

출 20:18-26 유일하신 중재자 예수 그리스도

1. 하나님으로부터 계명을 받은 이스라엘은 이제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게 된다. 하지만 죄인인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면하게 될 뻔 하게 되자 두려움에 빠지기 시작했다. 

2. 19절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을 선택하는 대신 모세를 통해 말씀하시길 구하였다. 

3. 이들의 두려움과 대안이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중재자를 세우면 자신들이 직접 하나님 앞에 서지 않아도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유지할 수 있으니 얼마나 쉽고 좋은 선택인가? 

4. 하지만 모세는 임시직일 뿐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항상 그 중재자가 요청 되었다. 문제는 직접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수시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5.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직접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새롭고 참된 길을 열어주셨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찢고, 보혈을 흘리게 하심을 통해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중재자를 통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도록 하신 것이다.

6.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고, 하나님과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셨다. 이전에는 멀리 있었지만 이제 하나님 안에 있도록 하신 것이다. 하지만 중재자를 세우는 태도는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 같다.

7. 우리가 직접 하나님과 만나고, 교제하고, 치열하게 말씀을 묵상하기 보다는 중재자를 세우는 쉬운 선택을 하려고 한다. 보통 이러한 마음은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들을 의지하려는 마음이다. 나보다 신앙이 좋다고 여겨지는 누군가를 찾아가서 기도를 받고,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의지하려는 마음이다. 

8.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새롭고 참된 길을 열어주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모세와 같은 이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는데 그 예수님과의 참된 관계를 가지지 못하고, 여전히 책으로만 말씀으로만 읽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분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인데, 가지가 나무에게 붙어 있지 않고 엉뚱한 데 붙어 있는 것은 아닌가? 중재자를 세우려는 헛된 시도를 포기하고, 나 스스로가 직접 하나님을 만나며, 아이들에게도 (특별히 요엘이게게) 성도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길 원한다. 우리의 중재자는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 분 뿐이시다.

9. 출애굽 시대는 그럴 수 밖에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 오신 이후 우리의 삶은 결코 다시 구약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오늘 주님을 대면하기 원하고, 오늘 주님과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Meditation2022. 8. 22. 10:41
728x90
반응형

출 20:1-17 특별한 관계에게 주시는 특별한 계명

1. 하나님께서 열 가지 계명을 이스라엘로 하여금 지키도록 주셨다. 열까지 계명은 율법 혹은 십계명이라 불리는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2. 하지만 이 율법이 어느 순간 갑자기 이스라엘로 하여금 반드시 지키도록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1-2절에서 보면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성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이 율법이 이스라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3.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1-2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인도해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결을 요구 하셨던 것이다. 

4. 나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어떠한 것은 (그게 무엇이든) 나와 하나님이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나의 삶에 어떠한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이시고 내 구원자시란 뜻이다. 나와 상관없다면 그 분의 계명이 그 분과의 교통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5.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고, 내가 그 분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개입하시고, 돌보시고, 이끌어 가신다는 것이다. 고아와 같이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가도록 인도해 나가신다는 것이다. 

6. 그러나 때로는 이 하나님의 개입이,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이끌어 가는 모습이 힘들거나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다. 굳이 하나님께서 개입하지 않으셔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일이 생기고 나면 그것을 수습하고, 책임지느라 더 힘들어지는 것 같은데 왜 굳이… 그리고 하나님 아니어도 나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7.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 가장 옳은 길이고, 돌아가는 것 같이 느껴져도 가장 정확하고 빠른 길이다. 왜냐하면 그 분이 나를 애굽으로 대표되는 죄와 사망에서 나를 구원하여 인도해내신 하나님이시고, 상천하지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8. 최근에 요엘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데 이 일을 겪으면서 내 속에 ‘왜?’라는 질문이 가득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조금은 화가 나기도 하고, 그 마음이 잘 풀리지 않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내와 이야기를 할 수록, 말씀을 대하면 대할 수록 더 깊이 느껴지는 것은 ‘감사'이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여 주셨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어렵고 힘든 시간인 것 같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로 빚어가시는 시간임을 깨닫게 된다.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요엘이의 진정한 아버지이시고, 우리 가정의 진정한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번 깨닫게 계기가 되었다. 우리가 고아가 아니라 온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자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9. 내가 무엇이길래 창조자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안에 있을 수 있고 하나님의 관심을 받는 존재가 될 수 있었을까? 은혜이다. 그 은혜를 받은 자로서 합당하게 살아가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원한다. 십계명이 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증명하는 것임을 기억하고,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10. 오늘도 샬롬

*요엘이가 자신과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깨닫고, 자신의 진정한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원합니다. 비록 다 말씀드릴 수 없지만 요엘이를 위해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샬롬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
생각(Thinking)2022. 8. 19. 10:58
728x90
반응형

 출 18:13-27 원팀, 동역의 기쁨

1.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출애굽 하도록 사명을 주셨다. 그런데 출애굽의 여정 속에서도 사람 사는 곳이라 그 안에 수 많은 분쟁들이 있었다. 

2. 모세는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데 시간을 사용하기 보다는 재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튿날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는지라" (13절).

3. 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 조금 덜 중요한 일은 과감하게 다른 사람에게 이양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알아챘던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사람을 세울 것을 제안한다.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21절)

4. 선교는 사역은 우리 삶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나 혼자 하는 것이 효율적이지 못할 때가 많다.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18절)

5. 그래서 우리는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갈 은사에 맞게 세워진 동역자가 필요하고, 함께 이 일을 감당해야 한다. 부르심에 맞게 일해야 하고, 나의 부르심이 아니거나 나에게 은사가 없는 일은 과감하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세워서 맡겨야 한다. 

6. 모세는 어쩌면 재판과 출애굽 모두를 잘 감당할 수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세는 혼자서 다 잘하려는 유혹을 이겨냈다. 그는 사람을 세우고, 사람과 더불어 일하는 하나님의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7. 출애굽의 여정이 조금 더 효율적이고, 조금 더 아름다웠을 가능성이 높다. 출애굽 팀을 보면서 함께 동역하는 수쿰빛 언약교회의 목양팀이 생각이 났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사대로 욕심 부리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동역자들이다. 이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세워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복이다. 

8. 그리고 세계각지에서 이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생각이 났다. 아마도 이 묵상을 받는 분들일 것이다. 어떤 분들은 기도로, 어떤 분들은 재정적인 후원으로, 어떤 분들은 필요한 물품을 채우시는 것으로 어떤 분들은 단기 선교의 일정으로, 어떤 분들은 무명으로 우리 가정과 함께 이 선교를 감당하고 있다. 우리는 원팀이고, 우리는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고 있다. 역할은 다르지만 그 다름으로, 또 함께 섬김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예수께 돌아왔는가? 개척시 16명이던 교회가 40명이 넘는 교회가 되지 않았는가? 원팀으로 각자의 은사와 부르심에 따라 섬길 때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는 모습을 지금 보고 있다. 

9. 태국의 영혼들을 섬기기 위해 함께 동역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태국의 영혼들을 함께 사랑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태국을 위해 우리의 인생과 소유의 중요한 것들을 함께 내어놓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 아름다운 동역이 계속 잘 이루어져서 더 많은 태국의 영혼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며, 하나님의 나라가 태국에 세워져가길 소원한다. 

10. 원팀으로 섬기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오늘도 샬롬

728x90
반응형
Posted by 신애친구™